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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교향곡 1번 - Christoph von Dohnanyi│낭만파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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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8-05-18 ㅣ No.9980

Symphony No. 1 in C minor, Op. 11
멘델스존 교향곡 1번 가단조, Op.11
L. F. Mendelssohn 1809∼1847
전악장 연주 - Ⅰ. Allegro di molto
 
Symphony No. 1 in C minor, Op. 11
   Conductor : Christoph von Dohnányi
   Date Written : 1824
   Ensemble :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Country : Germany
   Recording : Studio Stereo
   Label : London / Decca Double Decker
   Street Date : May 11, 1999
 
 Ⅱ. Andante
 Ⅲ.Menuetto & Trio: Allegro molto
 Ⅳ. Allegro con fuoco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보는 보수주의적인 음악가였으나, 그를 단적으로 말하면 정신은 낭만주의에다 형태는 고전주의적 질서와 조화의 감각을 가진 작곡가라고 하겠다. 그의 형식이 완벽에 가깝도록 완성된 데 비해 심각한 내객이 부족한 탓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 감동이 없다는 것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그의 생활 환경이 너무나 행복하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르고 현실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에서 강렬한 열정이나 비창은 느낄 수 없지만, 밝은 빛과 시적이고 그림처럼 경쾌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세련된 형식은 그의 약점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멘델스존 - 낭만주의 음악...
멘델스존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부유한 유태계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인텔리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래서인지 모난 데라곤 없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의 천재성은 9살 때 발휘되어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며 12살에 대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음악가는 바흐였다. 그리하여 당시 최고의 작가였던 괴테는 바흐의 작품을 너무나 훌륭하게 연주하는 이 소년에게 반하여 이후로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많은 유명인사들과 함게 음악회를 열었다고 한다. 멘델스존은 이곳에서 많은 철학자들과 교분을 나눌 수 있었으며 16세가 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며 유럽의 음악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적극적으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6세에 이미 현악 8중주를 이끄는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이 연주는 그에게 최대의 명성을 안겨주는 사건이 되었다. 이 연주는 그동안 묻혀있던 바흐의 작품을 무덤 속에서 되살려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835년 멘델스존은 26살의 나이에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르르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다양하고 정열적인 음악활동을 펼쳤으며 게반트하우스는 곧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멘델스존은 그후로도 위대한 음악가들의 작품 복원에 힘써 혁혁한 음악사적 업적을 이루어 냈으며 7년 후에는 라치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했다.
이렇게 천재 음악가로서의 착실하게 활동하는 한편, 그의 가정생활도 극히 원만했다. 그는 다른 음악가들처럼 스캔들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으며 28살에 세실 장르노를 만나 결혼을 하고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렇듯 행복과 명성, 부를 모두 누리던 멘델스존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사랑하던 누이 화니의 사망소식에는 너무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쇠약해졌다. 또한 너무 무리한 연주여행으로 건강을 해쳐 스위스에서 요양을 해야 했으며, 결국 누이가 떠난 지 5개월 후 1847년 11월 라이프치히 자택에서 평온한 삶을 마무리했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한마디로 탄탄한 구조 아래 자유롭고 유창하며 환상적인 낭만성을 극명하게 표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4번 '이탈리아',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 피아노 협주곡 1번, 2번, 한 편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3중주곡 1번, 무언가 48곡, 오라토리오 <엘리야>, <성파울로>,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 등 거의 전 음악 장르에 걸쳐 주옥같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멘델스존의 부인 세실 장르노(좌)와 멘델스존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사랑했던 누이 화니
│협주곡│Mendelssohn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 64 야사 하이페츠 바이올린 샤를르 뮌시(지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Concerto for Violin in E minor, Op. 64 
   Conductor : Charles Munch
   Performer  : Jascha Heifetz (Violin)
   Date Written : 1844 
Ensemble :Boston Symphony Orchestra 
   Country : Germany
   Recording : n/a
   Venue : Symphony Hall, Boston, Massachusetts
   Recording Date : 02/1959
   Label : RCA Victor Living Stereo
낭만적인 정서와 유려한 멜로디가 흐르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대표적인 협주곡으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단초가 되는 곡이다. 영국의 스태딜 베네트는 베토벤과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교하면서 '아담과 이브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대담한 시도도 눈에 띄는데, 이를테면 거의시작과 동시에 바이올린 독주가 곡을 리드하는 것이나 전 악장을 쉼없이 연주하는 것, 또 제1악장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스스로 카덴차를 삽입하는 등의 수법은 이전에는 없었던 참신한 시도였다.
1838년 작곡하기 시작, 6년 후인 1844년 9월 16일 완성하였으며, 이듬해 3월 13일 페르디난도 다비드(Ferdinand David 1810-1873)의 독주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다비드는 멘델스존의 친구이며 게반트하우스의 콘서트 마스터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멘델스존은 이 곡을 만들면서 다비드로부터 바이올린 연주에 필요한 기교 등에 대해 수많은 조언을 받으면서 작곡을 하여 결국 최고의 곡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비교적 곡을 빨리 완성하기로 정평이 나있던 그에게는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는데 그만큼 그가 이 곡에 정성을 기울였음을 뜻한다. 3악장에 대해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여기에서는 요정이 춤을 추고, 멜로디가 샘솟는다. 모짜르트를 제외하고는 이런 곡을 만든 예가 없을 것이다.' ....중략...
글 출처 : 열려라 클래식 / 이현석 지음 2003. 08 / 돌을새김 출판사
     
