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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군기지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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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순희 [kohthea] 쪽지 캡슐

2013-01-25 ㅣ No.1846

[주말을 여는 책 |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가짜 안보’] 제주 해군기지가 국익에 부합한다고? NO!
2013-01-25 오후 1:05:53 게재

차미례 칼럼니스트

제주 사람이거나 제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거나, 달갑지 않은 침묵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내 고향이 망가지고 아름다운 자연
유산이 정치 논리로 훼손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슴 아픈 느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 책은 "유령의 위협과 흔들리는 국익"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강정마을 해군기지 계획의 단초였던 노무현정부 당시의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명분이 "원유와 곡물,
원자재의 100%가 운송되지만 수시로 해적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말라카 해협"등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지원함정을 긴급 투입할 수 있는 항구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언론인이며 평화운동가(평화네트워크 대표)인 저자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시점엔 이미 말라카해협의 해적퇴치가 이뤄졌고 2010년 이후에는 국제공조로 아예 사라졌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 이후 해군기지 건설은 정권안보 차원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없는 해적이라는 "유령의 위협"에 대처하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일본과 중국의 위협론 같은 억지 주장으로 제주에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한 MB정부가 제주 올레7길이 통과하는 가장 아름다운 생태 해안인 강정마을에서 벌인 만행에 가까운 강제추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한마디로 강정마을이 단순히 제주 해안마을이 아니며, 강정사태가 '섬'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운명과 연결돼 있음을 일깨워 준다.

◆강정의 운명에서 눈떼지 말아야 = 이 시점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에 관한 모든 것을 총정리하고 '복습'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저자는 해군기지 건설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NO'라는 답을 내놓는다. 군사기지가 되는 순간 평화의 섬 제주는 군사적 요충지가 될 것이고 해적의 위협 대신 중국 위협설을 주장하는 자들 말대로 미국과 중국의 대치상황이 벌어질 경우 한국은 더 큰일이 난다.

이어도 같은 문제해역을 순시하다 한중 해군의 충돌이 일어나거나, 미군 함정이 제주를 기지로 사용해 태평양상의 미-중 힘겨루기가 일어날 경우 군사분쟁지역이 될 수있다. 그런 군사문제가 제주섬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한반도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사실 제주도에 아예 미군기지 건설을 제안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었다. 책에 따르면 1970년 2월 그는 일본의
오키나와 반환요구로 궁지에 몰린 미국에게 대안으로 제주도 미군기지를 인심 좋게 제안했다. 당시 주한미국대사 윌리엄 포터가 상원청문회에서 밝힌 박정희와의 대화내용은 이렇다.

포터: 당신은 미국이 오키나와에서 포기해야할 것들 대신 남한에 새 해군과 공군기지 건설을 제안하는 것인가
: 오키나와가 어찌되든 제주도를 기꺼이 미군기지로 제공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포터: 오키나와 핵무기를 옮겨다 놓으면 남한은 미국의 핵무기 전진기지가 될텐데..
: 제주도가 미국 군사기지가 되면 핵무기 설치는 불가피할 수 있다.
포터: 한국 국민이 이를 환영할까?
: 환영하진 않겠지만 허용할 것이다.

반대여론쯤이야 손쉽게 진압할 수 있다는 독재자의 면모도 보이지만 4·3항쟁때 미군의 방조로 수만명이 목숨을 잃은 제주도민의 아픈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한국에 수백개의 핵무기를 배치하고 있어 다행히 제주도에 추가로 핵기지를 건설하지는 않았다.

2013년 새 정부 출범이 다가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정권인수, 정부조직과 인사의 향방이 '국정현안'의 전부인 것처럼 온
신경을 집중한다. 민생의 중요 현안들에 대해서는 일시적 마비와 혼수상태에 빠진다. 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탓이 크다. 문제의 현장을 잊지 않고 챙기는 건 결국 국민들의 몫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건설에 찬반이 갈려 싸우는 것처럼 외부에 인식된 것은 1900여명 주민들 중 87명이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회유당해 기지건설 확정을 도왔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데다 이웃의 정마저 산산이 찢어놓은 이 사태를 처음부터 재검토하고 '국민행복'의 방향으로 매듭지어야 하는 것은 새 정부의 무거운 책무일 것이다.

◆"하와이모델 군사-
관광지 안돼" = 그런데 해양오염 때문에 잡은 물고기조차 안먹는 하와이, 많은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 지금도 해군기지 폐쇄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하와이를 모델로 "제주도를 세계적인 관광지이면서 해군기지로 유명한 하와이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제주지역 유세에서 거듭 주장했던 대선 후보가 당선자가 되었다.

하와이는 미국의 51번째 주(州)이며 여차하면
항공모함이나 핵 잠수함이 태평양 어느 지역으로도 손쉽게 출동할 수 있는 전략적 해군기지다. 하지만 독특한 지질학적 유산과 미관 덕분에 일찍이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사랑을 받아온 것이지 훌륭한 해군기지가 있어서가 아니다.

하와이보다 자연스러운 풍광이 더 빼어나고 수퍼파워 제국의 패권 경쟁에서 비켜 선 평화의 섬이 제주도였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온 섬이 전쟁터같이 된 마당에 아예 전쟁용 전초기지를 겸한 관광지로 만들면 일석이조가 아니냐는 박근혜적 발상은 너무도 나이브하다 못해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와이 같은 멋진(?) 해군기지가 되어 강대국간 알력이 있을 때마다 공격
목표가 되고 미해군 핵잠수함과 이지스함이 드나들기엔 제주도는 너무 작고 섬세하고, 너무 다른 역사와 자연을 가지고 있다. 기지 건설후 미군의 동아시아 탄도미사일방어체제(MD)의 전초기지가 되고 중국의 반발로 한국이 동아시아 군비경쟁과 신냉전의 수렁에 빠진 다음에 다시 평화를 되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제주해군기지가 정말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는 제주도민들의 절규처럼 저자도 해군기지건설은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강정사태의
백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힘으로 새 정부들어 새로운 정책 전환이 이뤄졌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서해문집 / 정욱식 지음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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