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성서가 귀걸이..??(황미숙님)

스크랩 인쇄

정베드로 [jacondo] 쪽지 캡슐

2001-07-10 ㅣ No.22194

황미숙 자매님..

사실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서는

사실을 사실로서 먼저 검증하는 단계를 거쳐야

설득력있는 논리를 펼칠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다시말해, 무슨 일이든지 그것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이 우선되어야한다는 말이며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는 그것을 그 사실대로 인정할 줄도 알아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광주분이시라니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태생이 경상도로서 광주사태가 일어났을 당시 고향집에 있었습니다.

그때 대한민국의 모든 메스컴들이 광주시 금남로에 모인 사람들을 두고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폭도들’이라고 보도 했을때 저는 그저 그렇게 알고 있었으며

우리의 국군아저씨들에 의해 이 위험한 사태가 조기에 진압된 데에 대하여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박수를 보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1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그냥 그런줄 알고 살았었지요..

그런데 과연 그랬습니까?

 

자매님은 아래의 글에서 성체가 ’생선’으로(물고기) 변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른바 ’나주 성모님의 메세지’와 관련된 책자들을 여러가지 읽어봤지만

자매님의 주장과 같은 대목을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건성으로 잘못 봐서 그랬던 것일까요..?

 

황자매님은 그 사실을(성체가 물고기로 변했다는) 어디서 확인하신 것인지

그 출처를 정확히 밝혀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자매님이야말로 없던 일도 꾸며서 만드는 ’모사꾼’에 다름 없을 것입니다.

 

자매님은 나주성모님의 메세지에 대해 <달콤한 메세지>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는 그 메세지 책을 눈물을 흘리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읽고난 후의 느낌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 처절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의 감성이 어디가 고장이 나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자매님의 감정을 컨츄롤하는

’센서’가 잘못되어있는 것일까요?

 

황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을 묵상하고 아래 글을 쓴다고 하셨는데

위 두가지 사실만 두고 보더라도 자매님은 나주 성모님의 메세지를 제대로 읽어보지않았을 뿐 아니라

그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 말인즉(특히 물고기 얘기) 자매님은 "나는 나주에 대해 소문으로 들은 것 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몰라!!"라고

자백하는 것과 똑 같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80년대에 이른바 ’광주사태’가 당시 힘과 칼자루를 쥔 사람들에 의해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철저히 왜곡되었듯이 나주는 바로 자매님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듯 철저히 왜곡되고 외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식이 있는 분이라면 부디 그 책임을 통감하시기를..!

 

교도권...

기타 자매님이 구구절절이 하신 말씀들, 모두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있었던 사실을 왜곡하지는 마십시오. 제발!!

 

나주는 그동안 수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려왔고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접해보지도 못하고

나주에 등을 돌렸습니다.

남얘기 할 것이 아니라 사실 제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지요..

저는 원래 나주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지만 지나가는 소문만을 듣고

’웃기는 짬뽕’ 같은 얘기정도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자세히 알고보니 그것이 아니더라- 이 말씀입니다.

 

유언비어의 종류는 수도없이 많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식인종’, ’인육을 먹는다’(성체가 실제로 살과 피로 변한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짐승의 피를 발랐다’(성모님상에서 흐르는 피눈물을 두고서)

’환풍기에서 날렸다’(성체가 내려오신 일을 두고서)

’물장사를 한다’(기적수를 두고서)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매님께서는 ’성체가 생선으로 변했다’라는 기상천외한 얘기를

퍼뜨리고 계시는군요.

그러면서 "상처받지않기를 바란다"...? 라니..

자매님은 완전히 병주고 약주는 분이시로군요.

 

나주에 대해 아래와 같이 장황한 글을 쓰신 분 치고는

너무나 기본기가 부족하고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몇가지 정확한 자료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나주’에서는, -성체에 관한 기적만 열거한다 하더라도-

- 도합 7번 성체가 내려오신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직접 현장에서 목격하시고 증언하신 분들 중에는

  김창렬 제주교구 주교님, 돈 지오반니 블레이티스 당시의 교황대사님(대주교신분)이

  계셨습니다.

