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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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답하기 천주교 ㅣ 성경 ㅣ 7성사 통합게시판입니다.

q 욥기를 읽고 쓴 글을 참고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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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석 [pedro12] 쪽지 캡슐

2010-02-11 ㅣ No.4090

욥의 고난
 
작성자   송두석(pedro12)  쪽지 번  호   146184
 
작성일   2009-12-28 오전 5:09:04 조회수   72 추천수   13
 
 
어제 밤 늦게까지 욥기를 읽었습니다.
 
욥기를 읽을 때 마다 감동을 받게 되는 성경구절이 각기 다른 이유는
아마 성경을 읽는 제자신의 심적인 상태하고도 관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어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읽은 부분은 38장이하 하느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40장 8절의 말씀이 제 마음에 울려 퍼졌습니다.
 
"너 자신(욥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나(하느님)를 단죄하려느냐?"
 
 
우리 앞에 전개되는 상황과 환경이 우리의 뜻과 너무나 다를 때, 그리하여
우리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감히 하늘을 향해 욥과 같이 불평을
터트리게 됩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사탄을 통해 허용하시는) 시험과 고난은 욥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욥을 하느님께서
부당하게 다루고 계신다는 불평과 불만이 욥의 심령에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욥은 31장에 나오듯이 자신의 의로움을 절절히 호소하고 급기야
35절에서 하느님께서 욥의 억울함(욥이 옳고 하느님이 욥을 잘못
다루고 계심)에 대해 대답하셔야 됨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이제는 전능하신 분께서 대답하실 차례!"
 
어찌하여 의로운 욥에게 하느님의 잘못된 섭리로 고난과 고통을 허락하시는지 
하느님께서 스스로 나타나셔서 하느님이 욥에게 잘못했음을 고백이라도 하라는
듯이 하느님께 대드는 욥의 분노한 태도가 엿보입니다. 다시말해 의로운 욥에게,
의롭지 못한 하느님이 고난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으니, "어서 내 앞에 와서 내(욥)말을
잘 듣고 나서 앞으로는 제대로 똑바로 의롭게 섭리해 보시오. "하는 듯이 욥이 하느님께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욥에게 드디어 하느님이 나타나시어 38 장 이하 41 장까지 하느님의 섭리를
말씀하시며, 바로 그 유명한 하느님의 질문이 욥에게 던져집니다.
 
"너 자신(욥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나(하느님)를 단죄하려느냐?"(40장 8절)
 
"불평꾼(욥)이 전능하신 분(하느님)과 논쟁하려는가?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욥)은
응답하여라."(40장 2절)
 
욥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하느님을 알고 드디어 다음과 같이
하느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42장 3절)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않아 참회합니다." (42장 6절)
 
하느님을 모르던 욥은 스스로를 의인으로 여기고 오히려 하느님께서 욥에게
잘못된 섭리를 베푸시는 의롭지 못한 하느님이라며 전능하신 하느님을 비난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뵙게 된 욥, 즉 하느님을 체험하여 알게 된 욥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스스로를 죄인으로 알게 되고 하느님 앞에 참회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고
형제를 불의한 사람으로 봅니다. 심지어 하느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심오한 섭리에 대한 이해도 없으면서 불평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대한 어렴풋한 이해가 있을 때, 우리는 감히 형제와 이웃을
향해 증오나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못하게 되는데, 성령께서 우리 안의 죄를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지 남의 죄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 전에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지, 하느님께 남의 죄를
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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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과 같이 변화된 욥은 다시 아들 딸 열을 얻고 재물을 두배로 얻어,
하느님의 의(하느님의 뜻을 알게됨)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물질적 축복까지
얻게 됩니다. 신약의 복음서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듯이 먼저 하느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에 곁들여 물질적 축복까지 더해주십니다.
 
반면에 근거없이 욥을 모함하던 욥의 세 친구들을 나무라시며    욥에게 가서
번제물을 하느님께 바치고 욥으로 하여금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빌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의인(욥)의 기도를 듣고 벌을 하지 않겠다 말씀하시는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욥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육신을 입은 인간이 감히 하느님께 스스로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도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는
사뭇 신비에 싸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의 제한된
이해력으로 하느님의 섭리(성경말씀)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을 하게 되면 하느님의
준엄하신 심판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의로우셔야 하느님이다" 라는 명제는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의로우시다" 라는 명제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의로운 것이지 의로운(인간이 보기에 상대적으로 의로운) 일을 하셔서 하느님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우심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어떤 때에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인간에게 의롭지 못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것은 순전히 사람의 생각인 것이지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절대적으로 의로운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하겠습니다. 만일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의롭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사람은 스스로가 하느님 보다 의롭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본인 스스로를 하느님 보다 높은 자리에 올려 놓는 교만한 상태에 있게 됩니다.
 
셋째로 인간들은 절대적으로 의로울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더 의롭고 덜 의롭고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보시기에 상대적으로 의로운 욥은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욥의 친구들(욥을 모함한 친구들)은 하느님께 책망을 듣고 속죄제물을
바쳐야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인인 욥의 간구기도까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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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입니다.
욥이 고난을 통해 정금과 같이 나와서 드디어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재물을 두배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깊게 살펴보면, 마누라는 두배로 받은 것이 아니고 그냥 도망갔던
마누라가 다시 와서 다시 같이 사는 것으로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것을 보면
하느님 보시기에도 마누라가 하나 이상이 되면 욥에게 있어 또다른 고난이 시작될까봐
염려하시어 마누라 숫자는 두배로 늘려주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추측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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