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김진오 정치부장]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비리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로 지난 5,6년간 한국 정치사를 장식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親盧)이 정치무대에서 퇴장할 운명을 맞고 있다.
'5년 단임제'를 규정한 6공화국 헌법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檢(검찰)의 칼춤 앞에 친노 세력도 예외가 아닌 것.
구(舊)권력 실세들이 신(新)권력 하에서 모조리 검찰 사정 수사에 '줄초상' 나는 비극이 이번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최대 실세로 불리던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정치를 그만두기로 한 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의원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1억여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6일 밤 구속됐고, 끝내 영장심사 도중 의원직 사퇴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누구인가. 2002년 노무현 대선 승리의 주역이자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리며 참여정부 권력을 쥐락펴락했던 측근중의 측근이다.
지난 2003년 2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돼 초대 노무현 정부의 모든 정책회의와 인사회의에 참석했고, 그가 '否'라는 '딱지'를 달면 인사 대상에서 제외될 정도로 막강 파워를 자랑했던 인물이다.
당시 이광재 실장에게 '줄'을 대려는 고위 관료들이 줄을 이었고 "이광재를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공직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이 여당 내부에 나돌 정도였다.
막강 실세였던 그이기에 지금까지 10여 차례나 검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때마다 살아남았고 탄핵풍(風)이 거세던 지난 2004년엔 고향인 강원도 횡성.평창에서 17대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정권의 실세에 맞게 많은 지역구 사업을 챙겼고 18대 재선에 성공하며 의정 활동에도 열성을 보였지만, 비리의 굴레에서는 결국 자유롭지 못했다는 게 검찰측 평가다.
'친노'의 몰락은 이제 '우광재'에 이어 '좌희정'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 역시
강금원씨 사건에 연루돼 사법 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
노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굴레를 뒤집어쓰고 2003년 이미 영어의 신세가 됐던 그다. '실세'란 평가가 무색하게도 정치적 역량 한 번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이번에 또다시 한국 정치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386세력을 대변했고, 참여정부 청와대의 첫 의전비서관을 지낸 민주당
서갑원 의원도 검찰의 사정권에 걸려있다.
이미 구속된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과
박정규 전 민정수석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청와대를 주름잡았던 PK(부산경남) 민주화운동 세력들도 박연차 사건에 줄줄이 연루될 것으로 보여, 친노 세력의 함몰이 어디까지 계속될 지 예측불허 지경이다.
물론 이번 검찰 수사의 칼날은 최종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는 형 노건평씨 구속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씨에게서 빌렸다는 15억 원 이외에 50억 원 수수설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결국 정권 차원의 판단이 작용할 것이다. 정권 내 강경파들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가 있으면 명명백백하게 밝혀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번 기회에 친노 세력을 한국 정치무대에서 퇴장시켜버리자는 견해도 나온다. 도덕성과 청렴성을 무기로 정권을 잡았던 세력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것으로 판명나고 있는 만큼 국민은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것이라는 게 현 집권세력의 판단이다.
이 정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파장을 최소화할 것인지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처리하는 수순에 가서는 정치적 고려를 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가 터질 때부터 부쩍 말 수가 줄어들었다.
지난해 청와대 자료유출 수사 때까지만해도 반발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노 전 대통령이 칩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해 친노 세력이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면 친노세력은 궤멸적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어진다. 친노 세력의 위기는 386 운동권들의 입지 위축으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재기를 꿈꾸며 절치부심하던 친노 세력이 이명박 정권의 사정 칼날에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면, 민주당은 당장은 반발하겠으나 야당 권력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세력이 친노 세력, 386 운동권 세력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태동할 수 있다. 원든 원하지 않든 한국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 그야말로 '권불오년'(權不五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