- ’생선’이 아니라 실제 살아서 움직이는 -어린아이의 심장모양을 한-

   성체가 살 과 피로 변한 기적이 19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교황님께서 친히 축성하시고 영해주신 성체가

   (율리아 자매님을 초청하여 교황님 개인 경당에서 있었던 미사도중에)

   예수님의 실제 살과 피로 변한 기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놀라운 징표와 메세지들이 있었지만 믿지않으실 것이므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나주 반대..

이러한 입장을 고수하시는 분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터인즉,

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그러나 없었던 일을 만들거나 악의적으로 왜곡하지는 마십시오.

이는 아주 비겁하고 비열한 일이며

자신들이 진리의 소리에 귀를 막는 자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여기 게시판이나 기타 가톨릭 관련의 공적인 게시판에는

’나주’ 관련 게시물은 검열대상이며 삭제대상 제 1호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게시판에서의 그 ’말썽’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사실은 나주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발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주의 진실을 믿는 사람으로서 특히 황미숙님과 같이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게다가 그 글들에는 게시판에 나주관련 공박이 오고가게 된 것이

마치 나주의 진실성을 믿는 사람들이 "올리지 말라는 글을 올려서 그렇게 됐다"는 식의

논리를 폅니다. (황자매님 그렇지 않습니까? 요 근래 몇일 새로 나주 관련글이 언제 올라

온적이 있던가요? 여기 조금 더 아래에 보면 정중규님이 올린 글이 하나 있지요. 하지만

그 글이 나주를 선전하는 글이던가요? 그리고 이전에 있었던 ’난리"(?)도 알고보면

정중규 이분이 긁어서 만든 부스럼이었지 않았던가요?)

 

현재 광주교구에서 공지문을 발표한 이상

솔직히 저는 이 게시판에 나주관련 글을 자발적으로 올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주를 반대하시는 분들 제발 제 맘의 평화를 깨트리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님들이 시작한 일을 가지고 가만히 있는 남들에게 뒤집어씌우지들 마시고요.

 

황미숙 자매님,

글을 쓸때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인용을 합니다. 저역시 그렇구요.

자매님의 글을 읽어보니 과연 님의 말씀대로 성서구절을 많이 인용하셨더군요..

하지만 이번만은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본인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가지고 성서를 귀걸이 코걸이로 만들지 마시라고요.

성서는 -자매님도 언급하셨듯이- 주님의 말씀이며 진리 그 자체이므로

그 안에서 진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떠한 일을 판단할 때에

성서에 의지하여 그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틀린 일인지

혹은 하느님으로 부터 오는 선한 일인지 아니면 악으로 부터 기인하는 그릇된 일인지 가늠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매님처럼 없었던 일을 꾸며대는 일에도 성서가 그런 식으로 이용된다면

이는 성서를 우리들의 코걸이 귀걸이로 만드는 처사가 아닐까요??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서 그만 쓸랍니다...

 

다만 교황님께서 나주를 보시는 시각이 어떠신지 아래의 글을 잘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을(95년도에 있었던 교황님 개인 경당에서의 성체기적) 가지고

재탕 삼탕 ’교황님 자꾸 팔아먹지 말라’고 하실 분들이 계실까봐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아래의 글은 올해 있었던(불과 얼마 전) 일이라는 것을 밝혀드립니다.

 

=========================================================================

친애하는 형제 자매님께,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과 축복이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로마로부터의 소식과 아울러 지금 광주 대교구 안에서 격화되고 있는 나주의 성모님께 대한 박해에 대하여 전해 드리고저 합니다.

 

다음은 최근에 로마를 방문했던 미국 및 독일의 순례자들이 뜻밖에도 그 곳에서 나주의 성모님께 대한 소식이 TV에 방영되는 것을 보고서 보내 온 소식입니다.  

