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3일 (목)
(녹)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성지순례기]초남리..유향검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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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simon] 쪽지 캡슐

2000-10-16 ㅣ No.277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향검...

초남리는 이 유향검의 생가터가 있던 곳입니다.

유향검은 양반의 자제로 공부도 집안도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었습니다.

사실 별 부러울 것이 없다면 그냥 누워서 편히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유향검은 천주교를 알고 나서 스스로 천주학과 함께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특히 주문모 신부님이 입국하시고 유향검은 호남지방으로 신부님을 모셔와

신부님을 유향검의 집에 머물게하시고 성사를 집전하고 교리를 배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유향검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천주교를 위한 기금으로 바치기도

하였구요....

 

이렇게 유향검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햇고 그의 아들 유중철은 주문모신부님께

평생동정으로 살고 싶다는 뜻을 말씀드립니다. 때마침 이순이(루갈다)라는 소녀도

마친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 깊이 고민한 주신부님께서는 이 둘을 함께

살도록 결혼을 시켰습니다. 동정부부로 살기를 약속하며 이 부부는 4년간을

동정생활을 하며 서로를 남매처럼 아껴주었습니다.

 

이순이가 어머님께 부낸 서신을 살펴보면 당시의 동정부부 생활이 마음처럼

쉬운것만은 아니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신의 내용중 ’몇번의 유혹으로 마음먹은 바를 어길뻔도 했지만...악마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다.’하는 부분이 잇습니다.

 

이렇듯 신앙심이 가득한 부부간에도 동정을 지키는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어려

운 일이었을겁니다.

 

이부부도 4년간의 동정생활끝에 결국은 순교라는 영광의 월계관을 쓰고 참수되었

습니다. 결국 유향검의 일가는 모두 치명을 당하고 이 가문은 집터를 헐어

그안에 물을 부어 연못을 만들어버리는 처형까지 당하게됩니다.

 

그래서 초남리생가터에는 연못이 있고 그위에 꽃이 피고 있으며 그 위로 돌에

생가터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초남리로 오기위해서는 전주에서 고속도로 방면으로 계속가다가 원동이라는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서부터도 한참을 들어가야 합니다.

또 동네가 외진 곳이라서 버스도 별로 없었습니다.

전주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는 6-1번으로 전주대에서 기린동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타면 초남리 성지 입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초남리는 유향검의 생가터로서도 그리고 이곳에서 살던 그의 일가와 동정부부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 천주교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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