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태릉성당 교우분들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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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 [yeswell] 쪽지 캡슐

2005-07-28 ㅣ No.2090

†찬미예수님

 

먼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위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동안 멀리서나마 태릉성당 납골당 설립과 관련된 글들을 읽으면서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낍니다.

이 문제가 기사화되고 논쟁과  대치의 국면을 맞게된 상황을 지켜보며 그 동안 교우분들이 느꼈을 곤혹감과 안타까움그리고 상처들을 생각해 봅니다. 태능성당 교우분들이 안고가는 그 십자가는 곧 우리들의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죄인아닌 죄인처럼 굴욕과 낭패감으로 위축되고 소심해 있을 많은 분들과 지역 공동체에서 겪게될 선교활동과 하느님나라 공동체 건설에 있어서 우려 되는 앞으로의 여러 걱정들로 얼마나 심려가 크시겠습니까?

특히 이로인해 본당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이런 정황속에서 입게될 교회에 대한 심적 자괴감과 신앙심 상실이 제일 걱정되는군요.

사실 이런 문제들은 서로의 상이한 이해관계와 입장차이로 인해 언제나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태들입니다만 성당도 예외 없이 각각의 사사로운 경우등를 포함해서

우리는 크고 작은 경우에 있어서 시비와 반대와 질타와 비난을 종종 받게 됩니다.

 

시시비비는 인간사에 있어서 없을 수는 없지만 단지 성당과 관련되어서는

성당이니까!  혹은 하느님 믿는자들이니까! 혹은 천주교신자이니까!라는  명분 공격으로

더더욱 많은 양보와 이해를 전제로 깔고서 공격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사실 그네들은 그런 말로 훈계할 존엄한 위치와 자격이 있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신자가 그러면 안되지! 하느님 믿는사람이 더하녜! 라며 어거지를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성당과 관련된 문제 사안에 대해서는 감정이 대치되면 늘상 써먹는 논리(?)입니다.

이런 경우에 상대방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얌전한 쑥맥, 호구로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막무가내식의 양보와 상식을 뛰어 넘는 논리와 주장으로 밀어부치기가 일쑤입니다. (참으로 이중적 잣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과연 그렇게 용기를 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이니까 라는 밀어부치기식 용기를 가지고 그네들은 과연 그 십분의 일이라도 우리 천주교 신자만큼의 양심과 도리에 따라 사회에 기여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반면에 천주교 신자 입장에서는 그런 어거지와 목청앞에 여하튼 같은 격으로 부딪히지 않고 가능한 한 최대의 예와 경우를 갖추고자 애써며 이해시키려 합니다. 사회적 일반의 경우에 보면 더한 대응도 할 수있으나 천주교 신자이기에 스스로 낮추며 비난과 질타에 죄인아닌 죄인으로 오히려 더 마음 졸이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번 사태에서도 전개 되는 양상이 이와 다르지 않은 양상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와 명분이 표면상 그대로의 말귀는 틀린, 어처구니 없는 명분이 아닌것은 확실하나 생각해보면 그런 낮은 차원의, 좁은 범위의 제한적, 한계적 명분 보다는 그들이 애써 외면하는 더 큰 명분과 사회적인 필요성과 공리성 등은 큰 목소리에 묻혀버리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그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기에 양태는 복잡한 양상을 띕니다.

여기에 많은 제3자나 여론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사회 전반의 이기적이고 실리적인 계산심리가 암묵중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사회의식과 공민의식이 상당히 고양되고 사회구조적으로도 좀더 민주화 되었다고 하나 토양이 기름지게 된 땅에는 잡풀 또한 쉽게 고개를 내미는 것 처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민원과 시위 또한 예전의 순수한 대국적 사회정의와 인간적 권익과 존엄성을 위한 대의를 위한 싸움이기 보다는 집단.지역 이기주의에 근거한 모방시위가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난 것이 이 땅의 현실입니다. 겉 모습은 무슨 의로운 투쟁을 하는 듯 결연한 투사처럼 앞서서 공분 합니다만...제가 보기엔 자본주의도 천민 자본주의가 있고 사회주의도 아류사회주의가 있듯이 우리의 시위문화도 천민시위문화가 많은 듯 합니다.

대의명분이 약함에도 싸움은 마치 극한 생존투쟁을 하는 듯한 모습들 말입니다....(속은 배우지 못하고 겉만 배웠습니다. ㅠㅠ)

잘 살펴보면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런 시위나 갈등양상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또한, 한가지 특징으로는 그러한 열성과 투쟁의식이나 사회의식이 투철한(?) 분들이 그동안에는 다른 사회적 사안에서는 침묵으로 편하게 잘 살다가 꼭 이런 자기와 직결된 사안에서는 기를 쓰고 투사로 급변하는 것은 시대의 이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 양보해서 그런 사회양태와 행동방식도 현실로 인정하더러도 상식과 양식을 져버리고 정말 넘지 말아야할 상대방 비하와 말꼬리 잡기식의 인격무시와 천한 상대방 비방방법 등은 참으로 이 사회에서 뽑혀 나가야 할 천민 시위문화의 잡초입니다. 때로는 스토커와 같은 끈질긴 물귀신 투사들이 자칭 자기의 투쟁의식에 도취되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의 자기 아집과 좌충우돌식의 집착을 보노라며 할 말을 잊기 쉽상입니다.

 

명품이 있으면 짝퉁도 많은 법!

예전의 민주.인권.생존 투쟁과 그 투쟁을 본딴 짝퉁 투쟁도 빈번한 현실입니다.

이런 짝퉁갈등이 많은 사회는 상호간에 분열과 갈등 혼란으로 공동체가 피폐해질 가능성이 참으로 농후 합니다. 천태만상 군상들이 사는 사회이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사회정의가 무엇인지  사회 공동선이 무엇인지 공동대의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고 사고하는 교육과 철학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이 땅의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서는 우리자녀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할 과제가 있다면 바로 이런 사회 도량을 깨우쳐 주고 심어주는 것이 더욱 절실합니다. 갈수록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물신주의가 만연하는 이 세상에서 기성세대인 우리가 먼저 나쁜 타성들을 버리고 사회적으로 성숙된 시민의식과 대의에 봉사하는 자세를 가다듬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이 보고 배우는 다음 세대는 더욱 각박하고 암울한 갈등과 분열의 열매만 맺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납골당 반대하시는 똑똑한 분들에게 솔직히 감정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형제 자매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심정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용기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 소견을 이렇게 올리는 것도 형제 자매님들이 고립무원의 박탈감에서 벗어나 신앙인으로서의 자부심과 대의를 위한 희생 앞에서 좀더 힘을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도 구원의 대의를 위해 소위 장나고 똑똑하다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 의해 억울한 비방과 비난 모욕과 모함을 몸소 겪으신 후 그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같이 있지 않아서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신앙안에서 저는 여러분 공동체가 성숙된 십자가의 믿음에 굳건하리라 바래봅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인해 교회에서 이탈하거나 신앙을 저버릴 수 있는 소심한 분들을 위해 교우 모두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비천할 지라도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정의는 승리할 것이요

진리의 광채가 우리를 비추일 것입니다.

위로자이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며

성령의 불칼로 그들을 깨우쳐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주임신부님과 본당 교우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일치와 평화로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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