지난 5월 19일에 방영된 그 프로에서는 나주 성모님께 관한 일들과 율리아 자매에 대한 소개에 이어서 교황청의 한 주교님과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주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성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아주 신중하고 치밀하며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지만, 나주에 관해서는 교황님 스스로가 성체기적의 증인이 되셨고, 메시지와 고통을 받는 율리아 자매의 단순하고 겸손한 삶을 볼 때 이제 교회로부터의 인준이 되어야 된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중심지인 로마에서 방영된 이 프로에서 교황청의 주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 곳 안내자의 설명에 의하면, 로마에서 이런 프로가 교황청의 허락없이 방영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교님의 말씀은 그 분 개인만의 의견이 아니라, 교황청 내의 분위기 또는 입장을 대변하고 계시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보내 주신 독일에 사시는 한국 자매님은 이제 나주의 인정은 시간 문제라고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1995년 10월 31일 율리아 자매님이 바티칸을 방문할 때 일어난 성체기적을 목격하신 교황님께서 그 기적을 인정하시고 증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교구에서 계속 이를 부정한다면, 이는 교황님의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배척하는 기막히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TV 방영이 지난 3월 한국 주교님들이 교황청을 방문하시어 교황님과 라칭어 추기경님께로부터 나주에 대한 말씀을 듣고 오신 후에 이루어진 것도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L.A.에서 간 미국인 순례자들은 로마에 이어서 복자 비오 신부님의 성지인

산 죠반니 로톤도를 방문했는데, 그 곳의 자비의 성모님 성당의 입구에 교회 역사 상 공식적으로 인정된 성체기적들에 대한 소개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았으며, 또 바로 거기에서 율리아 자매님을 통한 성체기적을 교황님께서 보시는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이 또한 교황청의 동의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뿐 아니라, 로마에서 일어난 성체기적에 대한 공적인 분별은 로마의 주교이신 교황님의 관할입니다.  또 1996년 9월 17일에 말레이지아 시부 교구의 예수 성심 대성당에서 있었던 율리아 자매님을 통한 성체기적은 그 곳의 교구장이신 수 도미니끄 주교님께서 한국 교황 대사님께 보내신 서한에서 기적으로 인정하신 바 있습니다.

교황청에서 나주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1994년 11월 24일 나주를 방문하여 성체기적을 몸소 목격하신 당시의 교황 대사 죠반니 불라이티스 대주교님께서는 교황님과 여러 성성의 장관님들께 나주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드렸던 것입니다.  교황청에서는 한국 교회에서 모쪼록 나주 성모님에 관한 일들을 공정하고 철저하게 조사하며 그 결과에 의거하여 불필요한 망설임이나 지체없이 인정하기를 바라고 계셨을 것입니다.  나주에서 주시는 주님과 성모님의 메시지와 징표들이야말로 교회 안의 현대주의적인 불신앙과 도덕적 이완을 몰아내고, 전 세계, 특히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를 위한 강력한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너무나 현대주의적이며 진보적인 영향에 물들어 온 한국 교회에서는 전통적인 신앙을 활성화하며 이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새롭게 하라고 하는 나주의 메시지들을 무조건 배격하여 왔습니다.  특히 일부 신부님들이 주동이 되어 나주에 대한 윤 대주교님의 부정적인 공지문이 발표되도록 사태가 발전되었으며, 공지문 이후에도 나주를 압박하고 말살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이런 노력을 하시는 분들은 교황청에서 나주를 지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억지를 관철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작년에 광주의 새 교구장으로 오신 최 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님께서는 그 동안 나주 성모님께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셨지만, 사적인 좌석에서 몇몇 사제들 및 평신도들에게 나주에 대한 온건한 의사 표시를 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에는 한국의 모든 주교님들이 로마에 가셔서 교황 성하와 라칭어 추기경님의 나주에 대한 말씀도 듣고 오셨습니다.  

