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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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옥 [songdo] 쪽지 캡슐

2002-02-10 ㅣ No.5654

매일 메일(mail) 서비스에서

[오늘의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밝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 5,13-16)

[세상의 빛과 소금]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이웃집을 방문했지요.

그는 그 집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싱거워 맛이 없다고 말했지요.

주인은 그 말을 듣고서는 음식에 소금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는 소금을 넣은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음식이 맛있는 것은 소금 때문일 거야.

조금만 넣어도 맛이 나는 것을 보면

많이 넣으면 무척 맛이 있을거야.'

그래서 그는 때마다 소금만 먹었지요.

결국 그는 속병이 나고 말았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를 하나 알게 되면

마치 모든 것을 알아버린 듯이 착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앎에는 한계가 있지요.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운 사람이라도

배운 것 이상은 알 수 없는 법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알량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자기 잣대에 맞추어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 과정 안에서 당연히 오류와 시행착오가 따르겠지요.

저도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자신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저는 사람들 앞에 서려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을 잘 보면,

세상의 빛과 소금은 그렇게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그래서 나의 잣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소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요.

소금을 맛을 내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냉장고 없는 세상에서 부패 방지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이 소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금을 잘 생각해보면,

우선은 녹아 없어져야만 합니다.

즉, 살신성인의 정신이 이 소금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빛입니다.

빛은 우리가 앞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하며,

사물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끔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빛의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빛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다는 인사 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빛이 "이 고얀 것들…

이제 빛을 주지 않으마"하고 빛을 없앱니까?

그냥 묵묵히 우리가 고마워하든,

고마워하지 않든 상관없이 빛을 주고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는 이미 주님의 제자로써 이 자리에 서 있기에,

그 자체로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라고

우리에게 힘주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과연 내 자신은 소금으로써,

빛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의 이런 역할을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끔 하는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라면

살 맛을 내는 소금 구실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라면

세상을 두루 비추는 등불 구실을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또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보다도 더

하느님의 뜻을 더욱 더 잘 실천해서

더 큰 의로움을 지녀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실 나만의 구원을 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나만의 구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것.

그것은 이미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 전제되어 있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아홉 가지 기도'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깊은 허무에 빠져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무 옆에 바로 당신이 계심을 알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 다시 죄와 허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굳셈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욱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경제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 있다고,

그저 눈물을 흘리며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위한 생각에서 '너'(이웃)를 위한 생각으로,

'땅'의 생각에서 '하늘'의 생각으로 바뀌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 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것은

바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겸손과 온유의 마음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셨으며,

하느님의 사랑하는 외아들이신 분께서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랑을 실천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돌아오는 수요일,

즉 재의 수요일을 기해서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이 사순시기를 맞이해서

우리 다 함께 주님을 닮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내 자신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

우리들 사이에 이루어 질 것입니다.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 ☞ ☞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설 귀향길에 오른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나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좀 날씨도 포근해야 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쌀쌀함 따위로는

고향을 향하는 발걸음들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죠.

우리 따뜻한 이야기 가족님들중 많은 분들이 떠나시겠죠.

하긴 3000만명정도가 귀향길에 오른다니...

가시는 길, 오시는 길 모두 조심하십시요.

고향에 가셔서 부모형제 가족과 옛친구들 만나서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라옵고,

혹, 피치못할 사정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시는 분들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날들을 만들어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다른 해보다 긴 연휴기간...

나쁜 일 없이 좋은 소식만 한아름 가득 안고 돌아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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