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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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저의 고향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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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혜 [sharptjfwl] 쪽지 캡슐

2002-04-09 ㅣ No.6039

 

 

첫 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던 순간부터 나는 사람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리고 남편의 통곡 소리와 함께 아이가 세상을 떠나던 날, 나는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 치다가 입술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다.

 

그때 내겐 ’이대로 한 줌 재가 되어 아들 곁에 뿌려지리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 즈음, 언제 오셨는지 아버지께서 내 앞에 서 계셨고, 누워 있는 나를 일으키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슬이 채 걷히기도 전에 친정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나를 방에 들게하고 잠시 나가시더니 약사발을 들고 들어오셨다.

"보약이다. 너 오믄 멕일라구 밤새 다려 논겨. 어여 마셔라."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찌 보약을 먹으라는지 아버지가 야속했다.

 

나는 앞뒤 생각도 않고 약사발을 거세게 밀쳐냈다.

 

약사발은 방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아버지는 버럭 역정을 내셨다.

"왜 이러는 거여! 너도 니 아들 따라 죽을껴?

 

너한테 그 놈이 가슴 애리고 기맥힌 자식이믄 이 애비한티는 니가 그런 자식이란 말여. 이 애비 맘을 그렇게도 모르겄는겨?"

아버지의 목소리는 젖어 들고 있었다.

 

아! 자식이 짊어진 고통의 무게만큼 당신도 함께 그 고통을 겪고 계셨구나.

 

나는 아버지의 무릎 위에 무너지듯 쓰러져 끝도 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아이를 보낼 때에도 모든 게 내 죄인 듯싶어 한 방울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 앞에서 오래도록 목놓아 울었다.

그날부터 나는 얼마 간 긴 잠만 잤는데, 잠결에도 군불 지피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아버지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일으켜 벽에 기대 앉혀 놓고 때마다 정성껏 달인 보약과 밥을 먹이셨다.

 

그리고 내 입에 밥술을 떠 넣으실 적마다 마치 주문이라도 외듯 똑같은 말씀을 나지막이 중얼 거리셨다.

 

"너무 애달파 말그라.

시상엔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는게 있는겨.

그 간 자식 살리겄다고 월매나 애간장이 탔겄냐.

얼렁 세월이 흘러야 니 맘이 편해질 것인디 ... 얼렁얼렁....."

 

아버지는 그렇게 슬픔 속으로만 빠져드는 나를 붙들어 따뜻이 보듬으셨다.

 

늘 변함없는 자상함으로 자식들의 울타리가 되고 지친 우리들의 편안한 쉼터가 돼 주셨던 아버지.

 

’당신은 저의 영원한 고향이십니다.

 

                                           

김 순태 님 : 대전시 대덕구 법동 (’좋은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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