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제주 : 추자도 황경한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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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2-07-23 ㅣ No.1252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두 살된 아들 황경한이 유배 당한 추자도

추자도는 제주시 북부 해상에 산재한 군도로 이루어진 섬이다. 이 섬은 이웃한 제주도, 보길도와 함께 유배지로 이용되어 왔다. 지금은 2,800여 주민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이곳 하추자도 예초리 산중턱에 먼 바다를 바라보며 누워 있는 묘 하나가 바로 《백서》의 주인공 황사영의 아들 황경한(黃景漢, 보명 敬憲, 1800~ ?)의 묘다.

황사영(黃嗣永, 1775~1801, 알렉시오)은 1775년 유명한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16세때 진사시에 합격할 만큼 영특하였다. 그러나 1790년 주문모(周文謨, 1752~1801, 야고보) 신부에게 영세를 받은 후 세속적 명리를 버리게 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충북 배론에 피신하여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써 북경의 구베아(Gouvea, 湯士選, 1751~1808, 알렉산델)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되어 체포되고, 대역죄인(大逆罪人)으로 처형되었으며,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로, 아내 정난주(丁蘭珠, 命連,1773~1838, 마리아)는 제주 관비로, 그리고 두 살 된 아들은 이곳 추자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정난주는 1773년 유명한 남인이요 신자 가문인 나주 정씨 정약현(丁若鉉,1758~1816)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세 때인 1790년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고 1800년 아들 경한을 나았다. 1801년 두 살의 아들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 젖내 나는 어린 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말한다.
갯바위에 놓여진 황경한은 그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온 어부 오씨에 의해 키워졌으며, 성장한 뒤에 혼인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현재 예초리에는 황경한의 6대 손부와 7대손 황인수씨 내외가 살고 있다. 그리고 추자도에서는 황씨와 오씨가 결혼하지 아니하는 풍습도 생겨났다. 갯바위에서 울던 두 살 아기는 이곳에 묻혀 있다. 황경한의 묘소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바다로 돌출한 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로 이 갯바위가두 살 된 황경한이 놓여져 울고 있던 바위다.
또한 《일성록》과 《사학징의》에는 경한이 추자도에 오게 된 것은 ‘나이가 2세 이하로 어려 법에 따라 교수시키지 않고 영광군 추자도에 노비로 유배시킨다.’는 판결문에 따른 것임을 말한다.
이곳 내려오는 이야기로 황경한이 살던 집은 불타 없어졌고 그 집안에서 간직해온 젖먹이 때 옷이나 가첩 등이 그때 소실돼 안타깝다고 전해진다. 집터 자리는 현재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 바다로 돌출한 바위
황경한의 묘소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바다로 돌출한 바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로 이 갯바위가 두 살 된 황경한이 놓여져 울고 있던 바위이다. 제주도로 귀양 가는 정난주 마리아는 이 바위에 젖비린내 나는 어린 것을 내려놓고 쓰라린 가슴을 움켜안은 채로 떠나가야 했던 것이다.

▒ 황경한 그 후

정난주 마리아는 1801년 11월 21일(음) 두살 난 아들을 품에 안고 귀양길에 올랐으며, 추자도에 이르렀을 때 추자도 예초리(禮草里) 서남단 <물생이 끝> 갯바위에 황경헌을 내려 놓았다. 추자도에 내려오는 전승을 보면 “어린애 울음소리를 듣고 소를 뜯기던 부인이 가 보니 아기가 있어서 집으로 데려와 저고리 동정에 무엇인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펼쳐 보니, 여기에는 부모 이름과 아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후 아기를 그 집에서 기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동복(同福) 오씨 입도 3世(동복 오씨 재신공파 13世)인 오상선이다. 박해가 끝난 뒤 정난주와 아들 경한은 오랫동안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909년 제주 본당의 2대 주임 라크루(Lacrouts, 具) 신부가 전교를 위해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 황경한의 손자를 만나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크루 신부는 곧 파리의 샤르즈뵈프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순교자 황사영의 아들 경한과 그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렸고, 샤르즈뵈프 신부는 이를 전교 잡지에 소개하였다. 그 후 라크루 신부는 프랑스 은인들의 후원금으로 황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농토를 사줄 수 있었다. 추자도의 옛 집에는 7대손 황인수(黃寅壽) 씨가 거주하고 있었으며, 황경한이 성장한 오씨네 집은 1965년 가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는데 이때 황경한의 출생 연도와 이름 등이 적혀 있던 배냇 저고리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황경한의 무덤은 예초리 산 13번지 속칭 ‘술박낭끝’에 있는데, 제주교구에서는 1999년 3월 9일 추자도에 있는 황경한의 무덤 주변의 임야 600여 평을 매입하여 공원 묘역 조성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시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시여,
● 우리 교우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참된 사랑을 베플도록 빌어 주소서.

■ 추자도 여객선 및 운항시간 (2008. 4. 1. 현재)

○ 특기 사항
한일카페리호 : 매월 세 번째 수요일 정기 휴항(완도)
핑크돌핀호 : 매일 운항
○ 배편 문의
한일카페리호 : (주)한일고속 : (제주) 064-751-5050  (완도) 061-554-3294
핑크돌핀호 : 씨월드 고속훼리(주) : (제주) 064-758-4234  (목포) 061-243-1927
제주항 여객터미널 (064) 758 - 4234
목포항 여객터미널 (061) 243 - 1927
상추자항 여객터미널 (064) 742 - 3513
○ 섬내 순환버스
노선 : 대서-영흥-묵리-신양2-신양1-예초 (07:00~21:00사이에 1시간 간격 운행하며, 30분간 소요된다.)
문의 : 추자교통 (064) 742-3595)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예초리 
지리좌표 [묘소 앞] 북위 33°56′94.7″ 동경 126°20′41.0″ 
연락처 추자 공소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193-3) (064) 742-3777  
홈페이지 추자 공소 http://www.chuja.org/01.php  
미사시간 평일 공소 예절 : (월수목금) 오후 7:30 (화) 오후 7:00 (토) 오후 4:00, 5:00
주일 일반 예절 : 오전 11:00  
교통편 상추자에서 하선(핑크돌핀호)하면 순환버스로 신양1리를 지나 모진이 해수욕장 입구에서 하차하여 해수욕장을 지나 바다를 끼고 산길로 예초리 방향으로 약 20분 오르면 좌측에 묘소가 있다. 하추자에서 하선(한일카페리3호)하면 바로 신양1리이므로 버스를 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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