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nal Countdown - Europe
Origin Upplands Väsby, Sweden
Genre(s) Hard rock, Heavy metal, Glam metal
Years active 1979–1992
1999 (partial reunion)
2003–present
Label(s) Hot Records
Epic Records
Sanctuary Records
Associated acts Tone Norum, Easy Action, Dokken, Brazen Abbot, Last Autumn's Dream
Website www.europetheband.com
Members : Joey Tempest / John Norum / John Levén / Mic Michaeli / Ian Haugland
Former members : Kee Marcello / Tony Reno / Peter Olsson / Marcel Jacob
유럽이라는 밴드는 80년대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스웨덴 출신의 메탈밴드이다. 유럽의 출발은 1978년 베이시스트 Peter Olsson, 기타리스트 John Norum, 드러머 Tony Reno이 주축이된 밴드 Force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Roxanne라는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던 Joey Tempest를 영입하고 밴드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오랜동안의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쌓아갈 무렵 1981년 Peter Olsson이 밴드를 떠나게 되고 얼마후 밴드는 새로운 베이시스트 John Leven를 영입한다. 그러나 당시엔 거의 무명이었지만 스웨덴에선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Yngwie Malmsteen의 Rising Force(Alcatrazz 가입 전의 밴드)로부터 가입요청이 왔고 결국 밴드는 서로의 베이시스트를 교환하여 John Leven은 Rising Force로 그리고 후엔 다재다능한 뮤직씬에서의 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는 탁월한 베이시스트 Marcel Jacob이 Force에 가입한다. 하지만 잉위의 독재에 싫증난 John은 다시금 Force로 돌아오게 되고 Marcel Jacob은 다시금 Rising Force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Marcel Jacob은 밴드의 앨범에 많은 도움을 주게되고 John Norum의 첫 솔로 앨범에 참가하는 등 이때 맺은 인연은 그뒤로도 계속된다.
1982년 Thomas Erdtman은 "Rock SM"이라는 로컬 밴드들의 경연대회를 기획, 1등을 한 밴드에게는 앨범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여기에 많은 무명밴드가 자신들의 데모테잎을 제출한다. 약 4,000개 정도의 밴드가 참가한 대회에 Force 역시 Joey의 여자친구의 권유로 자신들의 데모테잎을 제작하고 "The King Will Return","Seven Doors Hotel", "Rock On", "Children Of This Time", "Paradize Bay"등 후에 자신들의 데뷔 앨범에 실릴 노래가 담긴 데모를 제작하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밴드는 대회 참가를 포기한다.
하지만 Joey의 여자친구는 멤버들 몰래 이 테잎을 제출하게 되고 결국 밴드는 1차 예선을 통과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듣게된 밴드는 자신들에게 온 기회를 잡기위해 연습에 몰두하고 밴드명 역시 Europe으로 변경한다. 하지만 당시 대회의 기획자이자 후에 Europe의 매니저가 되는 Thomas Erdtman는 당시에 스웨덴 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팝락밴드 Gyllene Tider(여기엔 후에 Roxette을 결성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게되는 기타리스트 Per Gessle이 제적하고 있었다)와 같은 밴드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밴드를 만나 Joey Tempest의 목소리에 반한 그에 의해 Europe은 경영대회에서 1등을 하게되고 밴드는 그들의 앨범을 제작할 수 있게 되며 Thomas는 밴드의 매니저 역할을 맡게된다.
준비끝에 1983년 2월 발매된 Europe의 첫 셀프타이틀 앨범 [Europe]은 사실 저예산 독립 앨범이라 할만큼 녹음상태가 좋은 앨범이 아니었지만 당시의 메탈씬에선 보기드물게 새로운 감각을 가진 앨범이었으며 한 일본의 락 저널리스트에 의해 소개된 이 앨범은 이웃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되고 일본내에서 발매되기까지 한다.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 Seven Doors Hotel"을 비롯해 발라드 넘버인 "Words Of Wisdom", 기타리스트 John의 정통파적인 접근이 돋보이는 연주곡 "Boyazont"등은 바로크 메탈과는 또다른 클래식적인 접근과 정통 하드락에 기초한 새로운 감각의 메탈넘버를 들려준다. 앨범 발표 후 자국내의 투어를 통해 밴드의 이름을 알리는 한편 밴드는 다음 앨범 준비에 착수한다.