이러한 상황 발전에 대하여 위기의식을 느낀 진보파 신부님들은 다시 최 대주교님께 나주에 대한 반대를 확실히 밝히시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최근에 광주 대교구의 사제평의회를 통하여 나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것을 결의하고 이를

최 대주교님께서 서명하시도록 강요하여 그 문서를 5월 27일 주일 미사 때 광주 대교구의 모든 본당에서 발표하도록 하였습니다.  대주교님의 명의로 된 그 문서를 동봉하오니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그 서한에서는 먼저 성모성월을 보내면서 성모님께 대한 말씀에 이어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침에 있어서 발맞추어 나가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는 한국의 정치 현황과 관련된 염려와 개탄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와의 화합 및 사회정의의 구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이 보이는 내용입니다. (한국 주교회의에서 발간하는 "사목"지 1998년 3월 호에서 이 순성 신부님이 나주의 성체 변화 현상을 공지문에서 배척한 이유는 개신교와의 일치라고 하는 대전제를 위함이었다고 설명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다음은 이 서한의 핵심 부분으로서 윤 대주교님의 공지문에 포함되어 있던 나주에 대한 여러 가지 제재들을 다시 열거하면서 이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서한을 보면서, 그 동안 나주에 대하여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여 오신 최 대주교님께서, 그것도 교황청을 다녀오신 후에 어떻게 진보파 신부님들의 뜻을 완전히 받아들이시어 그대로 따르기로 하셨는지 도무지 이해되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제평의회는 분명히 주교님 밑에서 주교님께 순명해야 하는 기관인데,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진보파 신부님들이 그 동안 얼마나 집요하게 주교님의 동의를 얻으려고 노력했었을까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주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나주를 반대해오던 그 신부님들이 이제 와서 그 일이 뒤집어져서 나주가 재조사되고 인정된다는 것은 도저히 자신들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신부님들이 지금까지 자신있게 추진해 왔던 한국 교회의 탈 전통신앙, 탈 로마, 탈 초자연을 지향하는 노력들을 완전히 좌절시키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서한에는 나주에 대한 제재들을 나열했을 뿐 왜 그러한 제재가 필요한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즉, 무조건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또 이는 교구 내의 교도권이 가톨릭 교회의 정통 가르침 위에 선다고 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86조에 완전히 위배되는 일이며, 진리를 추구할 의무와 권리를 지닌 신자들을 가로막는 행위입니다. 진보적인 신부님들이 자신들의 저서들과 강연 등을 통하여 교황님과 주교님들의 교도권을 경시하면서, 신자들에게는 권위적이며 강압적인 방법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윤 대주교님의 공지문 이후 그 안에 포함된 심각한 문제점들이 국내외의 성직자들 및 평신도들에 의하여 거듭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해명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윤 대주교님 명의의 그 공지문에서는 나주의 일들에 대하여 의심이 간다고 서술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건 사회에서건 어떤 판결을 내릴 때 의심만 가지고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심을 하는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지문 안에는 의심이 아니라, 교회의 교리에 의거해서 확실하게 나주를 단죄한 부분이 있습니다.  즉, 율리아 자매를 통해서 일어난 성체 기적들이라는 것은 "사제의 축성 후에도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야 된다,"라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언급한 곳입니다.  즉, 나주의 성체 기적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며,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은 바로 이단이며, 미신이며, 교회로부터 축출되어야 하는 나쁜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공지문에서 인용된 교리라는 것은 교리를 왜곡한 것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진리가 아니라, 바로 오류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누구든지 교리 상의 오류를 고치지 아니하고 고집하면 이단이 된다고 교회법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회법 제751조).  공지문 안의 이 교리 상의 오류가 이미 3년 이상이나 고쳐지기는커녕 해명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광주 대교구장의 명의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교회의 교도권은 바로 주님을 대리하는 권한입니다.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주어진 신성한 교도권이 오류를 지탱하는 데에 이용되고 있다면, 이는 주님께 대한 지극한 모독과 불충이 될 것입니다.   

