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칼 가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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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희 [dellia] 쪽지 캡슐

2001-09-28 ㅣ No.24804

찬미 예수님!

******************

 

아래 집 봐 주시는 성모님을 쓰고 있자니 창 밖에서 너무나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카알 가~려어~,  카알 가~려어

 

글을 쓰다 말고 문을 열고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 보니 등에 조그만 나무 상자를 들고 소리치는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가 보였다.  

 

글 쓰던 것 마저 써야 하는데.....

 

잠시,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 별 문제 없는 칼을 또 갈까 말까 망서리는 사이 할아버지는 저 멀리 사라 졌다.

컴퓨터 앞에 돌아 와 앉은 내 마음은 할아버지의 들리지 않게 멀어져 버린 칼 가려어 소리에 내내 신경이 쓰여, 서랍 속에 든 새 양말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봉지에 담아 밖으로 뛰어 나가 바람결에 실려오는 카알~ 가려어 소리를 향해 달려가 보니, 저 멀리서 할아버지의 휘어진 힘 없는 뒷 모습이 보여 무작정 ’할아버지, 할아버지, 잠깐만요~’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귀 어두운 할아버지는 그냥 계속 땅만 보고 걸어 가신다.  숨 가쁘게 뛰어 가서 바로 옆에서 보니 할아버지는 귀에 아주 구형 보청기를 꽂고 계셨다.  

 

몇년 사이에 귀가 더 나빠 지셨구나.....

 

성능이 좋지 않은 보청기 탓인지, 바로 옆에서 부르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 한채 계속 카알~~을 외치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자 그제서야 나를 돌아 보신다.

 

할아버지의 쾡한 눈을 보자 칼을 갈까 말까 또 다시 잠시 머뭇거려 졌지만 그냥, 양말 담은 봉투를 내밀며

 

할아버지, 오랫만이네요...... 집에 양말이 많아서요.... 이것 쓰실래요?.....

 

고맙소, 고맙소..... 쾡한 눈에 깡마르고 새 까만 할아버지 얼굴에 번지는 웃음을 보면서 또 다시 고민.....

 

어쩌지, 추석도 다가오고.... 사실 할아버지는 양말보다 돈이 더 필요 하실텐데.... 멀쩡한 칼을 또 갈아 달라고 해? .....말어?.....

 

집으로 돌아 오면서 계속 할아버지 뒷모습을 돌아 보았다.

 

에이..... 아까 나올 때 봉투에 몇 만원 넣어서 나오는 건데.....

집이 어디시냐고 물어나 볼 걸......

집에 추석이라 들어 온 설탕이며 식용유며 이것 저것 무지 많은 데......

 

할아버지는 내가 한 삼 사년 전에 처음 만났다.

휴가라 집에서 청소를 한다고 침대보며 발 걸레들을 아파트 현관 밖에서 툭툭 털고 있는데 아파트 아래에서 들리는 ’칼 가려어’ 소리가 무척 정답게 느껴 졌다.  

어머나, 요즈음도 칼 카는 사람들이 있나?  신기해서 한참을 바라 보다가 문득 나도 모르게 ’잠깐만요~~~ 칼 가시는 분~~~’ 하고 소리 쳤다.  

위를 쳐다 보는 칼 가는 아저씨는 호호 늙은 할아버지 였는데 불러 놓고 생각하니 사실은 별로 칼 갈 일이 내게 없는 것이었다.

 

’올라 갈께요~~~’

 

하는 발음도 불 분명한 그 목소리에 너무나 반가움이 배어 있어...

 

에이~~~ 모르겠다. 하면서 독일 쌍둥이 칼이며 일본 칼들을 주욱 꺼내 놓고 기다리니 할아버지가 올라 오셨는데, 생각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 분이셨다.

 

잠시 후, 멀쩡한 칼들이 내 눈에도 황당한 모습으로 돌아 온 것을 보면서도 그 할아버지의 하나 밖에 안 남은 유난히 커다랗게 보이는 윗 이빨덕에 불평은 커녕,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돈을 드렸다.  그 갈아 온 칼이란 것이 내가 예상 했던 것과는 달리 숫돌에 갈아 온 것이 아니고 그냥 돌을 드르륵 돌려서 마주 잡이로 상처를 내어 멀쩡한 독일 칼을 비롯하여 모든 칼들이 앞 뒤 상처자국만 가득 남은채 퍼렇게 성난 날들만 번덕이고 있었다.  하도 기도 막히고 하여, 퇴근하고 돌아 온 남편에게 보여 주었더니

 

’그 할아버지 아마 눈이 많이 어두우신가 보다’ 하였다.

 

그래도 그렇지, 솜씨도 없으면서 칼 간다고 다니면 어떻게 해.....

