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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옵는 김수환추기경님과 주교님들께 드리는 공개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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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이소사성당 [sosalee] 쪽지 캡슐

2002-02-10 ㅣ No.29711

47번 : 존경하옵는 김수환추기경님과 주교님들께 드리는 공개서한

 

글쓴이: 이 아가다 등록일: 2002-02-09 16:37:12 조회: 42

 

 

저는 성녀이소사성당(이인주신부)에서 시작된 신앙생활이 지금은 이름이 바뀐 예수성심성당(오세만신부)에서 나름대로 기도와 신자생활을 열심히 하였고 주위의 혼잡을 스스로 피했던 평신도입니다.

 

감히 존경하옵는 추기경님과 주교님들께 이러한 글을 올리게 된 점, 용서와 이해하여 주심과 우리의 상처입은 가슴에 진정한 도움을 청하옵니다.

 

2001년3월 초부터 이곳 토론토 한맘성당(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 최규식신부) 에서부터 시작된 이상한 소문은 5월경부터 사실화되었고, 그 과정에는  엄청난 음모와 비리가 뒤에 있음을 감지하면서, 저는 물론, 평화로웠던 공동체에 씻지못할 상처와,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6월에 있은 주임신부의 전임이 보기에는 자연스런 인사이동 같지만 실제는 그과정이 1998년 봄부터 3년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꾸며진 계획이었으며, 그 원인의 불씨도 어는 환속신부와 이현하종신부제 (오세만신부의 친척) 그리고 최규식신부가 합류하여 이인주신부 축출작업에 앞장섰습니다.

 

1998년봄, 이인주신부의 관장관련건, 엄청난 돈을 숨기고 있음, 여자관계 복잡함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모함을 하고, 이신부의 사제직까지 박탈하려는 음모는 결국엔 경찰조사까지 받았으며, 기습감사는 물론 모든것이 과장, 허위 날조임이 들어나자 나중에는 이신부를 정신병자로 몰아서 끝내는 정신감정쎈터 에 까지 몰아넣었으나, 모든것이 정상인 관계로 그당시 10일만에 본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것입니다.

 

옛말에 중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했는데, 자기들의 계획이 실패하자 추종자 12명과 함께 공동체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뒤부터 치밀하게 진행된 그들의 계획은 3년6개월이라는 긴세월끝에 이인주신부는 떠나고 오세만신부가 오게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환속한 L신부, 이현하종신부제, 한맘성당 최규식신부, 토론토교구청의 인사국장 몬시뇰 Polito 신부(최규식신부와 신학교 동기동창생), 현 토론토교구청 Ambrozic추기경님은 최규식신부의 신학교시절 신학대학장 이셨고, 서울교구의 K주교님, 그 K주교님은 오세만신부건 때문에 비밀리에 토론토교구청을 2번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세만신부의 남미 칠레에서의 빈약한 사목은 고사하고, 이곳 예수성심성당 (구 성녀이소사성당)에 정식 부임한 2001년12월2일부터 저희공동체의 분위기 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성당의 분위기가 아닙니다.

 

오세만신부의 위장술은 너무나 교묘한 가운데 집요한 야망을 버리지 못한 관계로 성전모독은 물론, 거침없이 난발하는 망발로(본당신자 아닌사람은 나가라고 소리치는등) 공동체의 분해를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스스로하는 관계로, 오세만신부의 모습은 우리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세만신부한테서는 진실은 물론, 사제만이 풍기는 향기(사랑), 사제만이 갖출수 있는 자세(겸손), 사제만이 행할수 있는 포용력(용서와 이해)을 떠나서, 인간적인 면에서도 옹졸하기 그지없는 그의 작은 마음은 그 무엇도 수용할 수 없는 결점투성이의 쓸모없는 그릇입니다.

 

스스로의 결점을 죄없는 양들에게 돌리며, 몇몇추종자들(이신부를 쫓아낸 12명 그룹)에게만 귀를 열고, 혜택을 주며, 교구청에만 아부하는 오세만신부의 자세는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께 의탁하며 양들을 보살피는 목자이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요, 지금은 이미 먼끝까지 그분은 갔습니다.

