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펠릭스 1809-1847 Felix Mendelssohn
음악의 화가
출생과 환경
독일의 작곡가·지휘자·피아니스트. 함부르크 출생. 아버지는 유대계 은행가, 조부는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M.멘델스존이다. 교양 있는 어머니와 일생 동안 두터운 애정으로 지낸 누이 파니 등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11년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사, 일찍부터 음악교육을 받아 여러 악기를 다루게 되었고 그림·어학에도 재능을 발휘하였다. 괴테와 절친한 보수적 음악가 F.첼터의 지도도 받았다. 9세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고, 10세 때 작곡을 시작, 17세 때 관현악곡 《한여름밤의 꿈》의 서곡을 쓰는 등 매우 조숙한 천재였다. 18세 무렵 베를린대학 청강생으로 헤겔의 미학 강의도 듣고 또 멘델스존가(家) 음악회에 모이는 베를린의 지식인들과도 교제하게 되었다. 29년 베를린의 징 아카데미에서 J.S.바흐가 죽은 후 처음으로 그의 《마태 수난곡》을 재연하였는데, 이것은 바흐 르네상스의 개막을 위한 19세기의 기념비적 연주로 높이 평가된다.
그 후 영국과 유럽 각지를 연주여행하였으며, 스코틀랜드에서의 경험이 명작 《핑갈의 동굴》(30) 《이탈리아교향곡》(33) 《스코틀랜드교향곡》(42) 등을 낳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여행 중에 쇼팽, 리스트, 로시니, 베를리오즈 등 여러 작곡가들과 알게 되고 많은 악상(樂想)도 얻었다. 33년 남(南)라인음악제를 지휘하고 뒤셀도르프시의 악단장, 35년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관현악단 지휘자가 되어 고금의 명곡과 신작을 소개하는 데 진력, 유럽 제1급의 악단으로 키웠다. 41년 프로이센왕(王)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명으로 베를린의 음악활동 향상을 위해 힘쓰고, 43년 슈만과 함께 라이프치히음악학교를 설립하였다. 그의 일생은 짧았으나, 고전주의 낭만파의 대작곡가라는 명성과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요작품으로 관현악곡 《이탈리아교향곡》(33) 《스코틀랜드교향곡》(42), 서곡 《핑갈의 동굴》(30), 협주곡 《바이올린협주곡》(44) 《카프리초 브릴란드》, 피아노곡집 《무언가(無言歌)》(48곡, 29~45) 《엄숙한 변주곡》(41), 오르간곡 소나타 6곡, 전주곡과 푸카 3곡, 오라토리오 《성파울로》(36) 《찬미의 노래》(40) 《에리야》(46) 등, 극음악(劇音樂) 《한 여름밤의 꿈》(서곡 24, 기타 부분 42) 《안티고네》(40) 외에 합창곡·독창곡 등이 있다.
작품의 특징
멘델스존의 작품은 선율. 리듬. 화성적인 면에서는 바흐를 모범으로 하는 고전파 양식에 충실하지만 작품 내용적인 면에서는 슈베르트. 베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고전주의적 낭만파 작곡가의 경향을 띤다.
한여름밤의 꿈이나 핑갈의 동굴에서 볼 수 있는 문학적. 표제적. 묘사적 특징은 19세기 낭만파의 근본적인 경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오라토리오는 헨델이후 하이든. 베토벤 등에 의해 계승되었으며 19세기에 들어서는 멘델스존에 의해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성 바울, 엘리아스 등은 19세기 오라토리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1829년 바흐의 마태 수난곡 지휘는 기억 속에 묻혀 잊혀져버린 바흐의 재연구에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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