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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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에 귀 기울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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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avis96] 쪽지 캡슐

1998-10-01 ㅣ No.12

귀를 기울여 보세요.

 

 며칠 동안 서울에는 가을비가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가을비는 사람을 어쩐지 감성적으로 만들지요.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 편지를 쓰게 되고  괜스레 조용한 분위기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기도 합니다.

 

 어젯밤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데 미처 깨닫지 못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장독대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제 방에서 들리는 선명한 소리. 그것은 다름 아닌 김치 담글 때 쓰는 커다란 양은 함지박에서 빗방울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였습니다. '통-통-통' 거리는 그 소리가 무척 경쾌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깨닫고 나니 비오는 밤의 사물들은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리창과 빗방울이 맞부딪는 소리, 상점의 차양막에 부딪히는 빗소리, 마당 수돗가의 바가지 안으로 떨어지는 그 빗방울 소리들......

 

 비와 만나야지만 그 하찮은 사물들은 제 목소리를 지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 하나 김치 담그는 양은 함지박의 목소리에, 차양막의 목소리에, 바가지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와 만난 그들은

 "여보세요.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우리들의 마음에 귀 기울여 주셔야죠."

 느닷없이 함지박이 제게 항의하는 그 말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사람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 만물에게 자신의 목소리와 능력을 내려 주셨을 것입니다. 혼자서는 소리 낼 수 없지만 비와 만나서 혹은 어머니가 수세미로 닦을 때 뽀드득 거리는 양은 함지박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만 내어 보일 뿐, 다른 사람의 마음과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 했던 저에게 주님은 양은 함지박을 통해 말씀 하셨습니다.

 "얘야, 내 마음과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아빠가 지금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너는 귀를 막고 네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 기도란 너의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란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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