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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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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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1-04-22 ㅣ No.63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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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요한 18장 1절-19장 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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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어졌다.”

 

<종결자 중의 종결자, 죽음>

 

 

    아직 떠나기엔 이른 선배 사제가 아쉬워하며 세상을 떴습니다. 아직 노모도 살아계시는데, 아직 하고 싶은 일이 그리 많았는데, 아직 작별하기에 아쉬운 인연들이 저리도 많은데...

 

    보는 사람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예술적인 ‘끼’가 많았는데, 시며, 그림이며, 다양한 아이디어며...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하고 싶은 미술공부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행복해했었는데, 사람을 그리 좋아해 늘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행복해보였는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했었는데, 예술과 인생과 삶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많았는데...

 

    마치 꽃잎 하나 떨어지듯 너무나 쉽게, 너무도 빨리 떠나버려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이럴 때 제일 힘든 게 밥숟가락 뜨는 일이더군요. 밥알들이 마치 모래알 같습니다.

 

    참으로 아쉽고, 때로 이해하기 힘든 것이 죽음이 분명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길을 걸어갔고, 갖은 희로애락을 나누던 사람이었는데, 더 이상 그란 존재가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 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더 이상 그 다정한 눈빛, 그 환한 미소, 그 타오르던 열정을 이 세상 그 어디서도 볼수 없다는 것, 참으로 너무나 큰 상실이며 슬픔입니다.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죽음이야말로 해결사중의 해결사이더군요. 요즘 즐겨 쓰는 단어 ‘종결자’가 분명합니다.

 

    선배 사제는 죽음을 통해 그 끔찍하던 통증에서 완전한 벗어났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생로병사의 사슬을 끊고 한 인생을 종결지었습니다. 이제 그는 편안한 얼굴로 우리 앞에 누워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자비의 품에 편안히 안겨있습니다.

 

    오늘 성 금요일,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참으로 끔찍하고 혹독한, 그래서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예수님의 죽음이지만, 그 죽음이 예수님께 주어진 마지막 사명이었기에,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죽음에 담긴 큰 의미를 찾아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큰 고통을 통해 우리의 작은 고통을 없애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작은 십자가를 가볍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끔찍한 죽음을 통해 우리 죽음의 고통을 경감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 이전까지 죽음은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 그 누구도 정복할 수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세계까지 내려가신 예수님께서 당신 죽음으로 그 죽음을 쳐부수셨습니다.

 

    영광스런 당신의 부활을 통해 죽음은 이제 더 이상 죽음이 아니요, 하느님 영광에 참여하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죽음은 이제 어둠의 땅에서 광명의 땅으로, 눈물과 슬픔의 땅에서 하느님 아버지 땅으로 건너가는 사다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죽으셨지만 부활을 통해 우리 안에 생생히 살아계시듯 우리보다 먼저 떠난 사랑했던 형제자매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영광된 부활의 삶에 참여하게 되었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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