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박도현 수사의 옥중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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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20joolid] 쪽지 캡슐

2013-07-25 ㅣ No.2592

교도소를 기도의 집으로 여기렵니다”제주 강정마을 평화활동 중 구속된 박도현 수사의 옥중 서신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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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4  14: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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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제주 해군기지 공사현장 불법공사 감시 활동 중 업무 방해 혐의로 연행돼 4일 구속된 박도현 수사(예수회)가 옥중 서신을 보내왔다. 9일 제주 해경 유치장에서 제주교도소로 이감된 박도현 수사는 교도소를 ‘수련원’, ‘기도의 집’으로 여기며 새로운 ‘생활 사도직’을 시작했노라며 교도소 생활을 담담하게 전했다.

박 수사는 “생평평화를 지키기 위해 활동하다가 공권력에 억압된 몸이 되었으니, 교도소 안에서 기쁘게 살라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썼다. 또 “공동체에 혼자 남아 있는 김성환 신부, 강정 주민과 지킴이, 제주교구의 형제자매들, 삼성과 해군, 정부 책임자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박도현 수사 ⓒ한수진 기자
♱ 그리스도 평화

모든 형제님들께 문안 인사 올립니다. 여기서 저의 교도소 생활 사도직, 첫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7월 9일 오후 제주 해경 유치장에서 제주교도소로 이감됐습니다. 이미 검찰 조사를 거부했기에 바로 교도소로 이송됐습니다. 경찰 호송차를 타고 제주교도소 철문 앞까지 와서 차에서 내렸습니다. 철문 주위의 담벼락은 높고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지요. 그리고 철문이 열렸고, 법무부 산하 교도관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첫 관문은 입소 절차를 밟는 것입니다. 인권에 반하거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요구는 거부. 수감복으로 갈아입고, 담요 등 교도소에서 지급하는 기본 물품을 들고 미결수동으로 이동했습니다. 미결수동으로 들어와서 바로 우측 모퉁이에 있는 신입 방으로 배치됐습니다. 신입 방이란 말 그대로 새로 들어온 수감자가 기본 생활을 배우면서 적응하기 위한 곳입니다. 거기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오후에 청소년방으로 옮겼습니다. 2하 7번 방. 소년수 3명, 성인수 4명이 5평 남짓 되는 방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모두 온순한 성격. 방 귀퉁이에 작은 수세식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문 옆으로 약 1m×50㎝×1m 철 싱크대가 놓여 있습니다. 화장실 문 유리는 1m 높이까지 간유리로 흐릿하고 나머지는 투명유리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완전히 개방된 생활이지요. 처음에 바빌이란 아이가 두어 번 나의 화장실 사용 방식을 시정하도록 정중하게 요청했지요. 아주 사소한 개인적 선호임에도. 그리고 막내둥이 진후(17)는 방의 활력소이자,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귀염둥이입니다. 며칠 뒤 우리 방에 새로운 입소자가 추가됐을 때는 잠자리 위치를 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약 5평 공간에 9명. 마치 옛날 더 태울 수 없는 만원 버스에 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아 승객 몇 사람을 더 태우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청소년방에서 6일째 되는 날, 나는 독방(2하 2방)으로 옮겼습니다. 혼거실에서 9명이 함께 지내는 밀착 공동생활에서는 개인적 생활을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독방에서는 혼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벌써 독방생활 일주일에 접어들고 있으니 생활의 틀도 조금씩 잡혀가는 듯합니다.

   
▲ 박도현 수사가 편지와 함께 보내 온 그림

저의 하루 일과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아침 5시에서 5시 30분 사이에 일어나서 아침 묵상 기도를 합니다. 6시 30분경에 기상점호가 있습니다.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고 아침식사. 8시 15분에 다시 개호점호가 있습니다. 오전 9:30~11:00 사이에 1시간 운동 시간이 있습니다. 운동 시간은 트인 하늘을 보며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귀중합니다. 매일 독거자 1시간, 혼거자 30분 운동이 허락됩니다.

정오에 점심. 오후 5시 점호. 점호 후에 저녁 묵상 기도와 성무일도. 오후 6시에 저녁 식사. 저녁 7:00 점호. 밤 9시 30분경에 양심성찰기도. 밤 10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매 식사 후에 묵주기도. 나머지 시간은 성서 읽기, 독서, 면회, 편지 쓰기, 빨래 등으로 채워집니다. 하루 일과가 예수회 수련원 시간표와 유사합니다. 혼자 하는 수련, 혹시나 게으를까 24시간 감시 카메라가 나를 지켜봐 줍니다.

여기 수용자에게 가장 큰 바람이 있다면, 하루 빨리 교도소를 나가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달력의 날짜를 가위표로 지워나가는 수용자의 애절함을 봅니다.

저도 하루를 정리하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성찰합니다. 교도소에서 퇴소 날을 꼽아가며 하루를 지우고 있지는 않았는지. 오늘 하느님께서는 허락하신 생명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하여튼 매순간 참으로 귀중한 시간인데 말입니다. 다니엘의 찬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찬미가 속에 삼라만상의 기쁨과 행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달아, 주님을 찬미하라.
하늘의 별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비와 이슬아, 주님을 찬미하라.
모든 바람아, 주님을 찬미하라.
불과 열아, 주님을 찬미하라.
추위와 더위야, 주님을 찬미하라.
빛과 어두움아, 주님을 찬미하라.
번개와 구름아, 주님을 찬미하라.
땅아, 주님을 찬미하라.
산과 언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땅에서 싹트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샘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바다와 강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고기와 물에 사는 모든 것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다니 3,51-90 ‘세 젋은이의 노래’ 중에서)

사실 공권력의 피해자가 된 강정마을 주민과 함께하기 위해서 그리고 제주도의 생명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활동하다가 그 공권력에 억압된 몸 되었으니, 얼마간이 될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기쁘게 살라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를 기도의 집으로 알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디딤돌 공동체에 혼자 남아 있는 김성환 신부님을 기억합니다.
7년의 좌절과 상처로 아파하는 강정마을 주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강정의 평화와 정의를 목말라 하는 강정 지킴이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제구교구 신부님, 형제자매님의 동행에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또한 자본의 탐욕에 찌든 삼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거짓과 자기정당화로 공사를 밀어 붙이는 해군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결정은 교묘한 독단으로 하는
제주도정과 이명박-박근혜 정부 책임자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결국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모든 형제자매님들의 관심과 기도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2013년 7월 18일
2하 2방 박도현 수사

박도현 수사 편지 수신 주소 : 제주시 오라2동 161번지 제주교도소 535번 박도현
(* 양윤모 301번, 김영재 435번, 송강호 409번)
 

***   강정에 평화, 주님께서 갇힌 이들과 함께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수사님 건강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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