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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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불평, 마리아의 침묵(연중 27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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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10-10 ㅣ No.1628

 

2000, 10, 10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복음 묵상

 

 

루가 10,38-42 (마르타와 마리아)

 

그 때에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묵상>

 

1986년 여름, 대학교 3학년 때 경상북도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열리는 '마오로 축제'라는 성소 피정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교구 사제 성소에 대해서는 생각을 했었지만, 수도 성소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던 제가 본당 수녀님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죠.

 

피정 일정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성소 담당 신부님과의 개별 면담, 수도원 일과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밤까지 같이 기도하는 것, 수도원 곳곳(농장, 목공실, 출판사...)을 견학하는 것 등이었죠.

 

23일의 일정 중에서 둘째 날 밤에 수사님들과 피정자들 간의 다과회를 겸해서 만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수사님들의 생활에 대해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수사님들께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물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제가 참 어렵게 말을 꺼냈습니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천국 같았습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가 지닌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아름다운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내 것 네 것 없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입니다. 특별히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찌든 제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물음이 생깁니다. 지금 밖에서는 독재 정권에 맞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려고 온 몸을 바쳐 투쟁하고 있는데, 과연 수사님들께서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수사님들 자신은 아름다운 주님의 공동체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계시지만, 밖에 있는 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조금은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이었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는 듯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수사님 한 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기도를 합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함께 합니다. 기도로써 함께 합니다..."

 

당시 대학생으로서, 교회 청년으로서 나름대로 현실 참여를 하고 있던 저는 이 말씀을 있는 그대로 곱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면 분위기가 영 엉망이 되겠다싶어 입을 다물었지만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요. 수사님들은 이곳에서 편안게 지내면서 기도 열심히 하십시오. 그런다고 뭐가 됩니까? 지금은 함께 어깨 걸고 싸워야 할 때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주님의 일입니다.  저는 열심히 싸울 것입니다....."

 

몇 마디의 말이 더 오고 갔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가 삼가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수사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 수사님의 몫이 있고, 제 몫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각기 고유하게 주어진 주님의 달란트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몫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몫이 최고인양 저에게 강요할 수 없듯이 저 역시 저의 몫만을 최고로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각기 자신의 몫을 가지고 주님 섬기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배고픈 주님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마르타의 모습에서, 주님 발치에 않아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주님을 진심으로 섬기는 믿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하나의 아쉬움이 있다면, 마르타가 자신의 몫을 동생 마리아에게 강요하지 않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일을 결코 하찮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의 시중을 들지 않았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마르타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리아야! 내가 지금 예수님의 시중을 들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여유가 없구나. 잘 들어 놓았다가 나중에 나에게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 해주겠니. 나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구나."라고 말입니다.

 

활동과 관상!

믿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두가지 몫입니다. 어느 것에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모두 완전히 수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의 달란트, 소질, 관심 등 여러가지 이유로 어느 하나에 좀 더 비중을 두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따르는 길에서 자신의 몫일 것입니다. 이 몫에 충실하면 됩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있는 사람을 자신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맞추어서 안됩니다.

 

저에게 주어진 몫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제 자신을 볼 때 시중드는 마르타의 몫이 저의 몫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동생을 곱지 않는 눈으로 보는 마르타의 불평보다, 언니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는 마리아의 침묵을 배우고 싶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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