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필귀정을 향해 간다

스크랩 인쇄

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13-07-19 ㅣ No.2568

              세상은 사필귀정을 향해 간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다. ‘만사(萬事)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리(正理)’란 무엇인가? 바른 이치, 올바른 길이라는 뜻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에 해당하는 이 사필귀정은 개인사는 물론이고 모든 세상사에 두루 적용된다. 사필귀정의 원리 속에서 세상은 돌아가게 마련이다. 달리 말하면 세상은 궁극적으로 사필귀정에 의해, 사필귀정을 위해, 사필귀정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역사발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정리와 정의를 내포하는 것이기에 스스로 창조력과 생명력을 지닌 채 사필귀정의 원리는 오늘도 굳세게(때로는 은밀히, 표 나지 않게) 작동을 이어간다.

사람들이 사필귀정의 원리나 법칙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또 그것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세상은 필연적으로 정리와 정의의 길을 추구하니, 그것은 뭇 사람들에게 ‘희망’으로도 작용한다. 이 세상에는 사필귀정의 원리를 믿고 의식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알게 모르게 그것에 의해, 그것을 위해, 또 그것을 향해 자기 몫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세상은 다양하고도 오묘한 것이어서, 정(正)과 사(似)가 뒤섞이게 마련이다. 때로는 사가 본(本)을 압도하고 능멸하며 정의 자리를 꿰차기도 한다. 사가 권력을 쥐고 현세를 주름잡으며 역사를 오도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현상에 저항하는 선각의 양심들이 모진 수난을 당하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는 대부분 투쟁사로 점철된다.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오늘에도 정과 사의 싸움은 갖가지 형태로 끊임없이 지속된다. 사필귀정은 속도가 느리고 곡절이 하 많아서 망실과 무의식 속에 갇혀 제대로 포착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필귀정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일은 여전히 권세를 지닌다. 현실적인 힘을 지니고 있기에 분열증식의 마력도 발휘한다. 화려한 독버섯의 형태와 다름없다.

오늘은 친일세력의 발호에서 그런 현상을 목도한다. 친일세력의 대표적 집단은 ‘뉴 라이트’라는 사이비 학자들이다. 그들은 일제 침략과 36년 식민통치를 과감하게 미화한다.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겼고 기틀을 만들었다는 궤변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는 안중근 장군과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런 친일 근성의 연장선에서 이승만을 옹호하고 추앙한다. 이승만의 독재 권력과 부정부패, 3‧15부정선거, 그리고 4‧19혁명 등에는 가림 막을 치려하면서 남한만의 정부수립에만 방점을 두고 이승만을 ‘국부’로 부르기도 한다.

그들의 이승만에 대한 추앙은 그대로 박정희에게로 전이된다. 황군 출신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18년 장기집권‧철권통치도 ‘산업발전’이라는 포장지로 채색한다. 그들은 박정희의 혹심한 인권탄압 속에서 목숨을 잃고 피를 흘리며 고초를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에 대해서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친일 근성은 곧잘 숭미주의로 치환되기도 하고, 독재 권력에 대한 옹호는 반공 구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국을 조국처럼 여기면서도 미국의 민주주의를 철저히 따르려 하지 않는 것도 그들의 이율배반적 특징이다.

그들의 근성과 특징을 꿰뚫어보면 패배적이고 굴종적인 노예근성의 한 가지 유형임을 감지하게 된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아니었으면 근대화의 기틀을 일찍 마련하지 못했으리라는 관점, 이승만이 아니었으면 정부 수립을 하지 못했으리라는 시각,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가 아니었으면 산업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주장 등은 우리 민족의 잠재 능력을 스스로 부인하는 비굴한 사고방식이며, 우리 민족의 장점들을 애써 말살하려 했던 저 일제의 수법을 알게 모르게 답습하는 짓이다.

민주주의를 철저히 파괴하고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를 만나지 못했으면 우리나라가 절대로 산업발전을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단정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치부하는 짓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친일 근성과 독재미화 근성을 자신들만의 ‘소장품’으로 삼지 않고 어떻게든 우리 사회에 유포시키려고 애를 쓴다. 급기야는 그것을 중‧고생들의 교과서에도 담으려고 소매를 걷어붙인 형국이더니, 드디어 오늘 정권의 성격에 편승하여 소기의 목표를 이루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친일 유전자의 왕성한 분열증식을 보는 것 같다. 그 분열증식 운동이 어디까지 전개될지 자못 흥미롭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또다시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물론 절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다시 친일의 선봉에 서서 민족반역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노라고 미리 선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준비 작업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독재 권력이 다시 출현하면 기꺼이 권력의 주구가 되어 열심히 활약하여 그 안에서 기득권의 성벽을 더욱 드높이 쌓겠노라고 만천하에 공표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 그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요지경 속인 것처럼 어지럽다.

그들은 오늘 득세와 창궐의 장을 열어간다. 정권의 속성에 부응하고 언론 환경에 기대어 착실히 그들의 근성을 유포하고 소기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영구성을 지닐 수는 결코 없다. ‘정(正)’과 ‘본(本)’이 아니기 때문이다. 친일 근성이 정일 수 없고, 독재미화가 본일 수 없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다.

아무리 갖가지 수사를 동원하여 미화하고 채색을 한다 하더라도 ‘사(似)’가 본이 되거나 정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한때 정권에 편승하거나 사회적 여건에 따라 득세는 할지언정 결코 그름이 옳음의 자리를 영구히 꿰찰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 이 세상은 사필귀정 안에서, 사필귀정에 의해, 사필귀정을 향해 움직여 감으로…. 그것이 오늘 당장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을지라도….


*<태안신문> 2013년 7월 18일/목

54

추천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