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장난꾸러기 친구녀석들과 씨름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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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3-04-26 ㅣ No.51573

 전에 말씀 드렸듯이 요즘 학생들 시험철을 맞이하여 중학생 1학년 녀석들과 씨름중이랍니다.

 

물론, 그 중학생 1학년 녀석들중 다소 학습이 뒤떨어진다는 녀석들과 말이지요.

 

녀석들과 열흘이 넘게 씨름을 하고보니 크게 느낀점은 우선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께 고개숙여 진심으로 존경을 보내는 바 입니다.

 

때로는 선생님이란 직업이 재미있고 편한 직업이려니...생각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비록 열흘이라는 짧디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선생님처럼 힘들고 어려운 직업도 드물지 않나 새삼 느껴봅니다.

 

저는 첫날 세 녀석과 대면을 했지만 지금은 다섯 녀석과 전쟁을 치루고 있습니다.     

 

첫날은 정말이지 도저히 학습부진 학생 같지가 않아서 속으론 이정도 학생들이 학습 부진아면 도대체 요즘 얘들은 수준이 얼마나 업그레이드 된것인가? 하는 의아심이 솟아 났지만 둘째날부터 슬슬 녀석들의 정체가 드러나더니 날이 갈수록 저의 입에선 "살려주~!!" 소리와 "오~주여! 어찌 하오리까?"라는 탄식만이 흘러 나올뿐입니다.

 

하루는 그 학생들의 학교에서 임시로 수학 쪽지 시험을 치룬 모양입니다.

 

"너희들 몇점 맞았니?" 하고 물으니, 모두들 한녀석에게로 시선을 보내면서 "선생님! 얘가 젤 점수가 높아요!" 하길래, 그래도 꽤 하나부다 해서리 "그래 몇점을 맞았는데 이중에서 젤 잘했단 말이냐?" 하고 물으니, 녀석이 아주 의기양양 해서 다른 녀석들을 깔보는 듯한 제스추어로 하는 말.

 

"샌님! 전요 50점 맞았거들랑요!"하며 아주 자랑스런 표정을 짓더군요.

 

" ...... "

 

그렇다면 다른 녀석들의 점수는 물어보나 마나......

 

가끔 녀석들과 수업을 하다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분간이 안갈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이번에 새삼 느낀것은 공부는 머리가 좋고 나쁨이 크게 좌지우지 하는것 같진 않더군요.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주위가 보통 산만한 것이 아닙니다.

 

첫날은 저를 처음 보아서인지 긴장한 탓이 역력하더니 하루 겪고 나서 보니까 "어라? 이 자슥 별거 아니네?..." 라고 결론을 내려서인지 드디어 본성들이 터져 나오는데 한마디로 가관이 아닙니다.

 

한 예로 수업중에 이진법의 덧셈과 뺄셈을 제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하여 가르치고는 혹시라도 이해 못하는 부분이 있을까싶어 질문을 하라고 하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가르치고 배우는것은 분명 수학의 이진법인데 나오는 질문들은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질문들이 서로 경쟁 하듯이 손을 번쩍번쩍 들고 나옵니다.     

 

"선생님! 전지현이 정말 이쁜가요?"

 

"선생님! 영어랑 독일어랑 어떤게 어려워요?...아무개가요. 독일어가 더 어렵다는데 맞나요?"

 

"선생님! 무슨 띠에요?"

 

"선생님! 대학은 어디 나왔어요?"

 

"선생님! 박찬호하고 이승엽하고 대결한적이 있나요?"

 

"선생님! 히딩크 감독하고 코엘류 감독하고 누가 더 나이가 많아요?"

 

그러면 전 이내 화이트보드에 제 이마를 벅벅 비벼대면서 탄식과 함께 입에선 "오~주여!"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 나옵니다.

나탈리아가 맡고 있는 공부 꽤나 하는 녀석들과 임시로 제가 맡고 있는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게 저희는 단원 종합 기출문제를 61문제를 뽑아 같은 날 동시에 보기로 했습니다.

 

채점결과 나탈리아가 맡고 있는 반 녀석들은 많이 틀려야 6~7개인데, 제가 맡고 있는, 선생 닮은 녀석들은 적게 틀려야 33개...(휴우우~~)

 

감히 그런 녀석들을 첫날부터 의욕적으로 성적을 쑥쑥 올리리라 다짐했으니, 저도 겁도 없는 놈인가 봅니다.

 

아래는 제 결심의 변천과정입니다.

 

첫째날: 저쪽반 녀석들보다 수학 만큼은 더 잘하도록 만들고야 말리라!

 

둘째날: 그래도 비슷하게는 만들고야 말리라.

 

세째날: 뭐, 절반은 넘겨야 하지 않겠나.

 

.

 

.

 

?째날: 찍을때 잘 찍어야 한다.

 

.

 

.

 

?째날: 제발 시험때 백지만은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

 

.

 

?째날: 그래 좋다! 까짓 공부가 인생이 전부겠느냐? 용기를 갖고 살아라!!

 

*^^* 덩치들은 저희때와 비교해보면 정말 객관적으로 봐도 큽니다.

 

하지만 아직 볼살을 보면 아기살들이 문득문득 보여 여간 귀엽지가 않습니다.    

 

어찌나 장난을 좋아하는지 잠시 휴식시간에 지켜보면 녀석들의 놀이문화가 시끄럽고 요란스럽지만 얼마나 천진난만하고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성적이 우수하진 못하지만 다들 건강하고 명랑한것이 어둡지 않아 너무 좋더군요.

 

집에 가면 모두들 더할 나위없이 귀한 아들들인데, 그까짓 수학 나부랭이쯤 못 푼다고 구박을 줘서야 되겠습니까?

 

그러고보니 며칠 안남았습니다.

 

녀석들과 함께 지낼날이 말입니다.

 

이번달 말까지만 봐주기로 했으니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군요.

 

그간 사이비 선생님 밑에서 그래도 문제 푸는 척이라도 해준 녀석들이 고맙고 다음달서부터는 보고싶어질것 같아 괜히 맘이 안좋기도 합니다.  

 

오늘 토요일, 내일 일요일 저는 이번 주말, 쉼도 없이 녀석들과 씨름을 해야 합니다.

 

내일도 또 모여서 하기로 했는데, 기특한것은 녀석들 그래도 결석은 절대 안한답니다.

 

그런데 오늘 녀석들이 지금의 저를 분노 시킨것은...

 

귀여운 녀석들이 방금 돌아갔고, 늘 하듯이 방청소를 하면서 수학문제 풀때 연습장하라며 나누어준 A4용지를 치우려고 보니 그 용지엔 수학적인 문자는 하나도 안보이고 온통 로보트 그림 밖에는 없더군요.*^^*

 

"내 이눔의 자슥들! 내일 가만 냅두나 봐라!!!"

 

(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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