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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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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이 감사하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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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8-18 ㅣ No.58069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20주간 수요일 -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것이 감사하지 않다면


 

제가 본당에 있을 때 알았던 한 청년 자매가 “저는 사람들을 죽이고 평생 못된 짓만 하다가 죽기 전에 회개해서 구원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생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정말 내 가족에게 그런 짓을 한 사람이라면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한 사형수를 기억합니다. 제 대자 중 한 명의 형님이었는데 청부 살인을 하고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물론 사형 선고를 받고 하느님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누구보다도 영웅적으로 사형장으로 걸어갔습니다. 좋은 곳에 간다고 울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정도였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을 당한 당사자라면 그런 회개가 화가 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밀양’이란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밀양에서는 아들을 살해한 자가 회개한 모습을 보고 그 어머니가 매우 화가 납니다. 자신은 그렇게 힘든데 자신을 힘들게 한 그 사람은 너무 편안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매도 어쩌면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나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질문을 한 자매는 그 때 냉담 중이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는 성당활동도 매우 열심히 하면서 성당에서 살다시피 한 신앙심 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냉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원은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의 상태가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산부인과 의사를 하시며 평생 낙태와 불법적인 성감별 등을 하시며 사시다가 70이 훨씬 넘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신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황혼에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 받은 지 1년 반 만에 신구약 필사를 하였고 매일 기도로 회개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비록 질문을 했던 그 자매가 몇 년 전만 해도 성당에서 봉사도 훨씬 많이 하였지만 지금 당장의 모습으로는 구원받기에 더 합당한 사람은 그 할머니나 제가 알던 사형수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벌어질 상황에 대해 미리 아시고 비유를 통해서 먼저 하느님을 알게 된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첫째가 꼴찌가 될 수 있고 꼴찌가 첫째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포도밭에서 일한 사람은 포도원 주인에게 오히려 꾸지람까지 듣고 마지막 한 시간 남겨놓고 와서 일한 사람은 제일 먼저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똑같은 임금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즐길 것 다 즐기다가 늦게 세례를 받고 마지막에 불타는 마음으로 잠깐 살다가 죽는 것이 더 좋은 일일까요? 인간이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건 어리석은 모험입니다.

 

우리는 왜 먼저 아침부터 일한 사람이 나중에 일하러 온 사람을 질투하게 되는 것인지 깨달아야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루 종일 ‘고생’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느님을 따르는 것이 고생일까요? 세상적인 눈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 미사하고 기도하고 쉽게 넘겨버릴 잘못도 양심상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힘들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 힘든 사람들은 하느님을 모르고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행복하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오히려 늦게 하느님을 알게 된 이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을 모르고 온갖 고생을 하다가 늦게나마 참 행복을 알게 된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마음이어야지, 그 형의 마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버지 집에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아버지를 덜 사랑해서이고, 어쨌건 아버지의 집을 떠난 사람은 탕자처럼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남들은 일하고 있는데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포도원 밖에서 하루 종일 빈둥대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이들은 일용직이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내일 아이들이 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걱정 속에서 일을 못하고 포도원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쉬울까요, 아니면 포도원 안에서 비록 고생은 하지만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일하는 것이 더 행복할까요?

그러나 오늘 포도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마음이 악하여 행복으로 불러주셨음에도 그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고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비유에서 아침에 고용되었던 사람들이나,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의 형이나, 혹은 저를 찾아왔던 한 청년처럼, 늦게나마 회개하여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직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주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미사 때, 그 행복으로 기쁨의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오천 명 앞에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감사할 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합니까, 아니면 힘겨운 의무처럼 느껴지십니까?

 

 

 
 
 
<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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