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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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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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미숙 [shwang] 쪽지 캡슐

2007-09-12 ㅣ No.30075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 대한 묵상』
황 미숙 소피아 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이른 새벽, 이슬을 머금은 나팔꽃과 호박꽃 등은 내 유년시절의 꽃밭으로 나를 데려간다. 초등학교 여름 방학 때마다 목포 유달산에 올라, 여치 채를 쥔 오빠랑 땀을 뻘뻘 흘리며 여치 울음소리를 쫓아 풀숲을 뛰어다니곤 했었다. 더위와 땀으로 뒤범벅된 채, 방금 여치를 잡았다는 흥분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한 오빠가 영웅처럼 의기양양하게 갓 잡아온 여치를 내게 보여주면, 나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여치의 팔딱거리는 생명력과 싱싱한 몸부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다.


포획한(?) 몇 마리의 여치를 망에 담아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온 그 뒷날부터, 여치의 식탁 차리기는 당연히 내 몫이었고, 난 때 한번 쓰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집 주위 공터나 수원지 등에서 갓 피어난 호박꽃을 따다 신선한 식사를 여치님(*^^*)께 제공했었다.


어른이 되면서 여치 키우기에 대한 모든 기억들은 사라져갔지만, 어쩌다 길가의 공터 등에서 호박꽃을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참 수줍게 얼굴을 활짝 터뜨린 그 노오란 색상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내 마음까지도 그 보드랗고 여린 호박꽃 속으로 마구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또, 여린 호박 잎사귀를 따다 밥 위에 살짝 쪄서 갖은 양념을 한 재래식 된장과 함께 쌈을 싸먹으면 어찌나 맛있었는지 아직까지 호박잎 쌈은 내 별식 중의 별미이다. 재래식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도 호박잎 쌈은 언제나 내 눈길을 끈다.


이곳 묵상 방에도 외국에 거주하시는 형제·자매님들이 많이 오시는데, 나는 가끔 호박잎 쌈을 맛나게 먹을 때마다 그분들을 떠올리며 쨘~한(*^^*) 마음을 보내기도 한다.*^^* 나는 고국에서 신토불이(身土不二) 호박잎 쌈을 이리도 맛있게 먹고 있는데…ㅎㅎ.


기회가 될 때마다, 나는 도로변에서 좌판을 벌이신 시골 할머니들의 벼룩시장(?)에 자주 들리곤 한다. 주로 도시 근교에 사시는 할머니들께서 손수 농사를 지어오신 애호박, 호박잎, 부추, 고추, 상추, 무우 등을 푸짐하게 벌여 놓은 행상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따뜻한 인간미와 순수한 흙 냄새를 너무도 사랑하고 좋아한다.


깔끔하고도 정확하게 그람 수와 정찰가격이 붙어진 포장 식품보다, 갓 따온 손길의 여운이 담겨 있고 흙으로 뒤범벅된 고구마, 못생긴 호박, 대파, 소파, 양파 등이 벌어진 좌판엔 우리의 꿈과 고향이 담겨 있다. 팩으로 포장된 식품은 위생적이고 경제적일 수도 있지만 정확하고도 꼼꼼한 현대인의 깍쟁이 마음 같고, 시골 할머니들의 행상에 놓인 울퉁불퉁 못 생긴 호박과 고추 등에선 넉넉하고도 푸짐한 정이 가득 피어오른다.


얼마 전, 그 벼룩시장에서 잎이 여리고 부드러워 보이는 호박잎 한 바구니가 내 눈길을 끌었다. "할머니, 호박잎 두 바구니 주세요."


할머니께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내게 건네시며 봉지를 잡으라고 하신다. 그때야 난 할머니의 왼팔이 마비되어 있고, 왼손이 오그라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파라솔을 접고 봉지를 잡으려고 쭈그리고 앉았다.


할머니는 내가 잡은 검정 비닐봉지에 오른손으로 덥석덥석 호박잎들을 담아주시고선, 무언가 부족하신 듯 덤으로 한 손 가득 또 한 손 가득 호박잎을 담아주시며 배시시 웃으신다. 한손만으로 장사하시는 할머니께 손님의 도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할머니 옆엔 커다란 자루에 갓 따온 순이 죽지 않은 호박잎들이 삐콤 빼콤 얼굴들을 내밀고, 그앞엔 못 생긴 애호박 몇 개가 놓여있다. 왼손이 마비된 할머니께서 한손으로 호박잎과 애호박을 손수 따오셨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한 바구니에 천원인 호박잎 계산을 하려고 보니, 천 원짜리가 보이지 않고 하필이면 만 원짜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만 원짜리 밖에 없네요. 죄송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대에서 물기 묻은 천원짜리를 한 움큼 꺼내놓으시며, 알아서 잔돈을 가져가라고 하신다. 장사 밑천으로 이만 원을 천 원짜리로 준비해 오셨단다. 돈 계산을 할 때도 역시 할머니는 손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시다. 할머니는 돈을 셀 수가 없으시다.


파릇파릇 순이 살아 있는 천 원짜리 새 지폐를 세며,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세고 있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가 아닌, 갓 따온 호박잎처럼 여리고 보드라운 할머니의 마음을 내 손으로 어루만지는 듯했다.


처음 보는 손님에게 스스럼없이 검정 봉지를 잡으라고 명령(?)하시며, 잔돈까지 손수 세어가라며 전대에서 한 움큼 천 원짜리 지폐를 내 앞에 내어 놓으시는 할머니와 나 사이엔 어색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은 전혀 없다. 내가 누구라고 돈을 한 움큼 꺼내 놓으시며 잔돈을 챙겨가라고 하실까? 아무리 한 손을 사용하실 수 없다 하더라도….


한 손이 오그라진 할머니에게서 나는 문득 수줍고도 당당하게 활짝 봉우리를 펼친 호박꽃 한 송이를 보았다. 세상을 향해, 이웃을 향해, 당신의 손님을 향해, 그 누군가를 향해 할머니 마음속에 활짝 피어 있는 호박꽃이었다.


비록 짧은 몇 분간이었지만 내게 깊고도 따뜻한 여운을 남겨준 할머니처럼, 역시 그 호박잎은 내가 최근에 먹어본 호박잎 쌈 중의 최고였었다.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모처럼 밥 두 공기에 호박잎 쌈을 맛나게 먹었던 그날 저녁, 어딘가 내 마음 오그라진 한구석이 여리고 부드러운 호박잎처럼 서서히 펴지고 있었다…!


부족하지만 행복한 제 고백(*^^*)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은총 충만한 순교자 성월 되세요.*^^* ♬ Late night seren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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