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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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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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2-03-08 ㅣ No.71703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3월 8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If they will not listen to Moses and the prophets,
neither will they be persuaded
if someone should rise from the dead.
(lk.16,31)



제1독서 예레미야 17,5-10
복음 루카 16,19-31

나무나 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햇살이 비치는 쪽을 향해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실내에 두어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밝은 쪽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 역시 밝은 쪽을 좋아합니다. 이는 밝은 햇살뿐만 아니라, 성격의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우울하고 어두운 사람보다는 밝고 쾌활한 사람에게 훨씬 호감과 관심이 간다는 것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은 과연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을 비추며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밝고 쾌활하게 살아야 할까요?

이렇게 밝고 쾌활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을 위한 사랑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자신에게 물질적인 이득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남을 향한 사랑과 남을 위한 배려에서 얻는 행복은 매우 오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왜냐하면 우리들은 함께 살아가야 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 톨게이트 직원에게 저는 먼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또 계산이 끝난 후 떠날 때에도 큰 소리로 “수고하세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먼저 인사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화내는 것을 이제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도 더 밝은 목소리로 제 말에 응답해주십니다. 이렇게 남을 위한 작은 배려 하나만으로도 모두가 즐거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만 행복하길 원할까요? 나만 행복할 수는 없는데 말이지요.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살아 있을 때는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되지요. 반면 라자로는 살아 있을 때는 온갖 고통 속에 있었지만, 죽어서는 아브라함 곁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 붙는 지옥 속에 살고 있는 부자가 나쁜 사람이었을까요? 자기 형제들이 지옥에 오지 않도록 경고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볼 때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또한 부자라고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이웃의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구걸할 힘도 없어서 비참하게 누워있었던 라자로였지요. 그러나 이 부자는 이 라자로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개들까지 와서 종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한 상태의 라자로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던 것입니다.

이 무관심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자기만 즐겁고 자기만 호화롭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결국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참하게 보였던 라자로는 누구일까요? 어쩌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한 사람인 것이지요.

우리 주변의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만을 생각해서는 그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사랑도 실천할 수 없음을 기억하며, 나를 위해서라도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지함을 두려워하지 마라. 엉터리 지식을 두려워하라(파스칼).


아름다운 꽃과 나비. 이제 봄입니다.



사랑의 손길(‘좋은 글’ 중에서, 너무나 내용이 좋아 그대로 옮겼습니다)
 

미국에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이란 여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눈 수술을 받다 실명했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의 직장 출퇴근을 도와주었습니다.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해요.” 그 말에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했습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날 무렵, 그녀가 버스를 탔을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 뒷자리에 앉으며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등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때로 넘어짐과 서러운 눈물도 있고, 상처와 고독도 있지만 그때도 나의 등 뒤에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앞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없어도 내 뒤에는 그 누군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랑을 떠나도 그 사랑은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문제는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쌍둥이도 다르고 아침 해와 저녁 해도 다르지만 그 사랑은 영원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내가 사랑받을만한 존재가 되었을 때만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내가 배반해도 변함없고, 내가 실패해도 변함없고, 내가 못난 모습을 보여도 변함없습니다. 그 사랑을 배경으로 내일의 지평을 담대하게 열어 가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왜 그렇게 염려하십니까?

이미 내 삶의 곳곳에는 그 사랑의 손길이 넘쳐있습니다. 돌아보면 보입니다. 돌아보아도 안 보일 때는 돌이키면 보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돌이키면 이미 내 앞에 와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내 등 뒤의 사랑’이 보일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랑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면 그 사랑은 나를 향해 열 걸음 달려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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