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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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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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1-04-05 ㅣ No.6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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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요한 5장 1-16절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나의 들것>

 

 

    젊은 시절 한 몇 년 시름시름 아파본 적이 있었습니다. 때로 병세가 심해져 응급실 신세도 가끔씩 지고, 한번 깔끔하게 빨리 나아보고 싶어 이 병원 저 병원, 이 한의원 저 한의원 전전해보기도 했습니다.

 

    몇 년 아니었지만, 빨리 낫지 않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마음도, 정신도, 의지도 따라서 약해졌습니다. 위축되고 의기소침해지고 점점 사람이 이상하게 변해가더군요. 불치병 환우들, 중증 환우들의 고통을 온 몸으로 체험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환우는 한두 해, 서너 해, 십년, 이십년이 아니라 장장 38년 동안이나 투병생활을 해온 사람이었습니다.

 

    말이 38년이지, 이 사람은 당시 평균 수명을 감안한다면 거의 한 평생 동안 아프기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라곤 오직 투병생활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을 것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 상태였을 것입니다. 설마 내가 낫겠나, 하는 비관적인 마음도 컸을 것입니다. 그저 목숨 떨어질 날만 기다려왔을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기적처럼 한 줄기 서광이 비쳐졌습니다. 해방의 주님이자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그의 참담하고 처절한 인생에 다가가십니다. 평생토록 계속된 그의 혹독한 고통 서러운 눈물을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이윽고 하릴없이 땅바닥에 누워있는 그를 향해 질문을 던지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그는 속으로 그랬겠지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정말이지 저도 이 생활이 너무나 지긋지긋합니다. 꼭 병이 나아서 정말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정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미 내면은 회의감과 좌절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냐, 그럴 가능성은 절대 없어. 38년 동안 그토록 갈망했었지만 이루지지 않은 일인데, 이 사람도 날 놀리고 있는 거야!’하는 마음에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보십시오. 그는 가능성에 무게를 두기보다 체념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이미 내 인생은 끝났어’ 하는 패배의식이 그의 삶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섭섭함, 원망, 불신, 좌절감으로 그의 영혼은 가득 차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강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여기서 ‘네 들것’이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간 그가 마음 속 깊이 품어왔던 ‘나는 끝났어, 나는 안 돼’라는 패배의식을 멀리 던지고 걸어가라는 말씀이겠지요. 오랜 세월 쌓아온 상처와 세상을 향한 적대감을 내려놓고 걸어가라는 말씀이겠지요. 깊은 회의와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와 걸어가라는 말씀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각자를 향해서도 힘주어 외치고 계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우리 영혼에 덕지덕지 때처럼 끼어 있는 갖은 죄와 허물, 오랜 방황과 불신을 내려놓고 걸어가라고. 제대로 한번 투신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는 두려움과 의혹을 떨쳐버리고 걸어가라고.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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