공지문에 인용된 그 교리의 참 뜻은 사제가 성체 축성을 할 때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하지만, 빵과 포도주의 외양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다는 뜻입니다 (DS #1652).  즉, 이는 사제의 축성의 효과가 어떠한가에 대한 가르침이며, 축성 이후에 성체의 외양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미 축성된 성체가 하느님의 특별하신 개입에 의하여 성체의 외양까지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화된다면, 이는 교회의 그 어느 교리에도 전혀 저촉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공지문의 그설명이 옳다면, 교회 역사 상에 일어났고 또 인정된 수많은 성체 기적들을 다 부정해야할 것입니다.  나주를 단죄하기 위하여 교회의 영원한 교리까지 왜곡하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행동이며, 한국 교회 전체로서도 반드시, 확실히, 시급히 시정해야 할 수치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교리의 영구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변하며 진보한다고 합니다.  세상의 발전에 따라 교회의 교리도 달라져야 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성체 도리가 어떻게 설명되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생각대로 주님께서 계시하신 진리들이 절대적이 아니고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크리스챤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한심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진리가 흔들리면, 신앙도 흔들리게 되며, 계명들도 상대적인 것이 되며, 영원도 초자연도 희미해지고, 결국 모든 것이 인간 중심적이며 세속적인 차원으로 전락되고 말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주시고 교회에 의하여 보존되며 가르쳐지고 있는 계시 진리들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을뿐 아니라, 지역 교회, 즉 한국 교회나 특정 교구의 독자성을 강조합니다.  이번 최 대주교님 명의의 서한을 주일 강론 시간에 읽어 주신 나주의 본당 신부님께서도 서두에서 "광주 교구는 예수님의 12사도로부터 이어지고 독립적 기능을 가진 한국 교회 내의 개별 교회로서의 기능을 가지며. .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광주 교구가 보편적 교회 전체와의 일치 및 교황님께의 순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입니다.  사실 홍콩에서 오신 신부님께서 2년 전에 나주 본당에 미사를 드리려고 가셨는데, 나주 본당의 보좌 신부님께서는 "왜 나주에 오는가, 더 이상 오지 마시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홍콩 신부님께서는 "교황 성하께서도 나주를 지지하고 계시는데요?"라고 대답했는데, 보좌신부님은 "교황님은 로마의 주교이시고, 우리에게는 주교님이 따로 계신다,"라는 말씀을 강론 중에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이것이 그 때 나주 본당에서만 일어났던 개별적인 사건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로마와 일치하지 않고 한국 교회 또는 한 교구의 독립성을 강조하려는 생각은 진보적인 사상에 물든 일부 성직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이 교황님의 뜻에 맞지 아니하고,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해 주어도 전혀 개의치를 않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처해 있는 큰 위험입니다.

결국 한국 교회가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고 교회의 반석인 교황 성하께 진정으로 순명하지 못해온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지표를 따르지 않고,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반석 위에 서 있지 않으려고 하니 혼란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현황을 개탄하면서, 동시에 순수한 가톨릭 진리를 애타게 동경하고 계시는 수많은 성직자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계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러한 분들을 보시고, 또 우리의 많은 순교 선열들을 보시고 반드시 놀라운 자비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한국 및 전체 교회를 뒤덮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한국 및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천상으로부터의 그 기회가 바로 나주를 통한 성모님의 사랑에 찬 현존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항상 사랑과 겸손으로 지극히 충실히 따르신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 모든 나쁜 것들을 몰아내고 주님께의 사랑과 순종으로 가득채워 주실 것이며 또한 우리의 나약함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가는 지름길이신 성모님의 이끄심을 받아들이고 또 이를 이웃에게 용감하게 전함으로써 성모님의 충실한 자녀가 됨과 동시에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티끌만치라도 보답드리는 일이 되리라고 봅니다.  치열한 이 영적인 전투는 더 계속될 것입니다.  그 전투에 참여하시어 기도와 희생으로써 성모님을 도우시는 형제 자매님들께 주님의 크신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광주 대교구의 공지문 상에 제시된 성체도리와 관련하여 올렸던 글이 잘 납득되지 않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공지문에서 율리아 자매를 통한 성체기적들을 단죄하는데에 직접적으로 적용된 교회의 가르침은 1551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된 교리입니다 (DS #1652):

