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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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받기를 두려워하는 사제(연중 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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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1-10-07 ㅣ No.2857

 

 

2001, 10, 7  연중 제27주일 복음 묵상

 

 

루가 17,5-10 (믿음의 힘, 종의 처지 비유)

 

사도들이 주께 "저희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째 뽑혀 바다에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가 밭갈이하고 양치는 종을 두고 있다면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에 '어서 와서 식탁에 자리 잡아라' 하겠습니까? 오히려 그에게 '내 저녁부터 마련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내 시중을 들어라. 그러고 나서 너는 먹고 마시거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종이 명령받은 대로 했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습니까? 그처럼 여러분 역시 명령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도 '저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저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시오."

 

 

<묵상>

 

사제 생활을 통해서 익숙해지는 것에 하나가 '받는 것'입니다. 축일이다, 명절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물질적인 것들을 받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을 하든지 그 뒤에 따르는 '고맙습니다, 신부님'이라는 말도 빼놓을 수 없으며, 그 외에도 예상치도 않은 많은 것들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쑥스러웠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습니다. 아니 내심으로는 받는 것을 점점 더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고, 그러기에 뭔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솔직히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점점 때가 묻어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제(사제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지만)란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누는 것'을 삶으로 삼아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과연 사제로서의 연륜이 쌓일수록 자신을 나누고 나누어 점점 작아지고 낮아지며 순수해질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신자들에게서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순간에 사제가 될 때의 첫마음을, 사제가 되고자 결심했던 때의 순수함을 떠올려 봅니다.

 

사제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기꺼이 순수한 마음에서 사제에게 무엇인가를 줍니다. 사랑과 관심, 따뜻한 말 한디, 환한 웃음, 여러가지 물질적인 것들, 그리고 다른 무엇들을 말입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억지로 이분들의 순수한 뜻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랑받는 것' 역시 사랑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 그 순간부터 사제의 삶은 흐트러지게 될 것입니다. 참된 사제이고자 한다면, 사제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을 때, 진정 자신에게는 분에 넘치는 선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받을 자격이 없는 자신을, 나누기보다 받기를 즐겨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제로서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말아라.

사제로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

사제로서 대접 받기를 두려워 하는 사제가 되어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당신의 사제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 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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