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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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서" - 7.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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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0-07-14 ㅣ No.573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7.14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사10,5-7.13-16 마태11,25-27

 

 

 

 

 

"살기위해서"

 

 

 

살기위해서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마음도 귀도 눈도 열립니다.

답답하다는 것은 바로 닫혀있다는 뜻입니다.

활짝 열려있을 때 자유롭습니다.

하여 수도원의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활짝 열려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래야 원활한 소통에 자유로운 삶입니다.

수도원뿐 아니라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 역시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열려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게 바로 기도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겸손한 사람들,

바로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열려있는 기도의 사람들이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제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이렇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예수님의 눈이며 마음입니다.

하늘 보며 하느님 생각하며 기도하라고 어디나 눈 들면 하늘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어디서나 하늘을 볼 때마다 바칠 수 있는 참 좋은 화살기도입니다.

눈앞에 하늘과 땅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넘어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높고도 깊은 눈길입니다.

진정 행복한 부자들,

하느님을 이렇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 마음 하느님 향해 활짝 열려있는 겸손한 사람들,

바로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신뢰 가득 담아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무려 아버지란 말이 8회 나옵니다.

얼마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예수님이신지 깨닫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서

저는 ‘닫힌 사람들’을 연상했습니다.

바로 무지와 교만으로 닫힌 사람들입니다.

자신이나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지혜롭고 슬기로울지 몰라도

하느님 눈에는 완전히 닫힌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다 하면서도 이렇게 닫힐 수 있다는 게 참 놀랍지만

오늘의 종교인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입니다.

한마디로 똑똑한 바보들입니다.

하느님이 감추셨다기보다는

자신의 무지와 탐욕, 교만으로 눈이 멀어 자초한 결과입니다.

오늘 1독서의 제분수를 모르고 기고만장한 아시리아 임금도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하느님을 아는 겸손한 임금이었다면

‘내’ 대신에 ‘하느님’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멋있는 신앙고백이겠는지요.

‘내’가 들어가기에 감사는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대신 하느님이 들어갈 때 저절로 솟아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이런 교만과 무지의 아시리아에 불행을 선언하시며

그 문제를 적시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사람은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제 분수를 넘지 않는 자가

실상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점에서 아시리아 임금은 완전 실패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비롯한 제자들을 상징하는 철부지들은

가난하고 겸손한,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눈을 활짝 열어주시어

하늘나라를 보고 누리며 살게 하십니다.

이런 내면의 하늘나라 체험이 샘솟는 기쁨, 평화,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이런 내면의 하늘나라 보물 체험을 지녀야 탐욕은 사라져

깊고 고요한 마음에 삶입니다.

 

세상에서 똑똑하고 부유하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황량한 것은

마음의 사막 안에

이런 하늘나라 내적 체험의 오아시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겸손한 영혼으로 살기위해서,

내 마음과 영혼이 하느님 향해 활짝 열리기 위해서,

내면에 하늘나라 보물을 지니고 살기위해서,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께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철부지 같이 가난하고 겸손한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늘에서 빵을 주셨으니,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 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

(지혜16,2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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