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정보기관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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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1-01 ㅣ No.480

정보기관에서도 미국의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는 인정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정상들의 은밀한 대화를 도청해도 “할 만하다”며 큰소리치고 있다. 왜냐면, 미국이니까.

소수 인권을 대변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미래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모두 미국의 도청을 비호하고 있다. 야당인 공화당도 오바마 행정부의 이 같은 입장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은 원래 도·감청 전문 정보기관이다. 중앙정보국(CIA)보다 방대한 조직의 규모나 활동은 은밀히 베일에 싸여 있다. 이번에 일부가 드러난 셈이다. 미국의 역대 정권은 공화, 민주를 가리지 않고 ‘국익’의 관점에서 이 기관의 활동을 눈감아왔다.

미 정보기관의 오만함은 거꾸로 세계 모든 국가에 자국 정보기관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정보란 관계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키는 1차 요인이다. 세상은 정보를 가진 자와 없는 자로 나뉜다. 정보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해봐야 정보를 가진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손자병법의 필살기인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란 말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미국과 여타 국가는 정보를 둘러싼 비대칭적 관계다. 실제 한국의 대미 정보 의존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 미 NSA가 주도하는 평양의 시긴트(SIGINT·감청 등 신호분석을 통한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국가 정보의 기본 속성은 합법과 비합법의 담장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이 투명해진다고 하지만, 투명한 것은 이미 정보가 아니다. 투명해진 세상일수록 정보는 더욱 중요해지며, 이를 얻기 위해 투명하지 않은 방법을 개발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국가 간 정보는 오랫동안 합법의 영역을 벗어나 있고, 국내 정보 역시 비합법과 경계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세상이 투명하다면, 지구상의 모든 정보기관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저 검찰과 경찰, 외교부, 통일부 등이 가져다주는 공개 정보에 의존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국정원이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존재 명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문화일보는 북한 225국이 국내 대기업 S사의 전산망을 1년 이상 침투했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친 국정원 비밀요원의 추적에 의해 단서가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225국 공작원이 S사 중국 현지 법인의 조선족 직원을 포섭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넘겨받은 뒤 S사 전산망을 헤집고 다닌 충격적 사건으로, 적발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는 국정원 직원들의 쾌거다.

국정원이 살아남으려면 이처럼 스스로 존재감을 살려야 한다. 국정원에 제일 중요한 것은 조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그저 과거에 있었으니 미래에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라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도려낼 것은 도려내고 보여줄 것은 보여줌으로써, 정권의 길잡이가 아닌 국익의 선도자로서 이미지 변신을 성공시켜야 한다. 미국처럼 여야가 함께 옹호하고 비호하는, 그런 굳건한 정보기관을 보고 싶다.

kka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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