 

그 때문에 오세만신부에 대한 깨달음과 의식 자체를 침묵으로만 일관하기엔 우리가슴에 숨겨진 진실의 칼날이 너무 날카롭습니다.

 

용서와 화해 - 이제 우리에겐 너무나 값비싼 사치입니다.

왜냐하면 늑대의 얼굴에 양의 가면을 쓴 그런 가장된 천사를 우리는 보기 싫습니다.  성녀 이소사는 이조 박해시대에 윤리를 앞세운 양반들의 안위를 위한 위정자들에 의해 순교하셨고, 뒤늦게나마 현 교황님에 의해 103위 성인 대열에 오르신 분입니다.

 

2001년11월13일자로 성녀이소사성당 이름을 없애고, 예수성심성당으로 바꾼 의중이 무엇일까요?   교구청 대변인 수잔이 말했습니다. 성당 이름을 바꾼것은 오세만신부의 요청에 의해서라고 말입니다. (오세만신부의 친척인 이현하종신부제는 1997년 당시 한국평화방송을 통하여 성당이름을 사용하면서 한국가톨릭가정의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계어학연수" 라는 프로그램으로 성당내에서 큰장사를 하며, 이인주신부 축출에 교묘히 조종을 했다가 1998년6월, Prendergast주교님으로부터 성녀이소사성당 및 신자들과 접촉금지 처분을 받았고,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것은 오세만신부의 교만에 의해 성녀 이소사가 다시 또 순교당하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순교를 두번씩이나 당하는 성인이 어디 계시며, 그것도 이방인이 아닌 제동족의 사제가 그래도 좋은지 소름이 끼치는 일아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존경하옵는 추기경님과 주교님 !

 

여기 이민교회는 특수교회입니다.

피부색과 문화면에서 이방인인 우리는 인종차별은 물론, 언어장벽과 직장문제, 특히 자녀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소외되는 난점등은 우리를 끝도없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민교회의 사목을 맡을 사제라면, 카나다의 문화는 물론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에 능통해야만이 큰 본당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오세만신부는 여기 특수공동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2001년12월24일, 성탄전야에는 교구청으로부터 은밀히 파견된 두명의 경호원이 성녀이소사성당 신자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18가구에, 강제적으로 전한 편지내용은 그 어느죄인도 용서와 화해는 물론 죄를 사하는 은총과 축제의 날을 역이용한 엄청난 사건이 교회지도자들에 의해서 일어났습니다.

 

내용인즉, 예수성심성당(오세만신부)에서 동서로 약50Km.거리 이내에 있는 외국성당은 물론 교구청관할 구역내에 있는 어떤 건물, 토지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경고장이며, 2001년12월30일, 연중 마지막 주일미사에는 전투경찰 30여명과 경호원 두명, 수잔 스코소니(교구청 대변인)를 위시하여, 이들이 성당주위 안팎을 포위한채 미사가 시작되었고, 오세만신부의 복음말씀에 이어 경호원이 제단에 올라가서 오세만신부에게 귓속말로 5분이상을 말을 한 뒤 전투경찰 30여명이 성당안에 진입하는 동시에 미사가 중단되었고, 수잔이 손가락으로 지적한 형제자매들이 전투경찰에 의해 강제추방은 물론, 성당에 다시 오면 2000불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한다는 경고장을 써 주었습니다. (한국 군사정권시대에도 누구든 성당에만 들어가면 끌어내지 못하였는데 과연 이것은 어느교회법인지 아니면 사회법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결국 모든 영어권 주류언론에서 기사화되면서 일주일내내 사회의 문제가 야기되는듯 하자, 교구청의 대변인 수잔은 말하기를, 12월24일에 경고장을 주었으나 그들이 성당에 나온 관계로 그들을 추방했다고 거짓변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12월30일 미사에는 경고장을 받은 18명의 형제자매들은 단 한사람도 성당에 가지 않았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미사참례를 하던 엉뚱한 형제자매들이 미사중에 전투경찰들에 의해 14명이 끌려나왔으며, 시종일관 제단위에앉아서 땅만 내려다 보던 오세만신부의 허락아래 이러한 천주교 역사상 처음으로 미사중에 전투경찰이 진입하여 현행범도 아닌 죄없는 양들을 끌어내는 역사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어느 자매님은 이러한 광경에 "우리 예수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하고 울부짖다가 기절하여 구급차에 실려 나갔으며, 오세만신부는 미사를 끝내니 동네성당에 가서 성체를 모시라고 태연히 안내광고까지 하는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존경하옵는 추기경님과 주교님 !

