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도와주는 자가 행복하다.

스크랩 인쇄

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9-06 ㅣ No.7173

 

 

외출했다 돌아온 아내가 전화통을 붙잡고 어쩔 줄 몰라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전화를 끊었다 걸었다를 되풀이했다. ’지갑’이 어떻고, ’연락처’가 어떻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갑을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잃어버린게 아니라 주운 것이었다. 경춘국도 변의 한 휴게소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갑에는 얼마간의 돈과 신용카드 몇장, 수첩과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아내는 지갑 임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명함에 적혀 있는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고, 어눌하지만 "여보세요"하는 여성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런데 더 이상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아듣기 힘든 한두마디 목소리가 들리다가 곧 끊겼다.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당신의 지갑을 가지고 있다, 전해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느냐, 나는 화도 휴게소에 있다, 하고 수십번 말해도 반응이 없었다. 알아듣기나 했는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아내는 거기서 그만 포기하고 싶었지만, 두어번 지갑을 잃어버렸던 그때의 답답한 심정을 떠올리며 조금만 더 노력해 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다시 지갑을 뒤져 충청도 어느 도시에 사는 지갑 임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ㅇ낳았고, 하는 수 없이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차 안에서도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내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답답해하겠느냐고, 어떻게든 안심을 시켜야겠는데 길이 없다고,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전화를 걸어 댄 것이라고 말했다.

 

지갑 임자의 부모와 연락이 된 것은 그날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노인은 사정을 이야기하자 딸이 말할 줄 모르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통화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노인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라고 일러주었다.

 

네 시간에 걸친 안절부절이 겨우 끝이 났다. 이튿날 아침 일찍 지갑은 스물 다섯 살의 얼굴이 예쁜, 그러나 말을 할 줄 모르는 주인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고맙다고 인사하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아내였다. 나는 아마도 지갑을 잃었다가 되찾은 그녀보다 지갑을 찾아 주려고 밤새 애를 쓴 아내가 훨씬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은 자주 말해졌지만 더 많이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조금 행복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은 많이 행복하다. 그렇다면 고마워했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아내인지 모른다.

 

- 이승우(소설가)



527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