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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자유게시판

늦은 오후에쓰는 새벽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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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stefanlee] 쪽지 캡슐

2008-04-24 ㅣ No.119761

오래 전에,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 수년간 그 제목이 쓰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복이 오도록 웃을 만큼 웃겨주기 위해 어떤 희극을 벌여야 했을까?
좀처럼 웃지않고 웃어지지도 않고 웃을 일도 없었던
그 때의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말입니다.

바보 같은 표정
모자라는 듯한 말투
늘 허둥지둥 허겁지겁
아니면 틀린 소리를 너무나도 자신 있게 크게 떠드는 일
특히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무 때나 넘어 지고 부딪치는 슬립스틱이었겠지요.

선남선녀가 아닌
뚱뚱이와 홀쪽이 그도 아니면 비실이의 모습으로
무슨 이야기 인가를 분명히 하려고 했었을 텐데,
아예 보기도 전에 채널을 돌려 버릴 만큼
모자라고 유치한 것으로 비웃음을 받고 무시당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때에 유명하던 희극배우 중에 많은 분들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많다네요.

지나고 보니
그 때는 코미디를 그렇게 뿐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특정한 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가끔씩 흑백시절의 미국 코미디들이 나올 때 보면
종일 넘어지고 부딪치고 하는 장면 투성이 였던 것을 보면서
그런 것도 코미디 극의 한 조류로
시대에 따라 유행이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더러는
어떤 의식의 근원이나 사고의 괴로움을,
무의식이나 무의미적인 행동의 형태를 빌려 돌출 시킴으로서
코미디적 요소에 반하는 감정과 현실을 해소 시키고
혹은 은폐 하여 보려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약간은 과장된 해석을 저 혼자 해 보기도 합니다.

지금에 와서,
가난과 독재라는 비극이 도처에 산재했던 시대에
코미디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원치 않아도 또는 이유 없이도 밀려가고 끌려가는
그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괜히 넘어지고 쓸데 없이 부딪치는 코미디와
별 다를 것도 없지 않았나 하고 여겨집니다. 

코미디 마저도 그 우울한 시절을 살아내야 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 하고
코미디가 트레지디 보다 더 비극적인 무의식을
포함할 수 있다고도 느낄 수 있겠으며
슬픔과 괴로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비극보다
때로는 희극이라는 말이 더 비극적일 수도 있다고 여겨 집니다.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나가는데
하여튼 그 시절에 본 어느 코미디 한편,
아마 서영춘 선생이나 구봉서, 배삼룡 선생 등이 등장 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대감이 아주 어렵게 십대독자를 얻는데
귀하고도 귀한 그 아들이 무병 장수 하라고
궁리 끝에 아주 긴 이름을 붙여 줍니다.

이름하여
[金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쎈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의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그것이 그 댁 도련님의 이름이었네요.
어렸을 때 외운 그 이름이 지금도 이렇게 생각나다니
왜 쓸데없는 것만 기억이 나는지 제가 생각해도 웃깁니다.
제가 좀 웃기지요?

마당쇠가 허겁지겁 대감에게 달려와서 말씀을 올립니다.
하이고~ 대감님  
[金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쎈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의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도련님께서
물이 빠져서 죽게 생겼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대감마님 왈...................
우리 아들
[金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쎈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의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가 어떻게 되었다고?
그런 식으로 몇번 이름을 주고 받다가
결국은 물에 빠진 십대 독자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름을 가만히 보면
의미 없는 말로 웃기는 듯 하는 것도 들어 있지만
십장생의 이름이 들어 있고
노아의 방주 이전 창세기에서 제일 오래
969년을 살았다는 므투셀라 라는 이름도 등장합니다. (창세기5,25)

귀한 자식을 어릴 때 미천한 이름으로 불렀다는 식으로
개똥이는 안 나오지만 바둑이 돌돌이 그런 이름도 나오고
그런데 삼천갑자 동방삭이 무얼까 하고 궁금했었지요.

말하자면 한 개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천도 복숭아를 먹은 동방삭이 삼천년을 살았다는겁니다.
동방삭이 한 무제의 복숭아 세 개를 훔쳤거든요.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세월 앞에서는 어떤 인생도 다만 덧없을 뿐인데
모든 감정을 추스리고 정제하고 절제하는 정도에 따라
보기에 희극적으로도 비극적으로도
희망적으로도 절망적으로도
그렇게 달리 보여지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왜 너무 웃기면 슬퍼지는지 그것도
이와 다름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복숭아는 참 맛있는 과일입니다.
복숭아 하면 무슨 생각이 나세요?

껍질이 저절로 벗겨지고 단물이 팔에까지 흘러 내리는
그 보드랍고 향그로운 맛의 백도,
딱딱하고 시어서 눈이 감기는 천도복숭아의 싱싱한 맛,
아니면 병원 문병갈 때 가져가던
미제 깡통 속에 들었던 황도복숭아 통조림,
껍질에 알러지 있는 분도 계실테고요….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은 껍질에 털이 보슬보슬한 복숭아는
잘 즐겨 먹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맛있게 먹던
큰 백도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동양적인 분위기와 전설을 가진 복숭아는
보약처럼 귀히 여겨지는 반면,
서양 사람들은 복숭아의 향을 차로 끓여 즐기던가
로션에 복숭아 향을 넣어 남자 유혹하는데 쓴다든가 하더군요.

그런데 년전에 버지니아에 출장중이었다가
어떤 중국사람이 농장에서 백도를 따가라고 신문에 계속 선전하는 걸 봤습니다.
가 보니 빨갛게 익은 색은 참으로 예쁜데
손길을 주고 키운 것이 아니고 그냥 내버려 둔 것들이라
아주 작게 열매들이 맺혀 있었고

따오는 수고는 사고 싶은 사람이 하고 돈도 지불 해야 하지만
따는 재미도 솔솔 하고
따면서는 얼마든지 공짜로 먹어 볼 수도 있는데
따 가는 것은 무게당 돈을 내지만 아무리 나무를 통째로 내 주어도
그 자리에서 공짜 복숭아는 배가 불러 두 개 이상은 못먹겠습니다.

복숭아는 건강에 아주 좋은 과일이라지요?
하느님 주신 이 땅에 있는 어떤 열매가 좋지 않은 것이 있겠어요?
그것을 귀히 여기고 귀함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모두 약이 되고 생명이 되는 힘이 있겠지요.
그 신비에 대해 감사하면서 복숭아를 먹으면
동방삭의 복숭아와 뭐가 그리 다르겠습니까?
 
갑자기 왠 복숭아 타령인가? 하실겁니다.  
 
 
재수하는 불쌍한 고4 우리 딸..................
새벽에 일어나 잠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뺨은 백도 만큼 희고 아직도 보숭한 어린 솜털사이로 백도처럼 불그스레 빨간 볼이
참 곱습니다.


바보들이 부르는 바보이름 조차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쎈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서생원의 고양이 고양이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시험에 나온다면 외워야지요.
외워야 대학엘 갑니다.
연극대본 처럼 누가 잘 외우나 세트안에서 경쟁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
백도처럼 솜털 보숭해서 뺨이 참 고울텐데요.
 
곧 복숭아의 계절이 오면
한 광주리 복숭아를 마련해설랑 둘러 앉아 나눠 먹으며
아이들에게 말합시다. 
뺨을 만지며 말합시다.
 
이 색고운 복숭아보다 너희 뺨이 백배 아니 천배 훨 곱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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