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 나루터와 강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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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용 [salva] 쪽지 캡슐

2013-06-21 ㅣ No.2455

+ 찬미예수님!

모처럼 집사람과 강원도 여기 저기 돌아 보고 오는 길에 고향 여주에 들렸습니다.
오후 늦게 도착해 브라우 나루터와 강천보만 둘러보고 왔습니다.
간단한 설명 붙여 사진 몇 장 올립니다.



남한강 상류, 강천보 있는 자리에 흐르는 강을 여주 사람들은 브라우강이라고 부릅니다.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할머니 산소를 찾아 가시는 아버지 손을 잡고 이곳에서 나룻배를 탔었지요.   
마주 보이는 마을이 아버지가 태어나시고 중학 때까지 사셨다는 오감입니다.
나루터는 나무가 울창했던 언덕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큰 나무 하나만 남아 추억의 이정표가 되었네요.  





방학 때면 이곳을 찾던 60년대에만 해도 이곳은 물이 맑고 수량도 많고 물살이 굉장히 거셌습니다.
수영 실력이 시원찮거나 성질이 급한 사람이 함부로 뛰어 들면 심장마비 걸리기 십상이었지요.
그러던 강이 90년대에는 강바닥이 높아져 장마 때 아니고서는 걸어서 건널 지경으로 변했습니다. 
양수기로 물을 끌어 오려고 해도 너무 멀어서 농사 짓는 분들이 고생이 심했지요.





보 위로 올라와서  내려다 본 앞의 사진을 찍느라고 차를 세웠던 보 바로 앞의 동네 모습입니다.
강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수해나 가뭄이 통제가 되니 강과 동네의 거리가 가까워졌습니다.
저런 정도의 거리라면 가뭄이 든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요.
다만 강이 오염되지 않도록 모두가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저렇게 마을이 강과 붙어 있어도 마을 앞을 흐르는 강물은 맑은 곳이 선진국입니다.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립니다.
물의 일부는 수력발전에 이용이 된다고 합니다.

보 전체를 바라보며 우리 국민들이 참으로 큰 일을 해냈구나 싶었습니다.
60년대만 해도 강 건너에는 전기도 없었고, 라디오도 줄을 연결해 스피커만 달아놓은 집들이 많았던 곳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모습이었고, 그 당시에는 지금의 모습을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한강도 템즈나 세느나 라인이나 다뉴브 등 세계적인 어떤 강에도 떨어지지 않는 좋은 강입니다만
이제 4대강 중 어느 강을 가서 보아도  그 격이  대단히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일부터 저질러 놓고 후속작업을 통해 보완을 해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발전 전략이었습니다.
도로 항만 통신 등의 기반구조 뿐 아니라 철강 조선 화학 전자 등 기간 산업도 유사한 패턴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초기에는 흔히 과다 투자 같아 보였던 일들이 몇 년 가지 않아 적정 투자로 판명되곤 했지요.
4대강도 이제 멋지게 시작했으니 머지 않아 어느 곳을 가보아도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식량 부족 이상으로 물 부족은 지구촌의 비극이자 골치거리이며
더러운 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과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실정입니다.

우리 국민은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 보았고 하나씩 극복해냈습니다.
춥고 덥고 가물고 홍수 지고 메마르고 척박한 한반도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꾼 우리 대한민국은
새로운 가나안이고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국민으로서 긍지를 지니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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