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스크랩 인쇄

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1-05-25 ㅣ No.6471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5월 25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Whoever remains in me and I in him will bear much fruit,
because without me you can do nothing.
(Jn.15.5)
 
제1독서 사도행전 15,1-6
복음 요한 15,1-8

어떤 평범한 부부가 뉴욕을 여행하게 되었답니다. 여행을 하던 중에 아주 예쁜 고급 스카프를 발견한 아내는 큰 맘 먹고 구입했지요. 그러나 자신의 형편에 비해 너무 고급스런 스카프를 샀다고 후회하면서, 그녀는 늘 바라만 보고 아끼느라 제대로 한번 두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 것입니다.

너무 소중하고 지금의 나에게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쓰지 않고 아끼는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앞선 이야기에 나오는 아내의 모습처럼 영원히 못쓸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취급을 합니다. ‘지금 내 형편에 그걸 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 ‘내 주제에 뭘 해?’ 등등의 말을 하고 있는 내 모습. 그런데 내 모습이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일까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수한 사람들을 먼저 만드시고, 불량품인 우리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우수한 존재로, ‘보시니 참 좋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들은 주님의 창조 목적에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못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과연 주님께서 내게 능력과 재주를 주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를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생명을 갖지 못하게 되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을 것이며, 곧 말라 비틀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내가 이 세상 안에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니,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간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포도나무의 가지를 가리키면서 “이 가지는 포도나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 역시 포도나무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는 말씀은 주님과 내가 하나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를 이루어 있을 때, 주님께서 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과 하나를 이루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청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은 과연 주님과 얼마나 하나를 이루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혹시 나는 할 수 없다고, 나는 능력과 재주가 없다면서 주님과 하나를 이루기보다는 주님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철저히 주님과 하나를 이루어, 이 세상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진정한 부자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진실로 가난한 사람이다(솔론).



성가정


축일을 맞이하는 본당성소후원회 임원들에게 선물로 주는 성가정상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이 이룬 가정을 우리는 성가정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그 가정은 어떤 가정일까요? 사실 그렇게 행복하게 보이는 가정이 아니지요. 예수님 탄생 때부터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습니까? 또 요셉 성인은 일찍 주님 곁으로 가셨지요. 그리고 예수님 역시 일찍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통과 시련이 아주 많은 가정이 바로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요셉 성인이 이루었던 가정이었습니다.

결국 성가정이란 고통과 시련이 없을 때 이루는 가정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서로에 대한 진정한 배려를 할 때 이룰 수 있는 가정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가정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정말로 가정 안에서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있었는지요?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서로를 위해 웃을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길 기도합니다.
 
 
Destiny of love
 


1,210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