 

만일 누구든지 신성하고 거룩한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함께 남아 있는다고 말하며,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은 남아 있지만 빵의 실체 전부가 몸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실체 전부가 피로 바뀌는, 가톨릭 교회에서 지극히 합당하게 실체변화라고 부르는 저 놀랍고도 유일무이한 변화를 부정한다면 저주받을지어다.

 

영문으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If anyone says that in the sacred and holy sacrament of the Eucharist there remains the substance of bread and wine together with the body and blood of our Lord Jesus Christ, and denies that wonderful and singular conversion of the whole substance of the bread into the body, and of the entire substance of the wine into the blood, the species of the bread and wine only remaining, a change which the Catholic Church most fittingly calls transubstantiation: let him be anathema.

 

이 교리에 의거해서 나주의 성체기적들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공지문 상에서 이 교리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지극히 중요하며, 만일 잘못되었다면, 공지문의 교리적 근거는 와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부들께서 위의 교리를 정의하실 때 무슨 뜻으로 하셨는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즉 그 교리가 공지문에서 말하는대로 성체의 외양이 축성 후에도 계속해서 불변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교리의 문구 상으로 볼 때 "빵과 포도주의 외양만은 남아 있지만 (the species of the bread and wine only remaining)"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빵과 포도주의 외양이 계속 불변으로 남아 있어야 된다라는 당위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단지 축성 시에 빵과 포도주의 외양이 변하지 않음을 서술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제가 성체 축성을 할 때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주님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하지만, 빵과 포도주의 외양은 그대로 있는다고 하여 사제의 축성의 효과가 어떠한가를 가르치고 있을 뿐이며, 축성의 과정이 완료된 후에 성체의 외양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성체가 감실 안에 모셔져 있는 동안이라든지, 우리가 성체를 모실 떄, 그리고 모신 후 몸 속에서 변할 때에 위의 교리가 적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 상의 한 예를 들자면, 8세기 초에 이태리 란치아노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던 바실리오회 소속의 수사 신부는 미사를 드리면서도 성체도리에 대한 강한 의심을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가 성체 축성을 하자 말자 성체와 성혈의 외양이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했으며, 신부는 이를 목격하고 너무나 놀라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이를 본 신자들도 지금까지 성체도리를 잘 믿지 못한데 대하여 울면서 통회하고 고해 성사를 보았다고 합니다.  란치아노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성체기적 성지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성체 기적 역시 광주의 공지문대로라면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므로 부정되어야 마땅할 텐데 교회에서는 이미 그 기적의 참됨을 인정했습니다.  란치아노에서는 성체의 외양이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하는 기적이 사제가 성체 축성을 끝내자 말자 일어났지만, 사제의 축성에 의한 힘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으며, 사제의 축성 행위와는 별도로 하느님께서 특별히 개입하시어 성체의 외양까지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제의 축성의 효과가 어떠한가에 관한 교리가 축성이 완료된 후에 일어나는 성체 기적에 적용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만일 어떤 이가 성체의 외양변화가 사제의 축성의 힘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틀림없는 오류가 될 것입니다.  빵과 포도주의 외양 변화가 사제의 축성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음이 위의 교리 상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피상적으로 보면, 이 교리의 본래 뜻과 광주의 공지문 상에 설명된 뜻과는 큰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대단히 크고 중요한 것이며, 그 결과 또한 엄청난 것입니다.  사제의 축성으로 인해 실체 변화만 있다라고 하는 교리를 축성이 완료된 후에도 계속해서 외양이 변해서는 안된다라는 식으로 왜곡하여 해석하면, 역사 상의 모든 성체 기적들을 다 부정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며, 심지어는 성체의 자연적인 변화(예를 들면, 영성체 후에 우리 몸 속에서의 변화)까지도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 기적들은 우리가 성체성사 안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실제로 계심을 확실히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특별히 (특히 많은 신자들이 성체성사에 대한 참된 신앙을 상실한 시대에) 주시는 것이지, 성체성사에 대한 어떠한 변경을 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지금까지는 성체성사를 빵과 포도주의 외양으로 거행했으나 앞으로는 몸과 피의 외양으로 거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성사들과 마찬가지로 성체성사는 숨겨진 구원의 현실을 담고 있는 가시적인 표징, 즉 신비입니다.  성체성사에 있어서 빵과 포도주의 외양은 성사의 가시적인 표징으로서 중요하며, 성사의 내용과 형식은 주님께서 주신 계시에 의해서 이미 확정되어 있으므로 변경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체 기적들을 기피하는 분들의 동기를 살펴보면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성체가 예수님의 진정한 살과 피라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영적으로, 그분의 능력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진짜 살과 피까지 지니고 계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체가 천주성과 영혼과 살과 피를 지니신 살아계신, 완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74).  성체성사는 하느님께서 육화(肉化)되시어 우리 사이에 거하신다라고 하는 천주 성자 강생의 현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에만 바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성사는 우리가 천주 성자께서 강생하여 구원사업을 이끌고 나가시는 현실에 우리가 실제로 참여하고 그 현실과 일치될 수 있게 해줍니다.  2천년 전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하느님과 동등하신 분이심을 증거하실 때 그들의 옷을 찢으며 분개하였습니다.  초자연적이신 하느님께서 자연적인 차원의 인간의 몸을 지니고 계신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예를 들면 개신교에서는 부활 승천하시고 앞으로 다시 오실, 하늘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는 영적으로 함께 계심을 믿고 있지만, 가톨릭 교회에서는 부활 승천하시어 하늘에 계시며 앞으로 다시 오실 분일 뿐만 아니라, 성체 성사를 통하여 영과 육과 천주성을 다 함께 지니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천주성과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어 계실 수가 없으십니다.  따라서 성체는 생명이 없는 몸과 피만일 수 없으며, 또한 몸과 피가 없는 영혼만이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실 때