 

일요일 주일미사는 하느님을 뵈올수 있는 축복받은 주일이며, 형제자매들이 나누는 친교는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하느님의 축복속에 거저얻는 위로입니다.

 

자신의 직관만을 믿고, 그렇게 무모하게 내리는 위험한 결정은 성전에 대한 모욕이며, 하느님께 도전한 사제임을 오세만신부 자신 스스로가 알고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2001년12월24일 성탄전야에 18명, 연중 마지막주일 미사(12월30일)에 14명, 모두 32명의 형제자매들(가족포함 150명 정도)은 그 어느성당에도 가지못하는 형편입니다.   굳이 성당에 가려면 외곽지대에 있는 성당에는 갈 수 있다고 수잔이 나중에야 경고장을 받은 각 가정에 편지를 보냈지만, 외곽지대의 모든 성당은 영어권인데다가 너무 멀기 때문에 영성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쭈어 보건데, 왜 우리 성당 주보성인 성녀이소사는 서울교구에서 파견된 오세만신부에 의하여 두번씩이나 순교를 해야하며, 여기 토론토에 있는 우리 소수민족 공동체가 서울교구의 휴게소도 아닌 사랑방이 되어서, 오늘은 어느신부, 다음미사는 또다른 신부의 성의없는 강론을 들어야 하며, 거의 없어지다시피한 영어미사(1.5세와 2세 영어가족미사)도 매주 바뀌는 성의없는 자세의 신부님들 때문에 우리의 1.5세 또는 2세들도 역시 신앙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게 만드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세만신부는 현재 2002년1월27일까지 강론을 4번정도 밖에 않했습니다.

믈론 넘쳐나는 서울교구의 사제 사정도 잘 압니다.  때문에 미국은 물론 여기 카나다 토론토에서만도 8,9명의 서울교구 유학생신부님들이 공부하는 핑계로 머물고 있는것도 압니다.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여기 토론토교구와 서울교구간에 계약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언어권이 전혀 다른 특수공동체인 우리가 왜 영어는 전혀하지 못하며, 사제이전에 인간미라고는 어느 한구석도 찾아볼 수 없는 오세만신부를 위해 우리의 평화롭던 2000명의 공동체가 희생되어야 합니까?

 

그리고 이웃 한맘성당 최규식신부와 그의 신학교 동기동창생인 교구청 인사국장 몬시뇰 Polito신부, 그리고 오세만신부의 친척인 이현하종신부제 이들이 1년전부터 비밀리 음모를 준비하여 오다가 이번에 정기 인사이동을 가장하여 주임신부를 쫓아내고 들어온 오세만신부를 어떻게 존경할 수 있습니까?

 

오늘 현재까지도 매 주일미사에 경찰은 물론 경호원, 그리고 수잔이라는 교구청 대변인이 있어야만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교구청과 오세만신부의 가증스런 분위기 조성, 이건 성당이라기 보다는 무슨 일정시대에 일본인 경찰로부터 감시받는 한인들같은 긴박감이 도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런 불신과 공포분위기 가운데에서 무슨 평화와 안식을 찾기위한 미사가 이루어 질수 있겠습니까?   많은 신자들이 예수성심성당(구 성녀이소사성당)에 가기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공동체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인 한맘성당 최규식신부는 몇번씩이나 미사중에 자기네 신자들에게 예수성심성당에 신자수를 최소한 400명은 채워야 된다고(그래야 오신부가 안정될 수 있다고) 우리성당 미사에 참석하라고 강조해서, 실제로 많은 한맘성당 신자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압니다.

