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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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된 사랑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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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2-18 ㅣ No.3278

2월 19일 사순 제 1주간 화요일-마태오 6장 7-15절

 

"너희는 기도할 때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절제된 사랑의 매력>

 

어제 오후에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잔잔한 한국영화를 한편 보고 그 여운이 오후 내내 제 마음 안에 남아 "또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절제된 사랑의 매력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사랑 중에서 절제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요? 그에 반해서 본능적인 사랑은 얼마나 자주 이웃을 곤란에 빠뜨리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바치는 기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때로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기도 앞에 할말을 잊습니다. 때로 마치 하느님과 흥정하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기도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다 왕국 주변국가들 사이에는 숱한 사이비 종교들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신을 향해 바치던 기도의 특징은 일단 말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무척이나 장황하고 수다스러웠습니다.

 

그들은 본격적인 기도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수많은 신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50-100여가지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사였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기도가 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일단 많은 신들을 불러모으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자리에 불러모은 잡다한 신들을 향해 이교도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바램을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아마도 조선시대 무당이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벌였던 굿판과도 같았습니다.

 

이교도들의 기도는 기도라기보다는 필사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은 신들의 이름을 부름을 통해 먼저 신들의 비유를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신들이 자신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강요했는가 하면, 끈질기게 신들을 붙잡고 늘어져 신들을 지치게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신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들에게 승복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교도들의 그릇된 기도습관이 유다교 안으로 상당히 침투해왔기에 이를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많은 말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샅샅이 보고계시며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벌써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장황한 말로 하느님께 우리의 요구를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 앞에 머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 보십시오. 제가 당신 앞에 왔습니다. 제 가난함을 굽어보십시오. 제 오늘 하루를 당신 손에 맡기오니 어여삐 받아주십시오" 하고 바치는 겸손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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