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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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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다 ! >(마태 14,22-33)
- 유 광수신부-
예수님께서는 밤 사경에 호수 위를 걸으시고 그들 쪽으로 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게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유령이다!"하였다. 그들은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예수님게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이 일에서 저 일로,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미 성숙함에서 성숙으로, 어설픈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즉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이 우리네의 일상생활이요, 인생여정이다. 그러나 그 배가 건너편으로 안전하게 도달하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를 저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 인생의 선장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 대신 내 배의 노를 저어줄 수 없고 또 남의 배를 타고 나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 선장은 배가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목적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알아야 한다. 목적지가 분명하지 못하면 엉뚱한 항구에 도달하게 된다. 인생이라는 망망 대해에 배를 타고 저 건너편으로 가노라면 순풍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기치 못한 거센 바람을 만나기도 한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커다란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다. 복음은 이것을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적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실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주님이 나와 함께 있지 않으시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도대체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지금 내가 이렇게 큰 어려움을 만나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주님은 나의 고통을 알고 계시는가?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가 가시듯이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아니 한번도 우리를 포기한 적이 없으시고 우리한테서 떠나신 적이 없다. 제자들이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다가가시는 분은 예수님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유령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는 제자들에게 다가 오시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 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유령이다!" 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 하지 마라."라고 격려해주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는 외마디 속에는 항상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의 소리가 있다. 우리를 격려해주시는 말씀이 있고 "나다."라고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는 표지가 있다. 그것을 보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그 표지를 읽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반드시 주님의 음성과 모습이 있다. 예수님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우리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많은 유령들이 있는 법이다.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보지 못하고 "유령"으로 보이게 하는 많은 허상들이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제자들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복음은 제자들의 이런 어려운 상황을 "밤 사경에"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밤사경은 가장 어두운 시간이다. 지금 제자들의 입장이 아주 캄캄한 상황이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 "유령이다!" 라고 두려움에 휩싸여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주님께 신뢰하는 청들 들였다. "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이 "오너라"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그 결과 베드로는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다시 주님을 찾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질렀다. 고맙게도 예수님은 다시 곧 손을 내미시어 그를 붙잡으시고, " 이 믿음이 약한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따끔하게 나무라셨다.
결국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은 믿음이 약하였기 때문이요, 믿음이 약하다는 말은 의심하였다는 것이다. 그럼 의심이란 무엇인가? 의심이란 확신과 불신 사이에 있는 것이다. 즉 절대적인 믿음과 절대적인 불신 사이에 있는 것이 의심이다. 그러니까 의심이란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울어진 것이 아닌 이쪽에도 조금 걸치고 저쪽에도 조금 걸쳐 있는 상태이다. 의심이란 이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어질 수도 있고 저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질 수도 있는 중간 상태이다. 그러니까 의심은 잘하면 절대적인 믿음으로 기울어 질 수도 있고 잘못하면 절대적인 불신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는 어중간한 상태이다. 우리가 이런 의심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제자들이 "유령이다!"라고 두려워 소리를 지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소리를 들려 주셨고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베드로가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하고 청하였듯이 예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너라."하였을 때 베드로는 아무 의심없이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즉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신뢰하였을 때 물위를 걸어갈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베드로가 또 다시 물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거센 바람을 보고서 의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신뢰하고 믿음의 행동을 옮겼을 때에는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여정이었지만 거센 바람이 불었을 때 예수님을 보지 않고 또 예수님의 소리를 신뢰하지 않고 거센 바람을 보았을 때에는 물에 빠지는 어려움을 겪에 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배를 타고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건너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많은 어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걸어갈 때에는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고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도 일어나지만 큰 어려움 앞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거센 바람을 볼 땡에는" 점 점 더 큰 깊은 수렁에로 점 점 큰 불신으로 빠져들게 된다. 의심이 든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의심은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숙시켜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면 우리의 불신만을 더욱 더 크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의심이 들 때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