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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들의 바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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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8-08-05 ㅣ No.122712

 

3일 동안 친구들과 유명산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조그만 지역신문사를 경영하면서, 당시 지역유지로 활약하던 내 또래들과 어울려 친목회를 만들어 매달 모임을 가지며 해마다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 주에 여름휴가를 함께 다녀오곤 했다.

 

그 당시는 강릉시 교외에 있는 한적한 어촌마을인 ‘안목’이란 곳에, 단골민박집을 정해놓고 해마다 그 집으로 몰려가서 아침 일찍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서 잡아오는 싱싱한 생선으로 우리가 직접 회를 뜨고, 매운탕과 밥을 해서 먹고는 각자 취미대로 편을 짜서 고스톱 치는 이는 고스톱, 낚시 좋아하는 이는 낚시, 장기나 바둑 좋아하는 이는 또 그것으로, 모두가 실컷 놀고, 실컷 마시고, 실컷 자고 그랬는데....

한적했던 어촌인 안목에 방파제가 생기면서 개발이 되고 건물과 식당, 인파들이 몰려오면서부터 우리는 장소를 옮겨 다녔다.


하조대 인근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해서 군 영내 휴양소를 쓰면서 놀기도 하고, 해외로 눈을 돌려 발리, 파타야, 중국까지 다녀온 적도 있지만 회원들이 모두 현직에서 은퇴를 하고 60중턱을 넘은 뒤부터는 가까운 유명산 계곡에 있는 회원소유 별장이 우리의 여름휴가처가 되었다.

그 사이 12명의 회원 중에 2명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떠나버렸고, 한명은 또 필리핀 노후이민을 가버려서 재미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모임의 역사가 오해되다보니 로열티를 생각해서 더 이상의 회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은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재미를 꾸려가며 지탱한다.


개중에는 초대민선 구청장 출신, 구의회의장 출신, 서울시의원 출신, 기업체 사장, 병원장등, 나만 빼면 그래도 당시는 다들 한자리씩 하는 친구들이 직접 회칼을 잡고 회를 뜨고, 당번을 정해서 밥당번 찌게당번, 설거지당번, 청소당번 하며 살 씻어서 밥을 하고, 지게 끓이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50초반이었던 그때가 참 좋았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늙은이들이 그런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추하게 보인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 근래는 유명산 별장관리인이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겸해서 운영하는 식당에 식사일체를 붙여놓고 먹으면서 서울에서 떠날 때 과일이나 술, 마른안주만 사 가지고 가서 1주일씩 놀다온다.


50대 때, 그때만 해도 남은 업무가 있어서 따로 찾아오겠다고 하면서 몰래 옆좌석에 한사람을 태워다가 인근 여관이나 모텔에 숨겨놓는 녀석들이 가끔 있어서 벌금도 거두고 이야깃거리도 만들더니 그것도 다 한때였는지 이제는 그런 녀석들도 없고.....

잘 나갈 때는 부녀회장들이 김치를 담아 가져오거나 고기를 재어 가져와서 낮 동안 함께 놀다가곤 했는데 이제는 노인네 냄새가 나서 그런가 모습을 안 보인지도 이미 오래 됐다.


그래도 해마다 구청장이나 구의장이 선배님들 찾아뵌다고 술이나 수박을 사 가지고 인사를 오는 걸 보면 그래도 아직은 우리 구가 서울에서는 변두리 지역이라 도시기반시설이 노후하긴 해도 다른 구에 비해 인정이 덜 메마른 것 같아서 좋다.


장기집권(?)하는 만년 총무만 있을 뿐 회장도 없고, 정관도 없고, 회비조차도 없이, 그때그때 각자 형편대로 십시일반해도 모자람이 없이 십몇 년 동안 살림이 잘 꾸려지는 것을 보면 참말로 신통하다.


모임에 와서는 총무 직책만 부르고, 절대로 청장이니, 의장이니, 의원이니, 작가니 하는 직책을 부르지 말고 무조건 야, 자, 자식, 새끼, 임마, 권가, 박가, 이가, 라는 호칭으로만 서로를 칭한다는 규칙만큼은 잘 지켜져 왔는데 몇 해 전에 모두 환갑을 넘기면서부터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우리들도 점잖은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아직도 다수결로 부결되고 있으니 아무리 늙어도 역시 일탈은 즐거움이며 매력인 것 같다.


근년에 들와서 내가 돈을 조금씩 내자 “야. 저 자식 이제 철이 드나보네.”하는 소리를 해서 모두가 웃었지만 사실 나는 우리 모임을 만들기만 했을 뿐, 해외관광을 제외하고, 또 두 아들 혼사 치루고 난 다음 해를 제외하고는 모임에 돈을 낸 적이 별로 없다.

지역신문사가 계속 적자라는 것을 알고 그 친구들이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신문사를 그만 두고 문화원을 설립할 때도 많은 도움을 준 이들이다.

“야 총무, 저 자식 저거 돈 받지 마라. 몇 푼 내놓고 몇 백 만원 내 놓으라고 사무실로 쫓아오면 나 곤란해.”하고 내가 돈을 내는 것을 극구 말리는 녀석들이 많아서였다.

“야. 임마. 너가 준 돈 그거 내가 쓴 것 아니다. 손비처리가 인정되는 법정영수증 받아놓고 뭘 그래? 그 돈 문화원에서 문화행사 때문에 쓴 거지 내가 그 돈을 혼자 처먹었냐? 저 자식 저거 사람 웃기네.”

“야. 총무. 잔소리 말고 그 자식 돈 받아. 철이 뭐냐? 쇳가루 아니겠어? 아직도 지가 현직이라고 쇳가루가 생겨서 내는 성의인데 왜 그래.”


모두가 서로 임마 이고 모두가 서로 이 자식 저 자식 지랄이며 염병이며..... 욕도 썩 잘한다.

평소에 목에 넥타이 메고 남들 앞에서 체면 차리노라고 고생했던 중생들이 모처럼 자유를 만끽하며 입이 풀려서 시팔, 조팔 쌍스러운 말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고

몇 십 만원을 회비로 쾌척한 녀석이 몇 천원도 안 되는 판돈 때문에

“고스톱을 염병할 입으로 치냐?” 하면서 판을 엎었다 폈다 하며 싸우고 노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모두 한물 간 이들이 아니라 28청춘들 같다.


비록 날씨가 꾸물거리고 비가 오락가락하여 예년에 비해 김이 좀 새긴 했지만 그래도 올해 휴가도 우리 함께 하였음이 그저 행복할 뿐이다.

주일미사 때문에 먼저 빠져나온 것이 약간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들 이해해 주니 고맙고 다시 또 내년 여름을 맞을 때까지 모두 건강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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