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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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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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선 [osspaolo] 쪽지 캡슐

2001-06-27 ㅣ No.2472

구약시대부터 참예언자와 거짓예언자가 있었다.

수많은 거짓 예언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참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오늘날 종교계에서의 사이비 논쟁도 실상은

참예언자와 거짓예언자 논쟁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사이비 종교와 그 지도자들에 대한 고발을 우리는

메스컴을 통해서 접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만이 사이비, 즉 거짓 예언자일까?

 

기성 종교와 그 지도자들은 정말로 참 예언자들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구약에서부터 보더라도

참예언자는 그 숫자에 있어서도 몇 되지 않았다.

기성 종교와 그 지도자들이 모두 참예언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정말로 그들이 참예언자라면

이들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올바로 전달될 것이고

엄청난 회개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감히

타 종교, 특히 소위 사이비 종교와 그 지도자들에 대해 비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는 과연 참예언자가 얼마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개신교와 불교계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면서도 서로가 잘난 것처럼 때론 아귀다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자신이 얼마나 거짓예언자인지를 드러내 주는 표시일거라고 생각된다.

 

참예언자는

자신의 말을 전하지 않는다.

참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만을 전한다.

참예언자는

사심이 없다. 욕심이 없다.

참예언자는

오로지 하느님의 신탁을 전할 뿐이다.

그 때문에 어떤 어려움과 고초가 온다 하더라도...

참예언자는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시듯이

<말씀을 파는 잡상인>이 아니다.

그저

주님의 <향기로운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기 때문에

전할 뿐이다.

 

오늘날 종교계에는 이렇게 진정한 주님의 향기로운 말씀을 전해주는 예언자보다는

자기 말씀을 파는 잡상인들이 들끓고 있다.

소위 이름 있다는 명강론자들, 명사들은 대부분이 <말꾼>들이다.

나는 메스컴을 통해, 또 교회 매체를 통해 소위 유명하다는 대중설교가들을

크게 믿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은 <거짓 예언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에게 신뢰하기보다는

여기 <오늘의 묵상>이나 <따뜻한 이야기> 등에서

진솔하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정리되지 않고 어눌하기조차한

<말씀 나눔자>들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내고 싶다.

참 예언자는 삶을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어떤 나무인가?

내 영혼의 밭에는 어떤 나무들이 심겨져 있는가?

말로써만 화려한 열매를 맺는 그러한 나무들이 심겨져 있는가?

아니면, 삶으로써 소박하지만 소담스런 그런 열매를 맺는 나무들이 심겨져 있는가?

 

오늘

내 영혼의 밭에 있는 나무들을 가라엎자.

그리고 새 나무들을 심자.

너무 큰 열매는 기대하지 말고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그런 소담스런 열매를 맺는 나무이길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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