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조롱 받는 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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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20joolid] 쪽지 캡슐

2013-03-19 ㅣ No.1966

'원래 신의 눈물은 굶주린 아이, 병든 노인, 돌볼 이 없는 여인, 착취당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이고 기도였다. 예수가 갈보리 언덕에서 흘리던 눈물, 사문유관 속에서 싯다르타가 흘리던 눈물이 그것이었다. 이제 그런 신의 눈물도 그런 신도 사라졌다.

물론 세태의 부박함을 탓해야 하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종교인들을 따져야 할 것이다. 군종신부 면접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는데”라고 물은 것은 또다른 종교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전쟁과 분쟁을 일삼는 신이다. 지금도 4·3 학살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제주 주민들의 간절한 평화 염원을 종북으로 치부하는 신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게 소신이라 해도, 그것을 이웃 종교인에게 강요할 순 없는 일이다. 알량한 군종장교가 그에겐 양심과 바꿀 수도 있는 자리였을지 모르나, 그것으로 타인의 배덕을 유혹해서야 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시험을 당하고도, 한국 가톨릭은 침묵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종도, 저의 신까지 지키지 않았다. 권력이 무서웠나?

그러니 누가 신을 두려워하고, 그 뜻에 따르려 할까. 하긴 인도네시아 등 서남아시아를 덮친 지진해일이 30여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을 때 한 대형교회 목사는 ‘이교도에 대한 주의 심판’이라고 저주했었다. 그 앞에서, 신의 존재를 묻고, 그 의미를 따지는 물음은 무의미해졌다.'


                                        *** 2013년 3월 18일字 한겨레신문의 '조롱 받는 神' 이란 제목의 논설中 한 부분입니다.

                                            '한국 가톨릭은 그런 시험을 당하고도 침묵' 이것이 현 주소입니다.

                                                                                       그저 그런 神 입니까?  우리의 하느님은 ?       ***

사문유관 :  석가가 태자 때 동문 밖에 나갔다가 노인을. 남문에서 병자를. 서문 밖에서 장의를. 북문 밖에서 위의를
갖춘 사문(沙門)을 보고 이 모든 것을 해탈하고자 결심한 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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