지난 2001년5월부터 6월까지 유성식(사이몬) 사목회장이 매주일 미사후는 물론 매일 평일미사 후에도 우리 전신자들의 이름으로 오세만신부를 찾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안내광고에 이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외부인 모두가 우리신자들에게는 오신부를 비밀에 감추었음) 오세만신부를 찾기위해 교구청은 물론, 비밀리에 돕고있는 한맘성당 최규식신부에게도 편지를 보냈었지만(공개편지 였기 때문에 저도 그 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2001년6월30일(금) 아침 9시경, 우리가 교구청 앞에서 면담신청을 위한 평화적시위(묵주기도)를 하고 있을 때, 어떤 동양인신부 한사람이 택시에서 내려 가방을 옮기며 우리들 앞을 여러차례 왔다갔다 하면서도 오세만신부를 찾는다는 시위팻말을 들고있는 우리들을 오신부는 보고서 도 우리신자들을 비웃는 듯 야릇한 미소를 띠고 지나며 아무 알은체를 않해서 우리 모두는 까무잡잡한 그가 필리핀계 신부이거니 했습니다. (실은 나중에 보니 토론토에 최규식신부 밑에 4,5개월 숨어있는 동안 골프를 자주 치러 다녀서 검은 피부가 더 타서 꼭 필리핀 사람인줄 알았지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날 오후에 교구청 Spiritual Chancellor, John Murphy신부와 함께 나타난 사제가 바로 그날 아침의 오세만신부라는 것을 발견한 신자들은 너무나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인종이 다른 신부님 같았으면 교구청 앞에서 묵주기도 하는 단체를 궁금해서라도 그 사유를 물어볼 수도 있을법한 일이었는데, 당시 이 교만한  오세만신부는 같은 동양인들이 한국말로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도 사유를 묻기는커녕, "씩-" 하고 비웃으며, 모든 사실을 다 들어서 안다는듯한 표정으로 여행가방을 끌면서 교구청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날 그 자리의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오세만신부, 곧 자신이 돌봐야할 2000명 신자들 아닙니까?

 

그때 당시, 교구청 앞에서 면담시위를 하던 우리신자들을 비웃었던 그 동양인사제가 오세만신부라는 것을 알게된 성녀이소사성당 신자들 80여명은 "오세만 신부가 어디에 숨었다가 왜 지금에야 나타났는가? " 하고 "지금은 당신이 들어올 때가 아니다" 하고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이틀전인 6월27일(수) 오후 5시에 차기 사목회장 내정자이며 현 신자들의 대변인인 김 영해형제와 몬시뇰 John Murphy신부 간에 하나의 약속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것은 7월1일(일) 주일 낮 미사전에 몬시뇰 John Murphy신부와 오세만신부, 그리고 신자들과의 "공개질의" 시간을 갖기로 약속했고, 그것은 그들도 원하는 것이며, "그 공개질의 시간이 밤12시까지 계속되더라도 끝내고 나서미사를 드리겠다" 고 John Murphy신부가 분명히 약속을 했고, 저희는 그 기록도 가지고 있습니다.

 

2001년7월1일(일) 당일 아침 9시30분, John Murphy신부는 제대에 촛불을 켜더니 미사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신자들은 "왜 공청회 약속을 어기는가?" 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John Murphy신부는 싸늘한 표정으로 자기는 약속한 적이 없고 미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신자들은 신성시 하던 교구청의 몬시뇰 John Murphy신부가 태연히 거짓말하는것을 보고, 또 12명의 경찰들과 경호원들과 대변인 수잔, 이들은 4년전에 주임신부를 모함해서 쫓아내려던 주동자 20여명을 데리고 들어와서 미사를 강행했고, 경호원 두사람이 제단위에 양쪽에 한사람씩 올라가서 껌을 쩍쩍씹고 있는데도 John Murphy신부와 오세만신부는 자기들 두사람만의 미사를 강행했습니다.   신자들은 당연히 우리공동체가 소수민족이기 때문에 교구청이 이렇게 우리공동체를 무리하게 대우한다고 여기게 되었고, 인종차별과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항의하게 되었으며, 순식간에 혼란스러워 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4년전 주임신부를 모함, 축출에 서명한 12명이 경찰의 비호아래 서울교구 김남규신부의 인솔을 받으며 성당안에 들어오는 것이 결정적인 화근을 초래했습니다.

