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6월 2일-그리스도의 성체성형 대축일, 강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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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숙 [lalee] 쪽지 캡슐

2013-06-07 ㅣ No.2341


하느님 창조의 완성은 바로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작성가를 부르면 경찰병력이 해군기지 사업단 앞으로 몰려옵니다. 그리고는 20명에서 30여명이 인간 감옥을 만듭니다. 201288일 경찰에 의해 성체가 짓 밟혀진 그곳에서 수도자와 성직자 그리고 미사를 봉헌 하는 신도들이 경찰에 의해 끌려나오고 경찰이 만든 인간 감옥에 감금이 됩니다. 공사차량이 모두 지나가고 나면 또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미사를 봉헌하고 경찰은 끌어내고 감금하고를 반복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곳에서 평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올립니다.

6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주례 김성환 신부님,
강론 박도현 신부님

반갑습니다.
여기에 오신 모든 형제자매님들께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붉은발 말똥게, 연산호, 남방 돌고래, 연어 여기 근처에 사는 모든 생물들에게도 무생물들에게도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누군가 강정이 어떻게 43과 갔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질문을 나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내 안에 논리적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4
3이 무엇입니까?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최소 3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요즘 신문 지상에서 정치인과 경제인의 부정 및 탈세 건으로 억 조 라는 숫자에 익숙해진 탓인지 3만은 큰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3만 명이란 매일 100명씩 1년가량을 죽여야 3만 명이라는 숫자가 채워집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우리나라 경찰과 군인이 자국민을 살해한 사건, 1년 동안 매일 100명씩 죽여야 3만명이라는 숫자가 채워집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어떻게 강정이 43과 같냐고 질문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강정이 43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어떤 것도 43이 될 수 없지요. 43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니까요. 오히려 강정은 43과도 너무 비슷하다고 표현을 해야 논리적인 것이지요. 혹은 강정은 43의 현대판이라고 이야기 해야겠지요. 하여튼 저에게는 문학적 표현의 차이 정도로 다가옵니다. 확실한 것은 43은 완료된 역사이고 강정은 과거 43의 진행이라는 것입니다.

528일 생명평화포럼에서 현기영 작가가 이런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43에서는 인간이 대학살 당했다면 강정에서는 자연이 대학살을 당한 것. 자연이 뭐가 대수롭냐고 말하는데 그 현무암 바위들 그리고 민물이 담긴 작은 웅덩이 그 속에 작은 생물들 신이 내려준 1.2km의 회화와 같은 작품 수억 년의 시간을 걸쳐 늙었으면서도 새롭다.’ 자연환경파괴를 43과 연관시킨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태학적 측면에서 예수회 생태연구팀이 작성한 부서진 세상 취하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지구가 위협 받고 있고 우리가 수백만 인류에게 닥칠 해롭고 암울한 미래를 되돌리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현대 경제모델은 단언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즉 하느님의 꿈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손에 맡기시며 보존하고 지키라고 한 지구가 파괴될 위험에 놓여있습니다. 그 결과는 첫째 그 희생물들은 지구의 온갖 자원들과 생물들입니다. 이들은 현 세대와 미래세대 모두를 위한 것이지요. 이는 한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으며 자연의 풍요로움을 급격하게 감소시킵니다.

두 번째 결과는 동시에 희생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입니다. 이렇듯 환경과 빈곤의 연관성을 불가피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과학과 기술이 중립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학과 기술의 윤리적인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지속 가능한 개발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생태환경은 우리 영성체 생활 공동체 생활 그리고 사회 사도직 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회 제 35차 총회교령에서는 생태문제를 화해라는 보다 넓은 주제안에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과의 화해 타인과의 화해 창조된 세계와의 화해라는 3가지 차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창조된 세계와 새롭게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하느님과 정의로운 관계를 세우는 일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사람간의 정의로운 관계를 세우는 일 정의입니다. 정의의 실현입니다. 이런 것들을 세우고자 하는 행동의 결과를 보아야 합니다. 즉 투신으로 이러져야 합니다.

카톨릭 사회교리에서 환경을 돌보는 일은 첫째 자연 생태환경이 하느님의 창조물 즉 아름다움과 선이라는 인식의 기반을 둡니다.(시편 104)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인식하고 보고 감상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즉 여기서 봄이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맛들임 아름다움을 인식함입니다. 둘째 그 고유한 선은 공동선입니다. 창조된 재화는 인류 전체에 속한다. 그러기에 환경파괴는 사회적 악이며 연대성의 논리가 요구됩니다. 특히 환경파괴는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끼치게 되지만 환경착취의 대가는 대부분 부유한 국가와 부유한 사람들 차지가 됩니다. 카톨릭 사회교리를 전체적으로 표현하는 진리안의 사랑은 사랑의 핵심이 정의와 공동선에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합니다. 창조된 세계를 돌보는 이냐시오의 영성 (영신수련 23)
 
우리는 창조된 세계와의 관계를 주의 깊게 식별하고 분별심의 상태에 이르도록 요청 합니다. 그리고 창조 신학은 창조가 위대한 은사의 첫 번째 업적이며 하느님의 근본적인 구원행위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강생과 성탄의 신비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된 세계로 강생하시어 창조된 세계와 소통하심으로 우리가 창조된 세계와 소통하며 살아가도록 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얻기위한 관상 우리는 창조된 세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헌신적인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봉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 성체성혈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성혈대축일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창조물들이 파괴되고 인간의 탐욕으로 다양한 생물종들이 멸종위기에 몰리는 세상 이러한 것들이 세상의 불의에 의해서 나약하고 무지한 우리 인간의 손에 이해서 희생당하고 있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느껴집니다. 구럼비 바위가 파괴될 때 천공기계로 바위를 부수고 뚫을 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끝나지 않은 듯합니다. 전례력에 의해 매년 반복되는 예수님의 생애처럼 강정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예수님이 몸과 피가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5천명이 넘는 굶주린 군중을 위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을 위해서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 제자들이 말합니다. 저희에게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지요. 어떻게 하라고 혹은 예수님이 무슨말하는거야 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있었지요. 예수님은 그것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신다음 다시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군중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12광주리나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평화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기 저희들은 그리스도 신자로서 6년동안 공권력 해군 경찰 우근민 이명박 박근혜에 의해서 소외되고 짓눌린 강정 주민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여기에 와있습니다. 그리고 구럼비 중덕 해안 강정마을은 천혜의 자원이죠. 거기에 머물은 모든 희귀종들을 포함한 생명체와 무생물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 이지요. 그런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너무나 큰 실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경찰과 검찰의 공권력에 무지막지한 힘에 비해 저희 양심인들은 너무나 나약합니다. 그래서 해군기지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이 보입니다. 의미가 없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기도합니다. 여기에 모여서 미사를 바칩니다. 그리고 매일 예수님의 미션을 받습니다.

너희가 하여라 해군기지와 삼성의 거짓과 탐욕을 물리치고 정의와 진리를 세우라고 너희를 부른다.’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자 이웃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간직하며

강정 생명평화 미사
월요일 오전 11시 오후 4시,
화요일 ~일요일 오전 11

강정의 평화를 위한 기도 매일 12시 부터 12시 30분 사이
강정의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와 강정아를 봉헌 합니다.
각자의 장소에서 기도로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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