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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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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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8-31 ㅣ No.3990

9월 1일 연중 제 22주일-마태오 16장 21-27절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철퇴>

 

제가 입회할 무렵 지녔었던 각오는 대단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입회하면 이러이러하게 살겠다는 몇 가지 거창한 결심들을 상본 뒷면에 정성스럽게 적었었죠. 그것도 부족해서 그 상본을 코팅까지 해서 가슴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물론 상본 뒤에 적었던 내용들은 지금 돌아보니 도저히 실천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 그리스도는 내 생의 전부입니다" "나는 청소년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등등.

 

베드로 사도 역시 갈릴레아 호숫가에서 처음 예수님을 따라나섰을 때의 비장함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마치도 저희 수도자들이 입회 때 지녔었던 그 첫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안 되는 것이 예수님을 추종하는 일이지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번 고달프고도 험난했던 베드로 사도의 성소 여정의 한 구체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처음 지녔었던 열정-오직 그분만을 따르겠다던-과 그 순수했던 마음은 세월과 함께 점점 빛이 바래갔습니다. 자신의 특기였던 "마음은 간절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증세가 도지면서 베드로 사도는 깊이 깊이 타성의 늪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녀보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가끔씩 수입도 생기고, 좀 피곤한 것은 있지만 어부로 살 때 보다 훨씬 생활이 업그레이드 된 것이 사실이야. 예수님 저분 보면 볼수록 참  대단한 분이야. 혹시 누가 알아? 끝까지 저분 따라 다니면서 한 우물만 판다면 언젠가 팔자고칠 날이 올지? 아무튼 저분은 우리 밥줄이기도 해. 단 한가지 가끔씩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혼내는 일만 없으면 더 바랄 것이 없을텐데..."

 

첫 마음, 첫 각오가 사라지고 철저하게도 인간적이고 계산적인 사고가 베드로 사도의 삶 속으로 스며들 무렵 예수님께서는 마치 철퇴와도 같은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베드로야! 이 못난 놈아! 너는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구나.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왜냐하면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철저하게도 예수님으로부터 "깨지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봤어야 했는데, 육적인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상당수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서 크게 결핍된 부분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인식을 바탕으로 한 성숙한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극히 찰나적이고 이기적인 욕구들에 지속적으로 응답하는 마술사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은 전혀 하지 않음에도 만사형통을 책임지는 유능한 해결사가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재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지으신 분, 결국 우리를 거두어 가실 우리 주인이십니다. 고통과 십자가를 보내심으로 우리를 정화시키셔서 영적인 인간으로 만드시는 분, 결국 시련을 통해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모시키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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