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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호 [morningnews] 쪽지 캡슐

2003-08-24 ㅣ No.56222

 

  + 찬미 예수

 

  안녕하십니까? 조정제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가톨릭 교리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려는 모든 분들께 절절히 교회를 사랑하시고 문제점들에 대하여 우려하시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님처럼 감히 나주 성모님을 사랑하는 분들도 사랑하고픈 욕심(?)을 가진 사람이라 고백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이분들의 말씀도 무리가 없다는 점을 피력하고 싶은 것입니다.

 

  님의 의견에 반론섞인 저의 의견을 피력하기에 앞서 저는 독특한 성모 신심 체험자임을 밝혀 드리고 싶습니다.

 

  1961년 태어난 해에 성모 승천 대축일을 사흘 앞둔 싯점에 성 도민고의 세례명을 얻고, 아버지가 아홉살 되던해에 선종하시어 주일학교를 하선하여 오랜 냉담 여정중에 로사라는 자매를 외사랑함으로써 길고 긴 고독의 여정을 밟으면서 강물이 물침대로 보이던 위기(위기+기회)를 맞이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주님의 권능으로, 바로 조정제 님같은 하늘의 별들의 기도로서 은총 여정으로 재진입했던 추억이 있는 것입니다. 이때는 양화대교부터의 일이었지요.

 

  이날 사건으로 그로부터 10년뒤, 성령체험에 이르기까지 교회안에서 때묻은 기쁨등으로 하루를 이으며 훗날 성서속에서는 로사는 로사리오 기도와 깊은 관련이 있고, 성 도민고 성인께서는 로사리오 기도를 성모님의 전구로서,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성모님 품에 안기신 아기 예수님의 손길로 온 세상에 스카플라와 함께 효시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슴을 알 수 있었습니다.

 

  리마의 성녀 로사는 당시 창녀였으나 말씀의 전구 수도회인 성 도미니꼬회에 가입하시어 은수자로서 회개하여 살며 여생을 마감하기도 하셨슴은 님들이 주지하는 바와 같습니다.

 

  저는 님의 글을 읽으면서 과탈루페 성모님 역사처럼 역시 하늘나라에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한사람도 안 보임을 공감할 수 가 있었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조차도 성모님 망또속에서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 평화방송에서 들은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천한 그리고 염치없는 죄인이기에 아니 다만 악의 하수자로서도 성모 교인들을 비방할지라도 나주 분들도 역시 성모님의 망또로 보호 받으심은 자명한 이치라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이분들도 인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의 개인적인 바램입니다만, 문제는 오늘도 우리가 묵주기도를 성모님께 바치기때문에 그것이 늦어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역시 강조하신데로 묵주기도는 다만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께 바쳐져야 마땅할테니까요.

 

  한때 어느 가르멜 수도회 원장 신부님의 고백을 벗삼아 이곳에도 성모 찬미 낭송을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도 성모님은 창조주로 오심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성모님이 성령의 정배(가장 합당한 짝궁)이기에 우리가 다만 티가 없기에 지상에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성모님과 일치하여 스스로 창조 주체가 되자는 취지이며 따라서 찬미 예수님과 찬미 성모님의 동시 다발적 인사는 무리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 가정에 아빠와 엄마가 존재하듯,

 

  한사람에게 육체과인 감성과 정신과인 이성이 상존하듯,

 

  그리고 우리에게 빛의 마음과 어둠의 마음이 존재하듯,

 

  우리는 오늘도 어둠을 항시 이길 수밖에 없는 빛의 은총으로 소금도 과학적으로 양분하면 여와 남처럼, 인간의 감정이나 어리석은 이성처럼, 그리고 선악과처럼 다가와 염소와 나트륨의 독소로 변한다 하셨지요.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그것을 일심 동체화하고 있는 것으로서 감성을 떠나 이성을 떠나 다만 의지적으로 해야 할 사랑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적인, 이성적인 언어의 중증에 걸린 몇몇분을 위해 우리는 주모경을 바치기도 할 것입니다.

 

  순례자의 길이 모든 성인, 성녀와 형제들의 도움으로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께로 가는 것이기에 성모님도 붙여드려서 오늘날 가톨릭에서는 남녀의 평등권을 위하여 공용 호주제도 보좌하는 운동이 일고 있기도 합니다.

 

  혹자는 하느님 아버지라 해야지 아버지 하느님이라 칭함도 문제라고 지적해 주십니다.

 

  역시 저는 이 말씀에도 크게 동감합니다. 그리고 후자도 그려려니 하는 마음임은 여러분과 같은 생각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성모님이 공동 구세주라 함 속에는 가톨릭(사랑의 공동체) 용어 자체이기도 하며 반면의 매우 힘들고 어려울 수 있는 여정의 발상임도 님과 동감하기도 합니다.

 

  조정제 님께서 하느님은 삼위일체로서 다가오시어 온 머리를 다하여, 온 가슴을 다하여 온 어깨의 힘을 다하여 다만 손을 합장하여 하늘을 지향하고 오른손 엄지로 왼손 엄지를 덮는 십자가의 형상으로 기도하자는 취지의 글을 주셨듯 우리는 성모님이 공동 구세주이기 이전에 이를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눈과 아들이신 예수님의 입과 성령의 의지를 또한번 간구하기도 합니다.

 

  가톨릭 교회내에서는 일찌기 말씀 우선 지향의 개신교와 전례 우선 지향의 가톨릭이 그리스도안의 한 핏줄로서 하나되는 성령쇄신 운동으로 성령 기도회의 모임을 갖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 곳에서도 감성 지향을 우선적으로 판단하여 일부 말씀 봉사자조차 같은 성령 쇄신 운동권인 울뜨레야(자 가자!) 단체의 미온적인 태도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꾸르실리스따(스타와는 관련 없는 단어)들은 또한 성령기도회 팀들을 이성적으로 보며 너무 나선다 바라 보는 경향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일지기 황희정승이 모두가 맞다하니 중간에 말리는 시누이가 이르기를 당신은 왜 다 맞다고 하느냐? 물었을때 "그대 이야기도 맞구료"로 맞장구 치신 일화를 기억하며 이곳의 모든 분들 의견이 다 진리가 담겨 있슴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보고 게시겠지만 이용섭 성 아오스딩 님께서도 근자에 이르러 성령 안수 기도의 은총등으로 매우 점잖케 응답해 주심에 가톨릭인의 한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약을 믿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만을 연연하며 최고의 기도라 하는 주님의 기도를 바쳐 볼 때에도,,,우리가 가까운 이로부터 받는 상처의 치유, 그 사람에 대한 용서가 매우 어렵지 않던가요?,,,

 

  그런데 신약을 믿을 때는 완전하신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그것을 의탁할 수 있어서 쉽고 편안한듯 합니다.

 

  잠시 머리도 식힐겸 오늘도 쉽고 편안함에 젖은 우리가 성모 찬미 한번 더 들어 봅시다.

 

 

 

첨부파일: 성모성월 마지막 주일에.mp3(151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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