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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금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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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금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 기념일 -마태오 13, 54-58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나를 넘어서라>
정말 큰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모릅니다. 성취하신 학문의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안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인품까지 겸비하셨습니다. 그러니 후학들이 이분을 흠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주 되풀이하셨던 강조점이 하나 있었는데, 정말 특별했습니다.
“나를 넘어서라!”
“나를 딛고 올라서라!”
당시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어느 순간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나서 ‘그게 과연 될 말이냐?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점점 흐르면서 그분께서 남겨주신 말씀이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부족하다 못해 한심한 우리들, 갈 길이 먼 우리들 안에 깃든 가능성을 소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낮은 수준, 덜떨어짐, 미성숙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그릇 안에 담겨져 있는 무한한 가능성, 역동성, 가치, 보물, 더 나아가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추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자렛 사람들의 완고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부터 봐온 소년 예수 안에 담겨져 있었던 가능성, 잠재성, 신성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메시아를 거부하는 심각하고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웃을 받아들인다는 것, 가까운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은 덕 중의 덕입니다. 겸손의 덕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모습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받아들입니다. 바깥사람들에게는 한 목소리로 칭송을 받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 호인(好人)중의 호인으로 인정받습니다. 바깥에서는 얼굴이 환한 미소로 가득합니다. 목소리도 그렇게 다정다감할 수 없습니다.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은 표정입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만은 예외입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딴 사람으로 돌변합니다. 폭군도 그런 폭군이 없습니다. 눈에는 쌍심지가 켜집니다. 칼을 하나 품은 사람 같습니다.
예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나자렛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바깥사람들이 가끔씩 우리 형제들에 대해 말합니다.
“저 수사님, 정말 사랑이 많으세요.”
“저 신부님, 정말 날개 없는 천사예요.”
그럴 때 ‘아, 그래! 내가 평소에 못 보는 그런 좋은 면도 있었구나.’라고 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이 드는 지 아십니까?
‘자매님 그 수사님 성깔을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형제님, 그 신부님과 단 하루만이라도 같이 살아보고 그런 말씀 하세요!’
이 역시 예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나자렛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웃들, 나를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 안에는 신성(神性)이 들어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또 다른 얼굴의 예수님이며, 그들은 우리에게 파견된 또 다른 메시아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2번 / 너그러이 받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