이어 전영혁 아저씨의 소개로 국내에 자신들의 이름을 처음 알린 앨범이기도 하다. 뛰어난 발라드 넘버인 "Open Your Heart"과 "Dreamer"를 비롯해 뿐만 아니라 Marcel Jacob과 공동작곡한 곡으로 공격적인 기타리프가 매력적인 "Scream Of Anger", John의 멜로디 감과 메인테마에서 두드러지는 실험적인 프레이즈가 귀에 쏙들어오며 80년대 국내 인기 메탈밴드였던 태백산맥의 라이브에서 들을 수 있었던 명 연주곡 " Aphasia"등은 일신우일신한 밴드의 역량이 엿보이는 곡들이기도 하다. 밴드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강화하기 위해 그전까지 Joey가 맡고 있던 키보드 파트를 Avalon 출신의 키보디스트 Mic Michaeli에게 넘기고 드러머 Tony Reno 역시 Ian Haugland로 바꾼다.
밴드를 월드스타로 만들어준 앨범 [The Final Countdown]은 1986년 5월에 발매되었다. 사실 이 앨범은 앨범 작업이 끝난 뒤 앨범 커버가 아직 나오지 않아 상당기간 멤버들의 속을 태운 앨범이기도 하고 실제 미국내에서의 인기는 다른 국가에서 이미 많은 인기를 얻은 후 이루어지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Kevin Elson의 지휘아래 완성된 앨범은 이후 전세계적으로 65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밴드를 주류 메인 스트림에 올려준 앨범이기도 하다.
너무나 유명한 "The Final Countdown", 경쾌한 멜로디에 John의 개성적인 기타솔로가 매력적인 락넘버 "Rock The Night", 발라드 넘버 "Carrie"등은 M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뮤직 비디오가 되기도 한다. 하나 이 앨범은 이전작에서 보여준 하드하면서도 고급스런 메탈음악을 추구하던 밴드의 스타일이 미국 밴드 스타일의 팝적인 감각을 많이 띠게 되었음을 감지하게 한다.
이러한 밴드 스타일의 변화는 팝메탈 경향을 추구하던 밴드의 두목인 Joey와 원초적인 하드락 사운드를 원하던 기타리스트 John Norum과의 음악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John은 1986년 가을 일본투어를 마치고 자신의 솔로 활동을 위해 다른 밴드멤버들에게 자신의 탈퇴를 통고한다. 실제로 이 앨범 수록곡 "Love Chaser"를 들어보면 팝메탈적인 곡의 메인테마에 비해 거의 잉위스타일의 기타솔로위에 강력한 얼터너티브 피킹이 가미된 헤비하고 스피디한 기타 솔로는 약간의 이질감을 갖게 하기도 하며 밴드내의 음악적 균열을 보여주는 곡이다.
새로운 기타리스트를 찾아야만 하는 밴드는 같은 스웨덴 그룹인 Easy Action의 기타리스트인 Kee Marcello - 본명은 Kjell Lovbom - 에게 가입을 요청하게 되고 그가 Europe의 노래를 연습하는 동안 John Norum은 활동을 계속하여 다음해 10월까지 밴드와 투어를 계속한다. 독일 Dortmund에서 열린 라이브를 통해 팬들에게 첫선을 보인 Kee는 John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꿀 만한 역량을 가진 밴드였으며 그 역시기타 솔로의 기교보다는 메인리프에서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잘 만들어 내는 실력있는 기티리스트임을 증명한다. 한편 John 역시 자신의 솔로앨범을 통해 솔로로서의 길을 가게 된다.