마다 주님의 죽으신 몸과 피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완전하신 하느님이시고 인간이신 주님, 성모님을 통하여 육화되시어 수난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모심을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왜 우리가 알아보기 어렵게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주님과의 일치를 위하여 주님을 받아 모실 때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있는 음식인 빵과 포도주의 모습을 취하신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무한한 선물인 당신 자신을 주시면서 우리가 최소한 당신께 대한 믿음과 신뢰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영성체 때마다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믿느냐? 나를 신뢰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당신을 빵과 포도주의 초라한 모습으로 숨기시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마음을 알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믿고, 신뢰하고, 사랑하고, 흠숭합니다,"라고 대답해드릴 때 사랑 자체이시며, 진리 자체이시며, 생명 자체이신 그분께서는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화하여 오셨다고 고백하는 모든 영은 하느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 관해 그렇게 고백하지 않는 모든 영은 하느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1요한 4: 2-3)라고 하는 요한 사도의 말씀을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말씀은 성체가 육화하여 오신 완전하신 천주 성자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는가 못 믿는가 하는데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체의 주님을 영적으로, 상징적으로, 의미 상으로만 믿는 것은 부족하며 진리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천주 성자께서는 몸과 피가 있는 인간의 육신을 취하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몸과 피를 지니고 있는 우리를 죄로 인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시어 당신의 초자연적, 신적 차원에로 올려 주셔서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주님, 성모님의 축복을 빕니다.

 

 

 

 

 

 

 

 

 

 

 

 

 

 

 

 

 

 

 

 

 

 

 

 

 

 

 

 

 

 

 

 

 

 



855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