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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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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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7-31 ㅣ No.3891

7월 31일-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예레미야 15장 10절, 16-21절

 

"아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나라 사람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 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진 일이 없고 준 일도 없는데, 사람마다 이 몸을 저주합니다."

 

 

<고통 요법>

 

오늘 첫째 독서에는 예언자로 불림 받은 예레미야의 난감하고도 절박한 심정이 손에 잡힐 듯이 잘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당시 예레미야는 아주 어린 나이(15-16세)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즘으로 치면 개념 없이 살아가는 중학교 3학년 나이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전혀 세상을 모르던 소년, 미성숙한 소년, 그 나이 특유의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소년, 이런 모든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알고 있기에 극구 거절하던 소년 예레미야를 당신 도구로 선택하십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하느님께서는 이토록 겁이 많고 나약한 소년 예레미야에게 너무도 엄청난 짐을 지우십니다. 그 짐은 다름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좋다. 잘하고 있으니 더 열심히 해라. 잘될 것이다"는 식의 긍정적인 말씀이라면 누군들 그 사명을 마다하겠습니까? 예레미야가 전할 말씀은 너무도 혹독한 내용이었습니다. 유다 고관들과 지도자들을 찾아가 "유다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곧 망할 것이다"는 귀에 가시 같은 경고성 발언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정치 정자도 모르는 중학교 3학년짜리 학생에게 국회의원들이 다 모여있는 국회 대의사당으로 가라는 말입니다. 그 노련하고 정치에 정통한 국회의원들 앞에서 "한국 정치가 썩었다. 곧 망할 것이다"고 말하라는 것과 비슷한 요구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중학교 주일학교 교리반 학생을 한국 주교님들이 모두 모인 전체 주교회의 석상에서 "한국 교회는 실패입니다. 곧 교회는 문닫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라는 요구와도 같습니다.

 

참으로 무리한 요구였습니다. 소년 예레미야의 심정은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멀리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어쩔 수 없이 전하라는 대로 한번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은 했었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이 녀석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돌아다니더니 드디어 맛이 같구먼. 너 이 녀석 그딴 소리 한번만 더 하면 그 주둥이를 확 어떻게 해버릴거다."

 

말씀을 전한 후 예레미야에게 돌아오는 것 중에 좋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비웃음, 조롱, 돌팔매질, 정신 이상자 취급,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뿐이었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예레미야는 마침내 자신이 태어난 날 마저 저주하며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한테마저 자신을 세상에 낳은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합니다. "아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오늘 예레미야의 삶과 고통을 묵상하면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 서원을 통해 수도자가 된다든지 서품을 통해 사제가 된다는 것은 현실적인 행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고통을 껴안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박해받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의사표현입니다. 서원이나 서품을 청한다는 것은 십자가나 죽음을 기쁘게 수용한다는 표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적용하셨던 고통의 요법을 우리에게도 사용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고통과 좌절, 회의의 순간을 맛보게 하신 후 마침내 한가지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안간힘을 써보아도 하느님의 구속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없다는 진리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히 항복시킵니다. 우리를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치시고, 그래서 이제 우리가 오직 그분밖에 의지할 곳이 없음을 알게 한 후에 당신께서 개입하십니다. 그런 정화와 단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우리는 보다 합당한 모습으로 주님을 선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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