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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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소식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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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미 [sukmaria] 쪽지 캡슐

2000-06-29 ㅣ No.1348

슬픈 소식, 기쁜 소식

 

 

"여보세요?"

"어 마리아가? 오빠다."

"예"

"잘 지내나? 그래 몸무게가 3키로나 늘었다고?"

"예 많이 좋아졌어예"

"그래 잘 지내니 다행이고, 비비안나 수녀님 전화번호 물었지?"

"예, 연락이 안 돼서...."

"수녀님이 몸이 더 안 좋아져서 포항 수녀원으로 내려 가셨어."

"... ..."

"지금 내가 포항으로 가거든, 나중에 수녀원에서 내가 전화하께."

"수녀님 많이 안 좋아예?"

"음, 아무래도 오래 못 사실 것 같다."

"... ..."

걱정하고 염려했던 일이 진짜 일어났구나 싶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기대했는데 일은 일어나고 말았다. 좀 멍해졌지만 마음을 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벌써 일주일이나 밀린 글자 입력 일을 시작했다. 음악을 들으면 좀 나을까 싶어 음악을 틀었다. 담담하게 마음잡고 일하려고 했는데 절로 눈물이 흐른다. 한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나는 세상과 함께, 휩쓸려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자판을 계속 두드렸다.

오후 1시쯤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마리아가?"

"예"

"수녀님이랑 통화해라. 전화 바까 주께"

"여보세요?"

"마리아?"

수녀님 목소리다.

"수녀님! 접니더. 좀 어때예?"

"어. 나는 괜찮아. 마리아 편지 받았는데 답장을 못해서 미안해."

"아닙니더!"

"마리아를 위해서 기도 해 줘야 하는데 이제 기도를 못해 줄 것 같아."

웃는 목소리로 받던 수녀님 목소리가 흐트러지면서 우신다. 억지로 명랑하게 받았는데 나도 그만 눈물이 확 쏟아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제가 수녀님을 위해서 기도해 드려야지예. 저는 이제 다 나았는데예 뭐"

"마리아 한번 안 와?"

"가야지예."

"그래 엄마랑 한번 와."

"예. 가께예"

"그래 엄마랑 한번 와."

"예"

"마리아 잘 지내고 ..."

"... ..."

웃는 목소리로 반갑게 전화 받으려고 했는데 수녀님이 우는 순간 나도 참지 못하고 와락 눈물이 났다. 전화를 끊고 몇 번 더 눈물을 훔쳤다. 내가 병 문안을 간다고 해도 더 좋아지면 오라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수녀님이 먼저 오라고 하신다. 시간이 얼마 없구나 싶으니 가슴이 저민다.   

김 비비안나 수녀님은 오빠랑 같은 성당에서 활동하던 30대 후반쯤 되는 젊은 수녀님이다. 내가 꽃동네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오빠가 꽃동네로 성당 청소년들을 이끌고 봉사 활동을 오셨다. 그때 수녀님을 처음 만났다.  

수녀님은 간호사였다. 가톨릭 재단 병원에서 일하시다 간호 수녀님들을 대하면서 자신도 수녀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세를 받고 3년이 지난 후 곧바로 ’예수성심시녀회’라는 수녀원에 입회하셨다. 오빠가 활동하는 성당에 오기 전까지 포항에 있는 성모병원에서 일 하셨다고 한다.

수녀님이 간호사였기 때문인지 수녀님은 바로 나에게 큰 관심을 보이셨다. 편지도 자주 보내고, 선물도 쉼 없이 보내 오셨다. 정말 수녀님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보답으로 내가 적은 시와 생활글을 자주 보내 드렸다. 여의도 성모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셨고, 알부민이며 영양 링거액이며 치료 도중에 필요한 약이 있으면 꼭 구해 주시고 챙겨 주셨다. 수녀님은 그렇게 조금씩 내 삶 속으로 들어오셨다.

수녀님은 언제나 기도하셨다. 내가 완치되기를, 다시 건강해 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기도하셨다. 작년 봄, 부활절에는 천 장의 종이를 접어 하얀 백조 두 마리를 선물해 주셨다.

’마리아가 완치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종이를 접었어요. 마리아를 위해 100일 기도를 시작했어요.’

정말 내가 뭐길래 이렇게 사랑을 전하는가 싶을 정도로 수녀님은 나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셨다.    

작년 5월 화창한 날, 오빠가 날벼락 같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수녀님이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고 했다. 평소에 아주 건강한 분이라 수녀님도 큰 병이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그냥 어깨가 뻐근하다 싶어 진찰을 받았는데 급성 백혈병이라고 했단다.

소식을 듣고 수녀님께 전화를 했다.

"마리아! 잘 지내지? 몸은 어때요? 마리아 병과 고통 내가 다 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하고 있어. 마리아는 꼭 좋아질꺼야. 기도할께요."

수녀님은 그렇게 투병 생활을 시작하셨다. 내 십자가를 당신이 지고 가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며 고통 속으로 들어가셨다. 악몽 같은 항암 치료, 다시 골수이식 수술, 희망 하나로 버틴 무균실 생활, 수녀원에서 보낸 짧은 요양 생활, 재발, 다시 죽음 같은 항암 치료, 두 번째 골수이식 수술, 감옥 같은 무균실 생활 그렇게 1년이 갔다. 작년 여름 대구 수녀원에서 수녀님과 약속했다. 다음 여름에는 포항 수녀원 곁에 있는 피정 집에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자고. 작년 가을에 약속했다. 봄이오면 함께 봄나들이를 하자고....

수녀님이 고통 속에서 점점 약해지고 계시는 동안 나는 점점 좋아졌다.

’나는 이렇게 좋아지고 있는데, 이제 다 좋아진거나 마찬가진데 ...’

가슴이 아팠다.

오늘 또 다른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한 통화 더 왔다. 토마 전화였다.

"영미가?"

"어"

"점심 먹었나?"

"어"

"오늘 신문에서 근무력증 치료제가 개발됐다는 기사를 봤어"

"그냥 근무력증? 나는 중증근무력증이잖아."

"그래 중증근무력증 맞다. 자가면역질환 맞잖아?"

"어, 그렇지"

"임상 실험 준비중이라니깐 한 3년 뒤면 약이 나올 것 같다."

"그래?"

"내가 이메일로 기사 보내 주께 한번 읽어 봐라"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불치병인 내 병이 완치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깐 몇 년 뒤에 내가 완전히 치료될 수 있다는 아주 기쁜 소식이 아닌가!

’휴! 무슨 이런 묘한 일이 다 있나!’

정말 수녀님이 내 병을 안고 가시려는 것일까? 진짜 수녀님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일까?

마음은 벌써 포항 수녀원에 가 있다.

’수녀님 기다리세요. 제가 곧 갈게요.’   

 

                                    2000년 6월 27일 늦은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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