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 해외 배급용 포스터. ⓒ제주의소리

혹시 모를 기대감이 '역시나'로 마침표를 찍었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오멸 감독의 '지슬'이 미국 선댄스영화제 최고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현지시간으로 26일 늦은 오후,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29회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시네마 극영화’ 부문의 심사위원대상(Grand Jury Prize)을 받았다.

선댄스영화제는 미국 영화(US Cinema)와 외국 영화(World Cinema)로 나눠 각각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을 선정한다.

심사위원은 <인형의 집에 놀러오세요> 등을 제작한 프로듀서 조안나 빈센트, <카라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등을 연출한 감독 겸 배우인 나딘 라바키, 지난해 칸 영화제의 화제작 <와쉬푸르의 갱들>을 연출한 아누락 카쉬아프로 구성됐다. 심사위원대상은 부문별 최고상에 해당한다.

'지슬'은 앉은 자리에서 1분도 걸리지 않아 만장일치로 '대상' 수상을 결정지었다.

시상식에서 마이크를 잡은 아누락 카쉬아프는 "영화의 시적인 이미지는 서사의 깊이와 함께 정서적인 충격을 안겨주며 우리를 강렬하게 매혹시켰다. 감독은 특정 인물들의 역사적 일화를 다루는 것으로부터 초월해 불멸의 세계를 담아내는 성취를 이루었다"며 심사평을 밝혔다.

25일 미리 귀국한 오멸 감독은 영상으로 관객들을 마주했다. "이 상은 개인적인 영광보다는 제주 섬 사람들의 통증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다. 영화를 찍는 동안 함께 해주신 수많은 영혼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며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만들어준 선댄스 영화제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국영화가 선댄스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지난 2004년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월드 시네마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특별상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한 것이 유일하다. 게다가 미군정에 의해 발생한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가 미국에서 수상을 거뒀다는 것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 선댄스 공식 홈페이지에 실린 '지슬'의 수상소식. ⓒ제주의소리

오멸 감독의 네 번째 장편인 '지슬'은 1948년 당시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동굴로 피해있던 마을 주민 수십 명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오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제주4.3에 희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던 만큼 4·3의 통증을 드러내는 작업보다는 평범한 일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휩쓸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독립영화사에 남을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2012년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거뒀다.

이번 영화제 상영 내내 '지슬'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심을 모았다. 미국 유명 영화전문지인 버라이어티는 리뷰 기사에서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오멸 감독이 놀라울 만큼 절제된 감정 표현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어지는 호평은 내심 바랐던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오멸 감독은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제42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스펙트럼 부문에 초청돼 유럽 나들이에 나선다. 이어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장편영화 경쟁부문에서도 얼굴을 내밀 예정이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