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구원자의 마음

스크랩 인쇄

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1-18 ㅣ No.60052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33 주간 목요일 - 마음의 평화 얻는 길


 

성당을 찾는 대부분의 예비신자들은 성당을 찾는 첫 번째 이유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살면서 무언가 불안하다는 뜻입니다. 이 분들은 믿음만이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 분들 마음에 그런 의지를 심어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는 성령님의 열매, 즉 하느님의 선물이지 자기 스스로 얻어 누릴 수 있는 무엇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라 하며 아말렉을 멸하고 어떤 살아있는 것들도 남겨놓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말씀을 어기고 왕도 살려두고 살진 짐승들은 죽이지 않고 전리품으로 가지고 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죄를 지었으니 주님이 계속 그 안에 머물러 계실 수 없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그에게서 나가니 악령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사울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1사무 16, 14).

왕이란 모든 권력을 지닌 사람의 상징으로서 아무 두려움 없는 당당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악령이 들어오니 불안함에 떨게 되고 사실 왕권은 이제 다윗에게 넘어갑니다. 사무엘은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미래의 왕으로 점지합니다.

진리란 아주 단순합니다. 죄를 지으면 성령이 그에게서 빠져나가고 그러면 성령의 열매들도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과 기쁨과 평화인데 이런 모든 것들이 깨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왕적 당당함과 평화’까지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를 받으면서 왕직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데 세상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죄는 사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에게서 그 힘을 빼앗고 다시 그 맘에 불안과 두려움만을 남겨놓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안녕을 추구하였습니다. 그 평화를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모르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평화를 구하는 사람은 그 평화를 잃고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이렇게 한탄하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사제적 왕직을 부여하시는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최후는 불안과 멸망뿐입니다. 사울과 같이 똑같은 전철을 뒤밟는 것이고 우리 개인 모두도 그리스도를 잃고는 어떤 평화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봤는지, 혹은 누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시장에서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온갖 안 좋은 상상을 하며 동네를 다 뒤졌는데 바로 처음 잃어버렸던 곳에 태연이 쪼그려 앉아서 흙으로 장난을 치고 있더랍니다.

보통은 부모가 보이지 않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날 텐데, 그래서 어쩌면 찾기가 더 어려워질 텐데, 그 아이는 ‘여기 있으면 당연히 찾으러 오겠지!’ 하며 태연하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삼일 동안 태연하게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셉과 마리아는 피가 마르는 고통으로 아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어머니, 제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하느님을 왕으로 둔 아들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도 하느님께서 제 마음에 들어와 마음의 평화를 주십사 매우 오래 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으로 ‘나는 주님의 자녀다. 그분이 항상 나와 함께 계시니 두려울 것이 없다.’해도 좀처럼 그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커졌고 기도를 해도 그 때 뿐이었습니다. 이런 극도의 불안함은 한 3년 정도 지속된 것 같습니다. 신학교 들어와서 믿음이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이런 불안함이 찾아왔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땐 머리론 하느님을 받아들였지만 마음으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머리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굳은 신뢰입니다. 그런 믿음이 생기자 다음부터는 그런 고통스러운 불안함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대범하고 평화로울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고 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불안함을 통해서 더 평화를 절실히 원하게 될 수 있고 조금씩 믿음을 증가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항상 이렇게 인사합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 인사말은 당신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초대입니다.

 

구원자의 마음

 

나를 싫어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위해 행복을 빌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대부분은, ‘네가 나를 아프게 했으니 너도 한 번 그대로 아파봐라.’라고 하며,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대로 갚아주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복수도 그런 면에선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극악무도한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저런 인간은 사형시켜야 돼.’라고 말하며, 자신은 피해를 받은 것도 없지만, 그런 것이 정의 편에 선 사람의 당연한 마음이라고 스스로 여기며 만족합니다.

예수님도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을 조롱하고, 당신을 때리고 침 뱉고, 당신을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한 이들을 그렇게 보복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셨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1999년 여름 소망유치원아이들이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캠프를 하던 중 18명의 아이들이 화재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은 불이 타고 있는 컨테이너 앞에서 오열하는 여자 선생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가놓은 당사자들이었습니다. 불이 났으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자신들이 잠가 놓았으니 아이들이 빠져나오지도 못할 것을 알기에 오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그 선생님들의 심정은 심장이 여러 개가 있어도 다 찢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아이들과 함께 불속에 있었으면 더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유다가 배반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서 가서 네 할 일을 하라.”라고 하실 때는 죽음만이 기다리는 한 영혼을 보내며 심장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런 고통으로 피가 역류하여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셨는지도 모릅니다. 한 영혼의 죽음을 보며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의 심장은 또 한 번 찢어집니다.

예루살렘은 평화를 주시는 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당연히 멸망할 운명이었고, 당연히 멸망할 것을 아시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니, 눈물만 흘려야 하는 것이 구원자이고 심판자이신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심정이 이래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위로해드리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주님께 데려올 준비가 되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네 인생은 네 것이니 성당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나오기 싫으면 나오지 마라.’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못합니다.

저는 처음에 어머니가 성당 안가고 오락실 갔다 왔을 때, 저를 억지로라도 보내고 첫영성체를 받게 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성당 안 나오는 우리 가족들을 보며 그리스도와 같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하는 만큼의 기도와 희생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아마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처럼 무릎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기도와 희생을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만 갖게 되면 저절로 성인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평화를 너에게 주노라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1,405 2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