 

 

그리고, 여름..... 정말 숨이 헉헉 막히는 그런 더운 여름 날 나는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기며 시원한 국수나 삶아 먹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국수를 삶고 있었는데 또 밖에서 들리는 그 소리 - 카~알 가려~어.

 

저 영감 지난번 내 칼을 엉망으로 만든 그 영감이지?  아이고, 그래도 칼 가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나봐.  여전히 다니는 걸 보니......

 

속으로 하는 생각과는 달리 이상하게 자꾸 눈 앞에, 할아버지의 단 한개 남은 이빨이 자꾸 아른 아른 거렸다.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 보니 8월의 뜨거운 퇴약볕 아래, 열기를 훅훅 뿜어대는 시멘트 길 위로, 지치고 힘든 조그만 어깨를 허덕이며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더운 여름 사이로 할아버지의 카알~ 가려~어 소리는 금방이라도 쓰러 질듯 쓰러 질듯 아파트 건물 이곳 저곳을 부딪치고 깨어지는 듯 하여, 한참을 바라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초조 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어쩌나.... 누군가 칼을 갈아 주어야 할텐데..... 아무도 부르는 사람이 없네.....

 

잡아 먹을 듯 날름대는 8월의 퇴약볕아래 할아버지의 걸음은 참으로 위태 위태 해 보였다.

 

그래서.....

 

또 사고 쳤다....

 

그리고, 그날 내 칼들은 더욱 처참한 몰골로 바뀌었다.

 

’사모님 칼 많이 쓰시는 가 보이...... ’

 

나를 기억해 주는 할아버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국수 드시고 가실래요?  시원하게 한 그릇 드시고 가세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흔들면서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으응, 말씀은 고맙지만..... 되었어...... 사실 발이 더러워..... 날씨가 더워 땀이 많이 나서.......’

 

할아버지의 발을 보니 정말 더러웠다.  도대체 양말을 몇일이나 빨지 않고 신었을 까 싶었다.  게다가 후줄건하게 땀에 배인 옷이며....... 잠시, 거실 바닥에 찍힐 발 냄새와 식탁 의자에 배일 더러운 냄새...... 빠르게,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상황 판단을 끝낸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세요.... 할아버지..... 다음에 오세요.....

 

그리고, 내가 지불 해야 할 돈에 5천원을 더 얹어 드렸다.

 

사 잡수시고 싶으신 것 사 잡수시라고.......

 

그날 일은..... 두고 두고.... 내 가슴에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바닥에 밴 냄새야 비누로 닦으면 되고 식탁에 냄새 밸까 걱정 되면 방석이라도 깔고 앉으시라 하면 되고 이것도 저것도 걱정되면 작은 소반에 국수를 말아 현관에 걸터 앉아 잡수시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

 

처음엔 예수님의 사랑이 있어 시작 했지만 막상 그것이 내 생활을 깊게 침범하게 되니, 이것 저것 하찮은 것들에 발목이 잡혀 나는 그 사랑을 모르는 척 던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 아닐까?

 

사랑을 실천 하되 내가 불편하지 않아야 하며

사랑을 실천 하되 내가 손해 보지 않아야 한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사랑인가......

사랑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이기 조차 부끄러운 일......

저 초라함 속에 숨긴 예수님의 형상을 나는 보지 못하였고

저 힘 없음 속에 숨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으며

저 하잘것 없음에 숨겨진 예수님의 두둘김을 알지 못하였으니....

 

아, 아....

 

참으로 헛된 신앙이요.....

참으로 보잘것 없는 인격이요

참으로 서글픈 용기없음이니

 

내 예수님 얼굴을 어찌 바라 볼 수 있겠으며

내 어찌 예수님 종이라 말 할 수 있겠나.....

 

그날 이후 쉬는 날이면 행여 밖에서 칼 가려어~ 소리가 들릴까 귀 기울였고, 그 결과 쓸데 없이 우리 집 칼은 불쌍한 모습으로 나날이 변해만 갔다.

 

그러던, 그 할아버지가 최근 한 2년 보이지 않아 나는 아마 연세가 많으시니 돌아 가셨나 보다 하였다.  아마도 집에 없는 나와 이리 저리 시간이 서로 맞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오늘 그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들으니 얼마나 얼마나 기쁜지......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하나 밖에 없는 윗 이빨을 잘 간직하고 계셨다.

 

아직 그 할아버지를 우리 집에 모셔서 점심 대접을 못하고 있는 참으로 고집스러운 어리석은 나를 예수님은 이해 해 주실까??????

 

오래 전 의료 사고로 생사를 헤메일 때 만난 예수님......

 

가장 미약한 자 데려다 먹여주고 입혀 준 적이 있냐고.....

 

그렇게 물으시는 예수님에게 나는 약속 했었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살께요..... 예수님.....

 

델리아야 네 나이 50 이 다되도록 무엇하고 사느냐고.... 또 물으시면 어쩌나.....

 

정말 어쩌나.....

 

정말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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