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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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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1-04-12 ㅣ No.6362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4월 12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The one who sent me is with me.
He has not left me alone,
because I always do what is pleasing to him.
(Jn.8.29) 
 
제1독서 민수기 21,4-9
복음 요한 8,21-30

사람들은 저에게 ‘부지런하다’는 말을 많이 하십니다. 아마도 새벽 묵상 글을 10년 동안, 그것도 새벽에 늘 써왔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면 결코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게으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저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뒤로 미룰 때가 많으며, 또한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더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할 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신부님께서는 참 부지런하세요.”라는 말이 너무나 부담되고 부끄럽습니다. 혹시 사람들에게 내 참 모습이 아니라, 위선적인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이루었고, 새로 시작한 일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게으름을 떨면서 하루하루가 아무 보람도 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제가 부지런해서일까요? 아니면 능력이 많아서일까요? 아닙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이렇게 부족한 나를 지켜주시는 주님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응원해 주셨기에 그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해마다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기러기 떼는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큰 소리로 울어 댄다고 하지요. 동물학자들은 이를 지친 동료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자.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파이팅~~~~”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 응원의 메시지 덕분에 기러기들은 엄청난 피로를 안고도 긴 여정을 완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이렇게 응원해주십니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세상이지요.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에 주님께서는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자.”라면서 우리를 응원해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게 발전해 나가면서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님의 응원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옛날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려는 마음에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바리사이들처럼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역시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해야 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의 응원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얼마나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그 주님의 힘찬 응원 소리를 얼마나 잘 듣고 있을까요?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주님 마음에 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이 사실을 기억하며, 내 믿음을 키우는데 더욱 더 노력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그날이 가져다 주는 의무를 다할 때까지 하루가 끝났다고 생각지 마라.(J. 후커)



강아지 별이
 



이 강아지의 이름은 ‘별이’입니다. 넉 달 전, 교구청에서 근무하는 어떤 신부님께서 선물 받아 가져온 강아지이지요. 이 강아지의 종류는 ‘골든 레트리버’로, 시각장애자들을 인도하는 일명 ‘맹도견’이라 불립니다. 귀여운 모습, 그리고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모든 신부님들도 이 강아지와 산책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별이’는 이제 교구청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글쎄 산책을 하다가 한 꼬마를 본 별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치며 달려간 것입니다. 넉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꼬마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개였고 그래서 울면서 소리를 쳤지요.

결국 유치원이 있는 이곳에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고 말았고, 그래서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아니 너무나도 좋아서 달려든 것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헤어질 수밖에 없네요.

만약 사람을 싫어해서 마구 짖어댄다면 그 이유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너무나 좋아해 달려들어도 그 이유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더군요. 그렇다면? 적당히 좋아하며,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살 수 있나요?

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한 것 같습니다. 별아~~~ 시골에서 잘 살아라!!
 
 
 
 Comme Ce J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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