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자살 만류 끝판왕(영화 체리 향기)

스크랩 인쇄

김형기 [hyonggikim] 쪽지 캡슐

2017-01-03 ㅣ No.89183

체리 향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체리 향기(The Taste of Cherry)”는 줄거리가 단조롭고 지루하게 진행된다. 배경도 황무지로 설정되어 전체적으로 삭막하고, 출연자들도 아마추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기가 그저 그렇다. 제작비도 많이 들이지 않은 저예산 영화 같은 느낌을 주지만, 자살이라는 흔치 않은 주제를 다루었기에 재미가 없어도 끝까지 참고 보았다. 그런데 자살을 만류하는 사람의 말이 어찌나 간곡하고 절실한지 자살만류의 끝판왕이라 불러도 괜찮을 정도였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한 중년 남자가 차를 천천히 운전하며 이란의 어느 시내를 달리며 자신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해 줄 사람을 찾는다. 점 찍은 사람을 한 명씩 차에 태운 후에, 시 외곽지역의 황무지에 그가 무덤으로 쓰려고 이미 파놓은 구덩이로 데려간다. 거기서 그가 밤중에 수면제 한 병을 먹고 자살하면 새벽에 와서 확인해 보고 죽어 있으면 시체 위로 흙을 덮어 주는 대가로 적지 않은 돈을 주겠다고 제의한다. 자살하려는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첫 번째로 그 제의를 받은 나이 어린 군인은 겁에 질려 차에서 달아난다. 두 번째로 제의받은 이슬람 신학생은 자살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므로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세 번째로 제의받은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박제사(剝製師)는 아픈 자식의 치료비가 필요해서 그 제의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에 자살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자신의 체험을 얘기해 주며 그 남자에게 마음을 바꾸라고 열심히 설득한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음날 새벽에 무덤에 와서 만약 자신이 살아 있으면 구덩이에서 꺼내주고 죽어 있으면 흙을 덮어 달라고 다시 부탁한다. 그날 밤 그가 구덩이에 누워 있는데 천둥 번개가 친다. 캄캄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그는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구덩이에서 일어난 그가 언덕을 내려오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살하려는 사람에게서 세 번째로 기이한 제의를 받은 사람은 자살을 만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체험을 말한다.

 

결혼한 직후에 우린 온갖 어려움을 겪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허우적거리다가 모든 걸 끝장내기로 마음먹었지요. 어느 날 동이 트기 전에 차에 밧줄을 싣고 외딴곳으로 떠났어요.

 

도착한 곳이 뽕나무밭이었답니다. 사방은 아직 캄캄했어요. 밧줄을 나무에 던졌는데 걸리지 않았어요. 한두 번 더 던졌는데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래서 나무에 기어 올라가 밧줄을 단단히 묶고 나니 손 밑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만져졌어요. 오디(Mullberry)였어요. 달콤하고 맛있는 오디 말입니다. 한 개를 먹어보니 오디 즙이 나왔어요.

 

또 한 개 그리고 또 한 개이렇게 먹다가 문득 산 위로 해가 뜨는 게 보였어요. 강렬한 태양, 아름다운 경치, 초록색 나무들기가 막혔지요. 그리고는 갑자기 아이들이 학교로 가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아이들은 멈춰서 나를 보고는 나무 좀 흔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오디가 떨어지고 아이들이 그걸 주워 먹는 걸 보니 행복했어요. 내가 오디를 잔뜩 주워서 집으로 갔더니 아내는 아직 자고 있더군요. 그녀는 곧 깨어서 오디를 맛있게 먹었어요. 나는 자살하러 갔다가 오디를 주워서 돌아왔어요. 오디가 나를 살린 셈이지요. 그렇고 말고요. 그러고 나서 일이 잘 풀리더군요. 나도 마음을 바꿔 먹었고요.”

 

자신의 체험을 얘기해 준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살을 만류하는데 그 말이 매우 간곡하여 얼음 심장이라도 녹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걱정거리가 있지요.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어도 걱정거리 없는 집은 하나도 없어요.

 

형제여 그대는 마음이 아픈 것일 뿐 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구려. 생각을 바꿔 보세요. 나는 죽으려고 집을 나섰는데 오디가 내 생각을 바꿔 놓았어요. 흔해 빠지고, 대단치 않은 오디가 말이요. 세상일이 다 그런 거라오. 세상일이 당신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닐 거요. 세상사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보는 게 좋을 거요

 

모르긴 몰라도 당신은 사소한 일로 심각해 하고 있을 거요. 별것 아닌 일로 자살하려고 하는 걸 거요. 인생은 기차와 같아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마침내는 종착지에 다다른다오. 그 종착지에 죽음이 기다리지요. 물론 죽음으로써 문제를 풀 수도 있지요. 하지만 죽음이 제일 먼저 와서는 안 되는 거지요. 그리고 젊었을 때 죽어서도 안 되고요.  

 

희망을 모두 버렸나요? 아침에 깨어서 하늘을 바라보지 않나요? 동이 틀 때 태양이 떠오르는 걸 보고 싶지 않나요? 해가 질 때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나요? 달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별들을 보고 싶지 않나요? 보름달이 뜬 밤을 더는 보고 싶지 않나요? 눈을 닫아 버리고 싶나요? 샘에서 솟는 물을 다시 마시고 싶지 않나요? 그 물에 세수하고 싶지도 않나요? 네 계절을 보세요. 계절마다 새로운 과일을 맛보게 되지요. 어떤 어머니라도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에게 해 주시는 것만큼 자녀들에게 해 줄 수는 없답니다. 당신은 그 모든 걸 거부하렵니까? 당신은 그 모든 걸 포기하렵니까? 당신은 체리 맛을 포기하렵니까?”

 

박제사의 간곡한 설득에도 중년 남자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자살을 감행하지 않은 걸로 보아 분명히 그는 박제사의 말에 크게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주위에서 관심을 가져 주고, 자살을 말려 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흔해 빠진 오디 맛에 이끌려 자살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따뜻한 위로와 관심은 오디보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59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