1987년부터 시작된 미국 시장 공략은 - 개인적으로 썩 내키지 않는 음악적 잣대이기는 하지만 상업적 성공이라는 면에선 하나의 표준이 될 수 있는 - 빌보드 싱글 차트 8위에 오른 "The Final Countdown"의 인기에 힘입어 큰 성공을 이루고 미국 전역을 도는 투어를 통해 밴드는 드디어 메인 스트림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투어와 함께 밴드는 새로운 싱글 "Superstitious"을 발표한다.
1988년 발표된 앨범 [Out Of This World]은 역시 인기 프로듀서인 Ron Nevison의 지휘아래 이루어졌다. 하지만 팝락넘버를 주로 만들던 Ron의 지나친 오버프로듀싱에 의해 밴드 멤버들은 사실 앨범에 대해 그리 만족할 순 없었으며 오히려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더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도 한 앨범이기도 하다. 첫 싱글의 시큰둥한 반응에 이은 발라드 넘버인 "Open Your Heart", 경쾌한 락넘버인 "Let the Good Times Rock" 모두 전작의 큰 성공에 비해 큰 성공을 얻진 못했다.
또한 1989년부터 시작된 헤비메탈의 추락 - 사실 타성에 젖은 스스로가 자초한 몰락이기도 한 - 과 얼터너티브 락이 점차 메인 스트림을 넘보는 상황에 의해 밴드의 미국측 메니지먼트는 밴드에게 계약종료를 통고하여 밴드의 주무대는 유럽과 일본, 남미대륙으로 변하게 된다. 미국 시장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남미에서 밴드에게 보낸 팬들의 성원에 의해 칠레에서만 3만명 이상이 모일정도로 투어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1991년 발매된 밴드의 다섯째 앨범이자 밴드의 마지막 (?) 앨범인 [Prisoners In Paradise]은 여성 락커 Fiona의 남편이자 실력있는 키보디스트로서, Ratt, Warrant와의 작업을 통해 인정받는 프로듀서 Beau Hill의 프로듀싱으로 완성되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밴드는 강력한 얼터너티브에 맞설 밴드의 새로운 스타일에 고심했고 그들의 출발이기도 했던 하드락으로 돌아서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그들의 매니저와의 불화를 낳았고 결국 데뷔때부터 이들을 도와주던 매니저 Thomas Erdtman와 결별한 밴드는 자신들의 미국 데뷔와 투어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Herbie Herbert를 새로운 매니저로 맞아들인다.
앨범 발표후 밴드는 메탈리카와의 일본라이브를 마치고 유럽투어를 벌이고 MTV의 언플러그드 라이브에 초대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만 팬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얻기엔 힘겨웠고 이미 많은 락팬들의 귀는 얼터너티브의 원초적인 사운드에 익숙해져갔다. 결국 다음해인 1992년 밴드는 잠정적으로 활동 중지를 선언한다.
그해에 Joey는 John Norum의 솔로앨범에 참가하여 "We Will Be Strong"을 불러 팬들을 이로하기도 하였고 1995년과 1997년 자신의 솔로앨범을 발표하기도 한다. John Leven은 키보디스트 Mic과 함께 Glenn Hughes의 솔로앨범 [From now on...]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를 계기로 드러머 Ian Haugland와 함께 Fortune 출신의 보컬 Benny Soderberg를 영입하여 Clockwise를 결성 활동하고 있다. 기타리스트 Kee Marcello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세션활동을 병행하며 자신의 솔로앨범 [Shine On]을 1996년 발매한다.
밴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아쉬움을 남게된다. 80년대 락음악에 목말라있던 국내 고삐리 락팬들에겐 -이젠 거의다 30대지만 - 정말 청량제와 같았던 밴드이기도 했지만 초기의 유니크한 스타일이 점차 대중지향적 - 정확하게는 미국 지향적으로 - 변모되면서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이렇게 상실된 방향감각에 의해 결국 밴드는 해산의 길을 걷게된다. 그 아쉬움들 만큼이나 밴드의 초기 음반 특히 1,2집에서 느껴지는 그들만의 유니크한 스타일은 지금 들어도 인정해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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