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1933.6.26 ~ )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전반까지 세계 음악계를 이끌어 온 위대한 지휘자들중 한사람인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자리에서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을 이끌어 왔다. 말러, 슈베르트, 라벨, 차이콥스키, 멘델스존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포함, 다수의 녹음들과 세계 음악 팬을 사로잡았던 많은 콘서트들은 그가 지휘자로 루었던 업적과 명성을 대변하고 있다.
1933년 6월23일에 아바도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미켈란젤로 아바도 (Michelangelo Abbado)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아바도와 그의 형은 아버지로부터 피아노와 음악수업을 처음으로 받았다. 1955년, 밀라노 음악원에서 교육을 받던 아바도는 피아노 전공 학위를 받고 졸업하였다. 음악원 재학중 아바도는 안토니오 보토(Antonio Votto)에게 지휘법을 배웠고 같은 해, 잘츠부르크에서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와 함께 피아노를 공부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3년동안 아바도는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한스 스바로브스키(Hans Swarowsky)에게 지휘법을 배웠다. 1958년, 트리에스테에서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같은 해, 미국 탱글우드의 쿠세비츠키(Koussevitsky)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였다. 이를 계기로 아바도는 파르마 음악원의 교수직뿐만 아니라 지방의 여러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오케스트라와 계약을 맺었으며 1960년에는 라 스칼라(La Scala) 데뷔 무대를 가졌다.
1963년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Dimitri Mitropoulos)상을 수상과 함께 뉴욕 필하모닉에서 5개월간 일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그 해 4월 7일 아바도는 공식적인 미국 데뷔무대를 가졌다. 1965년에는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moniker)을 지휘하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데뷔하였다. 이듬 해, 1966년에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였으며 1967년에는 다시 빈 필하모닉의 기부금 콘서트 시리즈로 빈 데뷔 무대를 가졌다.
1968년부터는 고향으로 돌아와 라 스칼라에서 레지던트 디렉터를 거쳐 1971년 정식으로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특히. 아바도는 재임 기간중 전통 이태리 오페라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레퍼토리를 연주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델라 스칼라(Orchestra della Scala)"를 조직하였다. 그는 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쉔베르그, 노노, 리게티 그리고 스톡하우젠 같은 현대음악 작품들의 뛰어난 해석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1971년, 빈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으며 1973년에는 빈 필하모닉으로 부터 "명예의 반지(Ring of Honour)"를 수여 받았다.
1978년에는 유럽 공동체 청소년 관현악단(European Union Youth Orchestra)설립하였으며 이듬 해, 1979년에는 10여년 동안 꾸준히 관계를 지속해왔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1988년까지 9년동안 음악감독으로 재직하였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객원 지휘자로 초빙되었다. 이 시기에 아바도는 1985년,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음악적 공헌으로 국제 구스타프 말러 협회로 부터 메달을 수여 받았다. 한편 1986년에는 "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교향악단(Gustav Mahler Jugend Orchestra)" 와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Chamber Orchestra of Europe)"를 조직하여 예술고문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아바도는 빈 국립 오페라에서 음악 감독직을 맡았으며 빈 시의 총 음악 감독직에 임명되는 영예도 누렸다. 특히. 재임기간중 아바도는 1988년에 현대음악 페스티발인 "빈 모던(Wien Modern)"의 첫 주최를 담당하였으며 지금도 매년 아바도의 감독 하에 이 축제는 열리고 있다. 1989년, 아바도는 카랴안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제5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1991년에는 빈 국립 오페라를 사임하였다. 하지만 젊은 음악가들에게 수여하는 "빈 상(the Vienna Prize)"를 재정하여 빈 시와의 관계를 지속하여 오고 있다.
1992년에는 독일의 가장 영예로운 독일 시민 공로상을 수상 하였다. 같은 해, 첼리스트 나탈리아 구트만(Natalia Gutman)과 함께 베를린 페스티발 기간중 고전과 현대 실내악 콘서트에서 전문 음악가들과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함께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Berllner Begegnugen" 을 만들었다. 1994년, 또 다른 카라연의 후임직인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발(Salzburg Easter Festival)"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같은 해, 뮌헨 "에른스트 폰 지멘스 상(Ernst von Siemens Prize)"과 "그래미상(Grammy Award)"을 각각 수상 하였다.
2002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발의 새 작품 바그너 "파르지팔(Parsifal)"에서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였고 이를 끝으로 페스티발 예술감독직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직을 사임하였다. 2003년에는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이탈리아와 루체른 페스티발(Lucerne Festival)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2004년이후 2005년까지 아바도는 베를린 필하모닉,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 그리고 루체른 페스티발 오케스트라와 바덴바덴, 이탈리아등 유럽등지에서 말러를 비롯하여 베토벤, 브루크너, 바그너의 작품들을 연주하였다.
2006년 72세의 아바도는 2000년부터 발견된 위암과 투병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잘츠부르그의 콘서트와 "펜테코스트 페스티발(Pentecost Festival)" 일정도 모두 취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7년 11월 페르골레지 탄생 300주년 연주회에서 복귀하였다. <슈베르티아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