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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의 思想 뿌리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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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희 [edohyy] 쪽지 캡슐

2022-02-16 ㅣ No.224513

+ 찬미예수,


<원효대사 (元曉大師)의 思想 뿌리 탐구>  

한국 佛敎思想의 뿌리를 찾아서.... 

"두 날개" 원효대사의 반전…그는 원래 '칼의 달인'이었다. 원효의 고향은 지금의 경북 경산이었습니다. 출생부터 험난했습니다. 원효의 부모는 만삭의 몸으로   밤나무 골짜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산기가 찾아와 길에서 출산을 해야 했습니다. 원효의 아버지는 입고 있던 윗옷을 벗어 밤나무에 걸고   임시로 앞을 가렸습니다. 노상에서 힘겹게 원효를 출산한 어머니는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붓다의 출생이 떠올랐습니다. 둘은 태몽도 닮았습니다. 인도의 마야 부인은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왔고,   원효의 어머니는 유성이 품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서 아이를 가졌습니다. 
 
진평왕 때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삼국이 영토 확장을 위해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던 시기였습니다. 원효가 열두 살이 됐을 때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현(김유신의 아버지) 장군과 함께 고구려 낭비성을 공격하다가   원효의 부친 설이금은 전쟁터에서 전사했습니다. 
 
열두 살 때 원효는 고아가 된 셈입니다. 그런 원효를 할아버지가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원효는 아버지를 여읜 열두 살 때 화랑이 됐습니다.   마음속에는 고구려를 향한 깊은 복수심도 있었겠지요. 열여섯 살 때(선덕여왕 1년)는 무술제 경연대회에서 장원도 했습니다. 원효는 무예가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특히 검술 실력 빼어났다고 합니다. 
 
이듬해에는 조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효는 화랑으로서 전쟁에도 수차례 참여했습니다.   처절한 전장과 숱한 죽음을 목격했겠지요.
부모의 죽음, 조부의 죽음, 전쟁터의 죽음을 겪은 원효는 삶을 무상함을 절감하며 출가의 길로 들어섭니다. 
 
자신이 살던 집을 희사해 ‘초개사(初開寺)’라는 절을 세웁니다. 또 어머니가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밤나무골 불땅고개 옆에 ‘사라사’라는   절을 지어 모친의 혼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입산수도의 길을 떠났습니다. 
 
원효스님은 신라시대 귀족들만 신앙을 누렸던 佛敎를 일반 대중화시킨 종교신앙의 장애물을 모두 허무러버린 자유분망한 광대같이 소탈한 스님이었습니다. 
 
원효대사(元曉, 617~686)는 같은 신라시대의 8년후배인, 대승려 孤高한 의상대사(義湘, 625~702)와는 다른 性品으로, 마치 섹스피어의 우유부단으로 혼자서 고민만 하는 하무렡 스타일이 아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같은 天性의 활달한 性品의 스님이었습니다. 바로 그분이 창안해낸 佛敎思想인 화쟁사상(和諍思想)과 무애사상(無碍思想)그리고 진속일여(眞俗一如) 思想이 그분의 生活思想의 특징이였습니다.  
 
즉 그분의 主要 思想이란;
1). 和諍思想(여러 모순/대립 현상을 보는 관점 차이는 있을뿐, 갈래의 본질/근본 뿌리는 같다).  
2). 無碍思想(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 사상).  
3). 眞俗一如(진리와 속세는 따로 떨어진 둘이 아니고 하나다).   
 
~佛敎佛道에서 전함,~
"자신의 참회가 꼭 이뤄지게 해달라고
소원의 기도문인 注文이"~
‘수리 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람니다. 
 
 
글옮긴이~李도희(아오스딩)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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