도흐나니, 크리스토프 폰 (Christoph von Dohnányi, 1929-)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헝가리의 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뮌헨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다가 2년만에 중퇴하고 뮌헨 음악원에 들어가 작곡, 피아노, 지휘법을 공부했다. 1951년 뮌헨 시의 지휘자 검정 시험에 응모해서 R.스트라우스 상을 받고 합격했다. 이후 미국의 프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던 조부 밑에서 음악을 더욱 연마하는 한편, 레너드 번스타인을 사사했다.
1952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의 감독인 게오르그 솔티의 부름을 받고 가수 연습 코치 겸 지휘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약관 27세의 나이에 독일 최연소 음악 감독으로서 뤼베크 오페라 극장에 영입되었다. 1963년부터 1966년까지 카셀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 1964년부터 1969년까지 쾰른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도 겸무하게 되었다. 1968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에 취임하여 크게 실적을 올렸다. 1977년,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도흐나니는 1981년 12월,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했고, 이 악단과 함께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연주하는 등 눈부신 경력을 쌓았다. 그 결과 2002년엔 이 오케스트라의 계관지휘자의 영예를 차지했다.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와 발표한 음반은, 베토벤, 브람스, 슈만의 교향곡 전곡, 브루크너, 드보르작, 말러, 모차르트,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전곡 등 가히 누이 부시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낭만파와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 음반도 한결같은 비중으로 미디어의 상찬을 받았다. 오페라 쪽에서는 바그너의 “발퀴레” “니벨룽겐의 반지” 등이 유명하다.
빈 필하모니와 녹음한 디스코그레페도 만만치 않다. 베토벤의 “피델리오”, 베르그의 “보체크”와 “루루”,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살로메”, 멘델스존의 교향곡 전5곡, 칸타타 “최초의 발푸르기스의 밤”, 스트라빈스키의 “불새”“페트루슈카”(이상 London 레이블) 등이 유명하다.
1965년 베를린에서 헨체의 오페라 “젊은 귀족(Cerha's Baal)”, 1966년엔 잘츠부르크에서 “바쿠스의 무녀(Die Bassariden)”를 초연했다. 1997년에 지휘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2001년 여름에 막을 올린 스트라우스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는 당시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7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취임했고, 2004년엔 함부르크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계약했다.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는 객관적인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는 지휘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조지 셀이 만들어놓은 기반 위에서 클리브랜드사운드를 한층 더 발전시킨 도흐나니는 너무도 객관적인 해석으로 비평가들로부터는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말러나 브루크너는 너무 딱딱하고 철저하게 분석적이어서 크게 환영받지 못하여서 최근에 2 for 1으로 발매 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성향은 드보르작이나 슈만에서는 크게 빛을 발하여서 많은 명반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지휘자에 대한 글 출처 : 곽수근의 음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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