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
(홍)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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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과 함께 멋진 춤을 . . . . [서강대 장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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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jangmee] 쪽지 캡슐

2007-07-13 ㅣ No.28817

 

 

 

   아,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최대제 신부님께서 제게 전화를 해서
 
   “이번에는 선생님 제자들이 무더기로(!) 서품을 받으니 
 
   당연히 선생님이 축하 글을 쓰셔야지요.”
 
   라고 원고청탁을 하셨습니다.
 

   최신부님이 말씀하기 전부터,
 
   아니, 작년에 내 제자 수사님들이 부제품을 받을 때부터
 
   혹시 내게 서품 기념 축하글을 쓰라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해 왔던 일이었지요.
 
 
 
   온갖 핑계로 걸핏하면 주일미사도 빼먹는 제가
 
   감히 새로 서품 받는 신부님들에 대한 바램이나 격려의 글을 쓰다니,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이 슬며시 미소 지으실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서품 받는 부제님들은
 
   모두 제가 잘 아는 분들입니다
 
   김치헌, 윤성희 부제님은 서강대 영문과 졸업생으로
 
   제 수업을 기록적으로 많이 수강한 직속제자들이며
 
   이근상 부제님에겐 제가 한 학기동안 영작문‘개인교습’을 했었고
 
   그리고 류충렬, 조인영 부제님도 제가 자주 뵙고
 
   좋아했던분들 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인으로서,
 
   그리고 스승으로서 새 사제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을 법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참으로 새삼스럽습니다
 
   교실 안에서만 만나던‘귀여운’우리 제자들을
 
   이제 성당에서 장백의 입은 모습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재미있기도 하고 기쁘고 설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난 하늘나라에 빽줄이 동앗줄처럼 튼튼해졌다고...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마음이 짠해 오는 것을 느낍니다.
 
   사제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 길인가를 잘 알기 때문에
 
   내 제자들이 그길을 택했다는 것이
 
   대견하지만 안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한 가정을 꾸미는 것도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데,
 
   사제가 된다는 것은 누구 제자, 누구 아들,
 
   김치헌, 윤성희, 이근상, 류충렬, 조인영은 없어지고
 
   오로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예수님이‘되어야’한다 --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새 사제님들께 저는‘됨’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좀 어두운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신부님이 제게 원고청탁을 하신 바로 다음날
 
   전 아주 슬픈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슬픈 경험이었지요.
 
 

   그날 아침 수업이 없어 늦잠에서 깨어난 저는
 
   여느 때처럼 무심히 이메일을 열었습니다
 
   지난달 한 번 제게 찾아와 상담한 적이 있던
 
   컴퓨터과 3학년 엄군의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이 강박증 환자라고, 죽음까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괴롭다고 말이지요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면서 전 세례 준비반에 들어가서
 
   하느님을 믿어 보는 게 어떨까
 
   예쁜 여자친구를 가져보는 건 어떨지,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면 강박증은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이고,
 
   이미 나아서 학교 잘 다니고 있는 학생도 많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 구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제 수필집 한권을 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독후감을 써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게 꼭 한 달 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온 장문의 메시지에서 엄군은 이렇게 쓰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그날 절 이해하시고 절 위로하시려고 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너무 깜깜해서
 
     그 말씀은 한줄기 빛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제 모든 죽음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독후감을 내지 못하고 가서 죄송합니다....’ 
 
 

   8시 16분 발송된 그 메일을 제가 연 것은 9시 50분쯤이었습니다. 
 
 
   정신없이 그 학생의 부모님과 학교에 알리고 행방을 찾는 동안,
 
   12시 반경 저는 관악경찰서로부터
 
   그 학생이 9시 50분에 봉천역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속절없이 그 학생을 보내고 나서
 
   전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날 아침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서 그 이메일을 열었다면,
 
   상담 때 그 학생이 말한‘죽음’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지난 한 달 동안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 학생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왜 하필이면 거의 생면부지인 내게 유서를 남겼을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얼마나 아팠으면 그렇게 죽음을 택했을까
 
 

   그리고 저는 너무 늦게,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내가 그 학생에게 해준 말은 선생이 제자에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 의례적으로 하는 껍데기 말에 불과했다는 것을
 
   내가 그 학생에게 조언한 것은 진정한 조언이 아니었고
 
   단지 그 학생 위에 서서 선생으로서의 체면에 맞는‘이론’을
 
   떠들었을 뿐이었다고
 
 
 
   내가 바로 그 학생이‘되어야’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습니다. 
 
   내가 바로 그 학생이 되어서 그의 그 깜깜한 세상에 함께 들어가
 
   손을 잡아 주었어야 했는데…,
 
   무서워 떠는 그 학생을 꼭 안고
 
 
   ‘괜찮아, 넌 혼자가 아니야, 내가 널 구해줄게,’
 
   하고 말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걸 못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는 그 학생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 신부님들이 예수님이‘되어야’한다는 말은 바로 그뜻입니다.
 
   사제들은 예수님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사제들은 하느님의 대변자로서 만인 위에‘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고 힘든 사람이‘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깜깜한 세상에 함께 들어가 그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스승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아까운 생명을 보냈지만,
 
   내 제자 신부님들만은 꼭 그렇게 해 주리라 믿습니다
 
 

   어디선가 영어단어 GUIDANCE (인도, 이끌음)의 스펠링을
 
   멋지게 뜻풀이 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G 는 물론 God 의 첫 글자이지요. 
 
    UI 는 You and I 라고 합니다. 
 
   그럼 나머지 다섯 철자, dance (춤추다)가 남습니다. 
 
 
 
   즉 Guidance 는 하느님 안에서 너와 내가 함께 춤추는 일이라고 합니다. 
 
   전 춤을 못 추지만 함께 추는 춤의 제 일 원칙은
 
   박자를 맞추는 일이 아닐까요.
 
   내가 한 발 내밀면 상대방이 한 발 들이밀고,
 
   그렇게 하느님 안에서 덩더꿍 춤추는 일이 바로 Guidance 라는 겁니다.
 
 
 
   자 이제 신부님들이 하느님과 함께
 
   아름다운 춤을 출 음악의 서곡이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이번에는 티비를 통해서만 보았던 사제 서품식에 가 보려고 합니다.
 
   우리 제자들이 납작하게 엎드려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모습을 보면
 
   감격하여 눈물이 날 듯도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자랑스러워 저 멋진 새 신부님들을
 
   잠깐 동안이라도 제게 맡겨 주셨던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신부님들께 이제 사랑하는 내 제자가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사제로서 새로운 사랑을 고백하겠지요.
 
 

   사랑합니다, 신부님!
 
 
               
        
                         - [예수회 말씀의 집] 에서 모셔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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