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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금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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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금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 마태오 16,24-28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떨어트리려 했던 돌덩어리>
아프리카에 마음씨가 아주 고약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싱싱하거나 건강한 대상을 보면 괜히 화가 나고, 질투심이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식물을 보면 줄기를 끊어버리거나 뿌리 채 뽑아 던져버리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지요.
그가 하루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 중간에 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아시스에는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던 싱싱한 종려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하필 심술궂은 그가 종려나무 옆을 지나가다가 길게 뻗쳐 나와 있던 나무 가지에 눈이 찔리고 말았습니다.
잔뜩 화가 난 그였지만, 종려나무가 워낙 커서 뿌리를 뽑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그가 아니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다가 엄청 무거운 바위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 바위를 종려나무 줄기 한 가운데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종려나무는 갑자기 다가온 날벼락이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 앞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몸 전체를 흔들어보기도 하고, 있는 힘을 다해 가지를 흔들어 돌을 떨어트리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돌은 종려나무 몸통 한 가운데로 점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큰 바위의 무게를 지탱하기위해 땅 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종려나무의 혼신을 다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과 최선을 다한 ‘뿌리내리기’ 작업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뿌리내리기 작업에 최선을 다했던 종려나무의 뿌리는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아시스의 깊은 수맥까지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맥 위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그 종려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큰 나무로 성장했습니다. 풍부한 물과 영양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게 된 종려나무는 아주 당당하고 기품 있는 거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는 오아시스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 종려나무가 오아시스의 거목이 되고, 그 지방의 자랑이자 명물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괴팍한 사람이 끼워 넣고 간 정녕 괴로웠던 바위 덩어리, 십자가처럼 여겨졌던 바위덩어리 때문이었습니다(요하네스 브란첸, ‘고통이라는 걸림돌’, 바오로 딸 참조).
우리에게 매일 매 순간 다가오는 십자가, 우리 삶을 억누르고, 우리를 힘겹게 하는 십자가는 사실 어떻게 보면 은총인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성장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지혜로워집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두 가지 조건으로 ‘자아 포기’와 ‘십자가 수락’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십자가는 ‘상징’이 아니라 ‘잔악한 현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자주 십자가를 자기 몸에 친히 지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많은 사형수들을 봐왔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은 함부로 던질 수 있는 말도 아니었고, 선선히 수락할 있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수락은 목숨을 건 약속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적당한 예수님 추종이 아니라 목숨을 건 예수님 추종이 필요합니다. 적당 선에서의 예수님 추종, 적정선에서의 십자가 수락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건 자아포기와 생애전체를 통한 십자가 수락이 요청됩니다.
크게 포기할 때 묘하게도 우리는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전적인 추종, 목숨을 바친 투신을 하게 될 때 묘하게도 하느님은 당신 자비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참 평화와 참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4번 / 주께 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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