 

결국 600여명의 신자들이 약속대로 먼저 공청회, 다음에 미사를 주장하며 불시에 일어난 사태는 서로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고, 결국은 성당폐쇄라는 조치가 몬시뇰 John Murphy신부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혼란속에 John Murphy신부와 오세만신부는 자신들만의 미사를 강행해 놓고는 거꾸로 화를 내고 있습니다.

 

그날의 모든것을 목격했던 경찰관중 한명(얼굴에 흰수염을 기른 경찰)은 자기도 가톨릭신자인데 교구청이 너무 썩었다고 말했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우리들을 격려까지 했습니다.

 

이어서 참관했던 경찰관이 우리신자들이 일부 20 - 30명이 항의하는것이 아니라 전체 5,6백명이 항의하는 것을 보면 무슨 이유가 있을것이라며, 신자대표 몇명과 John Murphy신부, 오세만신부, 김남규신부 그리고 중재역할을 자처한 경찰의 주관으로 사제관안에서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John Murphy신부는 화만 내며, 자기는 공청회 약속을 한일이 없다고 계속 거짓말을 했고, 우리성당을 악마의소굴(Evil House)이라고 말했는데 옆에 앉아있던 유학생 김남규신부가 맞다(Yeah,Yeah)고 맞장구 쳤고, 영어를 못알아 듣는 오세만신부는 무슨소리인지 몰라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John Murphy신부는 우리 신자들보고 "가톨릭이 싫으면 개신교로 가라"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어떻게 신자들이 맘에 않든다고 교구청의 Spiritual Chancellor 신분인 몬시뇰 John Murphy가 신자들한테 개신교로 가라고 소리를 지를수 있습니까? John Murphy신부는 이제 약관 40세의 나이로서 이곳 상류층을 장악하고 있는 Irish 혈통인 사람입니다. 우리공동체가 Irish 성당이었다면 감히 그가 성당문을 폐쇄할 수 있기나 했겠습니까? 우리는 인종차별로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인종차별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존경하옵는 추기경님과 주교님 !

 

지금의시대는 중세기의 천주교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 스스로가 따르고자 노력하는 순수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으며, 또 그렇게 살려고 기도하는 성녀이소사성당 신자들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의 권위의식은 저희들 평신도들을 이해하기를 거부합니다.

 

지금은 평신도들의 진정한 기도를 들어줄 때이지, 권위의식으로 밀어부치는 식의 중세기가 아닙니다. 이제는 :진실과 정의" "부정과 부패에 대한 정직한 판단"을 교회의 지도자들 이 스스로 할 때입니다.

 

교황님은 연두교서에서 말씀하셨듯이 "정의없는 평화없고, 용서없는 정의없다" 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앙 자체가 진정한 삶을 위한 소화제라면, 우리에게 당신의 처방을  주시옵소서...

 

저는 60세의 독신녀입니다.

어렵게 견디던 생활을 떠나서 더한 수난과 고통이 와도 하느님을 배반하고 싶지 않습니다.

 

존경하옵는 추기경님과 주교님 !

 

왜 저희들의 신앙은 진실을 왜면당한채, 등을 돌리고 거짓말을 하는 그들을 위해서 희생이 되어야 합니까? 2000명의 신자들 공동체 안에서는 이산가족까지 생겨났으며, 천주교인인것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형제자매들도 많아 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형제자매들의 얼굴은 충분히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비는 우리의고달픈 삶 자체에 오신,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령" 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02년 2월 3일

 

                     토론토에서     

 이 아가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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